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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가릴까? 드러낼까? 옷차림 매일 고민이라면

2017년 12월 26일 20:11

서구 산업 사회에서 여성의 몸과 중동 이슬람 여성의 몸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 여성의 몸은 점점 노출이 심해집니다. 길에는 거의 나체에 가까운 여성의 몸이 광고에 활용됩니다. 실제 여성들의 옷차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이슬람 여성의 몸은 점점 더 가려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히잡으로 머리칼을 가리는 정도였지만, 18세기부터는 일부 국가에서 얼굴을 포함하여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기도 합니다.


여성의 몸을 가리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드러내는 것이 옳을까요?

 

이미지 확대하기부르카를 입은 여성. 부르카는 고작 200년이 되지 않는 복식 전통으로 이슬람 교리와는 큰 관련이 없다. - pixabay 제공
부르카를 입은 여성. 부르카는 고작 200년이 되지 않는 복식 전통으로 이슬람 교리와는 큰 관련이 없다. - pixabay 제공

복장과 마음

 

물론 ‘여성이 원하는 대로 입는 것이 옳다’고 하면 문제가 간단해 집니다. 자유롭게 입으면 그만이죠. 하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복장은 복잡한 사회문화적 결과물입니다. 그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983년 문교부는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유화 정책을 시행합니다. 획일화를 피하고 각자의 개성을 살린다는 취지였죠. 하지만 학생들의 방종이 심해지고, 빈부격차에 따른 복장 차이가 두드러진다는 이유로, 90년대 초반 교복은 부활합니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두발 제한을 다시 시행하기도 했죠.

 

이러한 제도는 언뜻 보면 여성을 위험에서 보호하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문화의 산물입니다. 여성을 쳐다보거나 근접하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아예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죠. 현대 사회에서도 일부다처제가 유지되는 일부 국가에서 이러한 풍습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교복의 유무로 인해서, 비행청소년이 늘어나거나 개인의 창의가 말살되는 등의 일이 일어날까요? 당연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복장을 통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신분에 따라서 복장을 달리하던 봉건시대의 유물일 뿐입니다. 교복으로 한복을 입히는 학교도 있고, 아주 화려한 교복을 내세우는 학교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복이 없는 학교도 아직 있습니다. 그러나 교복의 유무나 교복 모양의 차이가 학업 능력이나 성격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확대하기Laura Norman (2009). 속옷을 입은 여성. 서구 사회에서 여성의 벗은 몸은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문, 잡지, 인터넷, 텔레비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과도하게 노출된 여성의 신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 wikimedia (CC) 제공
속옷을 입은 여성. 서구 사회에서 여성의 벗은 몸은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문, 잡지, 인터넷, 텔레비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과도하게 노출된 여성의 신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 wikimedia (CC) Laura Norman 제공

 

 심리적 원인이 아닌, 문화적 결과로서의 복장

 

페르소나(Persona)라는 분석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원래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사용하던 가면을 말합니다. 인격 혹은 성격을 말하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의 어원입니다. 페르소나는 얼굴 표정이나 태도, 자세, 행동거지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옷차림도 중요한 페르소나 중 하나입니다.

 

사회활동을 위해서는 이른바 T.P.O.가 중요합니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 (Occasion)을 고려한 옷차림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리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옷을 입는지 여부는, 사회문화적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옷차림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심리나 마음을 파악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면접장에서 대기하는 수십명의 정장차림 지원자를 보고, 과연 옷차림으로 그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단지 면접장에 적합한 옷을 입고 올 정도로, 사회에 순응하고 틀에 맞출 수 있는지 여부를 보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여성의 옷차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여성들은 자신의 개성에 따라서 원하는 옷차림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 행위예술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여성은 명시적 혹은 암묵적인 코드에 따라서 자신의 옷차림을 결정합니다.

