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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영화] 일 밖에 모르는 그녀의 매력 ‘미스 슬로운’

2017년 12월 16일 11:00

#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


감독: 존 매든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마크 스트롱, 구구 바샤-로, 마이클 스털버그, 알리슨 필
장르: 드라마, 스릴러
상영시간: 2시간 12분
개봉: 2017년 3월 29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이미지 확대하기(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제공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제공

매년 개봉작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영화 선택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개봉작이 늘어난 만큼 오락성이 뛰어나거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의 수도 많아졌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좋은 영화를 놓치기 마련인데, 필자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관객들을 위해 필자가 올해 인상적이었던 3편의 영화를 꼽아 공유해보려고 한다. 영화가 너무 잘 나왔는데 아쉽게 흥행에 실패했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싶은 영화 3편을 골라 앞으로 3주에 걸쳐 한 편씩 소개해 보려고 한다.


두 번째 영화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정치 드라마 ‘미스 슬로운’이다.


(*아래에는 영화 ‘미스 슬로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종횡무진 제시카 차스테인의 압도적인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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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제공

거물급 정치인들이 모여 있는 미국 워싱턴 D.C. 그곳에 ‘눈치 백단’ 정치 거물들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이다. 화려한 언변, 뛰어난 통찰력, 천부적인 전략적 감각으로 승률 100%에 가까운 로비스트로 명성을 얻는다. 승리에 대한 열망에 삶의 모든 것을 바치는 그녀는 총기 규제와 관련된 ‘히튼-해리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주인공 제시카 차스테인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이 영화 ‘미스 슬로운’을 기억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만 영화 ‘인터스텔라’의 성인 머피, ‘마션’의 루이스, 그리고 여러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안긴 ‘헬프’와 ‘트리 오브 라이프’, 그리고 ‘제로 다크 서티’ 등에 출연한 제시카 차스테인의 명성에 비해, 이 영화의 인지도는 낮고 흥행 성적은 초라하기 때문이다. ‘미스 슬로운’은 국내 관객 4만 8000 명, 13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해 거둬들인 세계 수익은 고작 900만 달러에 불과한 흥행 실패작이다.


실패작을 추천하는 이유는 필자의 독특한 취향 때문만은 아니고, 이 영화가 실패작으로만 남기엔 아까워서다. 우선 “주인공이 멱살 잡고 끌고 간다”는 어느 리뷰처럼 제시카 차스테인의 존재감과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녀의 최고작이라는 말에는 무리가 있을지언정, 이 영화를 보면 제시카 차스테인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말은 많은 관객들이 동의할 것이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나 ‘스티브 잡스’의 각본가 아론 소킨이 시나리오를 썼나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압도적인 대사량을 자랑하는 이 영화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은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좌중을 사로잡는다. 실제로 그녀는 아론 소킨의 연출 데뷔작 ‘몰리스 게임’에 출연해 2018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 ‘이거 실화?’ 디테일이 살아 있는 정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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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제공

또한 ‘이 영화 실화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영화는 높은 사실감을 자랑한다. 로비스트들의 일상과 정치권의 치열한 암투, 법안 통과와 저지를 위해 팽팽히 맞서는 양쪽 캠페인 팀의 전략 대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의 구성이 촘촘하다. 관객들이 시종 긴장감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 스타일의 정치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제대로 취향저격 당할 수 있다.


영화는 변호사 출신의 조나단 페레라가 집필한 각본을 바탕으로 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도 있는 그는 감옥에 다녀온 어느 로비스트의 인터뷰를 듣고 시나리오를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 쓴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각본은 할리우드에서 2015년 시나리오 블랙 리스트(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 중 호평을 받은 작품 리스트) 탑 5 안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시리즈를 만든 존 매든 감독이 이 각본을 토대로 멋들어진 작품을 완성했다.


변호사 출신이 각본을 쓴 덕분인지, 주인공의 혐의를 밝히기 위한 상원 윤리위원회 청문회 장면에서는 법정 스릴러를 방불케 할 정도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각각 법안 통과-저지를 위해 싸우는 캠페인 팀 간의 전략 대결에서는 불법 도청과 감시가 횡행하고, 서로 스파이를 심어 두려고 하거나 일촉즉발의 눈치 싸움이 펼쳐져 장면장면마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 중심에, 전쟁의 장수처럼 팀원들을 진두지휘하는 슬로운이 있다.

 


# 올해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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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제공

영화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건 역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미스 슬로운’이다. 업계 최고의 로비스트이자 그야말로 “악명 높은”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는 워싱턴 최고의 권력이자 클라이언트가 될지도 모르는 샌포드 의원의 아이디어를 두고, “나이 든 남자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라며 타박을 놓는 패기가 있는 사람이다. 그로 인해 상사에게 핀잔을 듣자 수년 간 몸담은 회사를 단번에 때려 치고 나올 만큼 자존심도 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다가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고 맞서고 직시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프로페셔널을 자부하는 그녀 사전에 ‘불가능’과 ‘패배’라는 단어는 없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밥도 거르고, 잠도 자지 않는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적에게 정보를 준 인물은 가차 없이 잘라버리고,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전투에 사용한다. 그 덕분에 로비스트로서 활동해 온 수년 동안 그녀는 백전백승이었고 늘 위풍당당하다.


완벽해 보이는 그녀에게 없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인간미. 승리를 위해서는 인간미가 ‘불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팀원들과 정을 나누지 않고, 전투 과정에서 그녀가 믿는 건 그 자신 뿐이다. 팀원이더라도 그의 치부를 드러내 효과적인 전투 수단으로 이용할 정도다. “언제나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강변했던 철학자 칸트가 보면 피가 거꾸로 솟겠지만, 칸트와 만나도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인물이 바로 미스 슬로운이다.


자신을 이름 ‘매들린’으로 부른 건 엄마뿐이었다고 회상하는 슬로운은 언제나 직업인으로서의 호칭인 “미스 슬로운”으로만 불린다. 즉 사적 영역이 전무하다는 이야기다. 상원의원과의 만남에서 얘기할 거리를 부하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고, 연인을 만나 관계를 맺는 대신 돈을 지불하고 호스트를 고용하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제작진은 왜 이런 캐릭터에 흥미를 느꼈을까?


이 영화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다. 슬로운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승리를 위해 전력질주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덕분에 관객들은 사이다를 마신 듯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이 프로페셔널에게 부재한 것은 무엇인가. 이 사람은 칭송 받아야 마땅한 사람인가. 이런 사람이 워싱턴을 좌지우지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무엇인가. 미스 슬로운은 매력적인 캐릭터인 만큼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도 많이 전해주는 올해의 캐릭터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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