 

이미지 확대하기rintofr (2017). 흔히 옷은 개성의 표현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회적 규율과 유행에 맞춘 정형화된 복장을 입을 뿐이다. 옷은 페르소나의 일부분으로, 개인의 깊은 개성과는 대개 큰 관련이 없다. - pixabay 제공
흔히 옷은 개성의 표현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회적 규율과 유행에 맞춘 정형화된 복장을 입을 뿐이다. 옷은 페르소나의 일부분으로, 개인의 깊은 개성과는 대개 큰 관련이 없다. - pixabay 제공

 

베일, 샤프롱 그리고 퍼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몸과 얼굴을 가리곤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장옷이나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리던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히잡과 비슷한 기능을 했습니다. 남성의 욕정을 반감시키는 것이죠. 실제로 사춘기 이전의 여성이나 폐경 후 여성은 히잡이나 부르카 착용을 면제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가임기 여성에서만 이러한 규제가 적용됩니다.

 

서구 사회에서도 결혼식에는 흔히 면사포를 씁니다. 얼굴을 가리는 전통이, 결혼 의례에 남아있는 것이죠. 그 외에도 젊은 여성이 밖에 나갈 때 중년 여성이 동행하는 샤프롱 풍습이나, 아예 젊은 여성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퍼다(purdah)등도 이러한 억압적 사회문화의 결과물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결혼 면사포를 쓴 신부. 어깨를 드러낸 결혼 드레스와 상반신을 가린 면사포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중적인 문화적 태도를 한 복장 속에 이질적으로 담고 있다. - pexels 제공
결혼 면사포를 쓴 신부. 어깨를 드러낸 결혼 드레스와 상반신을 가린 면사포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중적인 문화적 태도를 한 복장 속에 이질적으로 담고 있다. - pexels 제공

이러한 제도는 언뜻 보면 여성을 위험에서 보호하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문화의 산물입니다. 여성을 쳐다보거나 근접하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아예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죠. 현대 사회에서도 일부다처제가 유지되는 일부 국가에서 이러한 풍습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상품화되는 여성의 몸?

 

그렇다면 서구 산업 사회의 여성은 어떨까요?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자유가 있으니,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서구 사회의 옷차림은 흔히 성적 특징이 부각되도록 디자인됩니다. 노출이 심하거나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복장은 이른바 초정상자극을 유발하여, 보다 강력한 성적 신호를 보냅니다.

 

앞서 말한대로 옷차림은 사회문화적 결과물입니다. 마치 개인적 선택에 따른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비슷비슷한 유행을 따릅니다. 여성들은, 물론 남성도 어느 정도는, 자신도 모르게 옷차림을 통해 신체적 매력을 외부에 과시하게 됩니다. 편하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옷들이 값비싸게 팔리는 이유죠. 더위와 추위를 막고, 몸을 보호한다는 본질적 기능만 추구한다면, 소위 ‘츄리닝’만 입고 다닐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검은터틀넥 셔츠와 청바지, 운동화를 신은 스티브 잡스. 늘 같은 복장이었지만, 그의 정신이 획일화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 wikimedia (cc) matt buchanan 제공 제공
검은터틀넥 셔츠와 청바지, 운동화를 신은 스티브 잡스. 늘 같은 복장이었지만, 그의 정신이 획일화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 wikimedia (cc) matt buchanan 제공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일까요?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된 결론을 찾기 어렵습니다. 몸을 가리는 옷이 옳은지 혹은 몸을 노출시키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은, 마치 교복자율화 논쟁처럼 무의미합니다. 교복을 입은 비행청소년도 있고, 힙합 복장의 모범생도 있습니다. 복장의 문화적 한계는 없습니다. 심지어 일부 호주 아보리진은 남녀 모두, 완전 ‘나체’로 다닙니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시켰습니다. 반대로 이란에서는 몸을 드러낸 여성이 처벌을 받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일 일까요? 모두가 합의하는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복장에 대한 내적 검열(어떤 옷을 입고 싶다든가 아니면 어떤 옷을 입으면 절대 안될 것 같다든가 등)의 충동은 자신의 독특한 개성 혹은 윤리적 엄격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결국 사회와 문화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사실 무엇을 입어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점을 깨달으면 스티븐 잡스처럼 청바지에 검정 터틀넥 하나로 평생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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