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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영화] 올해 놓치면 아까운 #1 ‘배드 지니어스’

2017년 12월 09일 11:00

# 영화 ‘배드 지니어스(Bad Genius)’


감독: 나타우트 폰피리야
출연: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차논 산티네톤쿨, 에이샤 호수완, 티라돈 수파펀핀요
장르: 스릴러, 드라마
상영시간: 2시간 10분
개봉: 2017년 11월 2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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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더쿱 제공

매년 개봉작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영화 선택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개봉작이 늘어난 만큼 오락성이 뛰어나거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의 수도 많아졌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좋은 영화를 놓치기 마련인데, 필자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관객들을 위해 필자가 올해 인상적이었던 3편의 영화를 꼽아 공유해보려고 한다. 영화가 너무 잘 나왔는데 아쉽게 흥행에 실패했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싶은 영화 3편을 골라 앞으로 3주에 걸쳐 한 편씩 소개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영화는 태국에서 건너온 흥미진진한 ‘컨닝’ 스릴러 ‘배드 지니어스’다.


(*아래에는 영화 ‘배드 지니어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천재 소녀의 대담한 컨닝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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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학교에 전학 온 우등생 린. 어른들 앞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굴지만, 알고 보면 계산이 빠르고 세상 물정에 밝다. 원하는 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해야 한다는 걸 어린 나이에 깨달은 덕분이다. 어색한 학교 생활을 이어가던 중, 붙임성 좋은 그레이스가 말을 걸어 오면서 두 사람은 급격히 친해진다. 연극반에 들어가고 싶던 그레이스는 기준 성적을 넘겨야 한다는 규정을 이유로 우등생 린에게 수학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하지만 공부에 적성이 없던 그레이스. 린은 위험을 무릅쓰고 시험 당일, 친구에게 정답을 가르쳐준다. 둘만의 소소한 컨닝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난다.


하지만 둘만의 비밀은 그레이스가 남자친구 팟에게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비밀로 남지 않는다. 고급 호텔 체인의 아들 팟과 그 친구들 여럿은 과목당 10만원을 준다고 하며 린에게 부정행위를 제안한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린은 이왕 선택한 일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한다. 피아노 교습소처럼 컨닝 팀을 관리하던 린의 작전은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모범생 뱅크의 신고로 인해 어그러진다. 린이 꿈꾸던 싱가포르 유학도 물거품이 됐다.


상심해 하던 린은 팟과 그레이스 커플에게 또 다른 제안을 받는다. 국제 시험인 ‘STIC’을 보게 된 팟과 그레이스가 그마저도 린에게 부정행위를 부탁한 것이다. 더 이상 두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던 린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오히려 판을 크게 키운다. 본인의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신고 정신 투철한 뱅크의 도움이 절실하다. 과연 이들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얕보다가 큰코다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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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11월 2일 국내에서 개봉해 18,000명의 관객과 만났다. 흥행 성적은 초라해 보이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영화가 아니다. 고등학생 4명의 컨닝 프로젝트를 2시간 10분짜리 흥미진진한 케이퍼 무비(Caper movie, 인물들의 범죄의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로 만들어 낸 만큼 패기와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친구 두 명의 소소한 컨닝 작전에서 시작한 영화는 학교 전체, 국제 시험에서의 조직적 부정행위로 점점 판을 키운다. 특히 국제 시험이 펼쳐지는 후반부는 관객들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극중 인물들의 작전만큼이나 치밀하게 설계한 시나리오에 현란한 편집과 음악을 더해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영화가 탄생했다.


이 영화로 판타지아영화제, 후쿠오카국제영화제에서 혁신상, 관객상 등의 수상의 영광을 얻은 나타우트 폰피리야 감독은 이제 두 편의 영화를 만든 젊은 영화인이다. 케이퍼 무비의 열혈 팬이라 자처한 감독은 실제 시험지 유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2015년에 개봉해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던 ‘위플래쉬’로 세계를 놀라게 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바로 떠오를 만큼 ‘배드 지니어스’의 나타우트 폰피리야 감독은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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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사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4명의 주연 배우 모두 오디션을 통해 신인배우들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촬영 전부터 캐릭터 이해와 분석을 위해 여러 차례 연기 워크숍을 받으며 단단히 대비했다고. 감독의 세심한 디렉팅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이 신인인지 모르고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는 이미 올해 태국 박스오피스에서 자국 영화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더 나아가 홍콩, 대만, 중국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우리나라만 빼고. 사실 태국 영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토니 쟈의 ‘옹박’ 시리즈나 천진난만 순진무구 로맨스 ‘선생님의 일기’ 정도만 기억해 내는 필자에게 ‘배드 지니어스’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스스로 태국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솔직한 얘기로 소재나 장르적 측면에서 영화의 개성이 점차 매몰되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태국 장르 영화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씨네21 김혜리 기자가 언급한 “한국 장르영화의 상대적 지체를 돌아보게 하는 아시아 대중영화”라는 표현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 똑똑한 흙수저 VS 공부가 싫은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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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장르적 재미뿐만 아니라 사회의 계급 구조를 담고 있다는 점도 한몫 한다. 영화는 4명의 캐릭터를 두 부류로 나눈다. 한쪽은 각각 편부, 편모 가정에 속한 우등생 린과 뱅크다. 다른 한쪽은 재벌 가문의 아들 팟과 그의 여자친구 그레이스다. 똑똑한 흙수저 VS 공부하기 싫어하는 금수저의 극명한 구도로 갈린다.


생활고에 진저리 치는 린과 뱅크는 독기를 품고 공부해 우등생의 지위를 획득한다. 같은 명문고에 다니게 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학교 대표로 퀴즈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수재들이다. 학교에서는 둘 중 한 명만 뽑아 싱가포르로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제안한다. 자비로 유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인 두 사람은 유학비와 자존심을 걸고 은근한 경쟁을 펼치게 된다.


반대로 팟과 그레이스는 천하태평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자인 팟은 놀기 바쁘고, 역시 부족함 없이 자라 배우의 꿈을 키우는 그레이스도 공부에 재능이 없거나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심지어 교사가 사전에 시험지 답안을 유출해서 줘도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 두 사람은 아예 작정하고 원하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린에게 돈을 지불하고 부정행위를 한다. 매 시험이 긴장되긴 하지만 그 과정은 아주 쉽고, 결과는 만족스럽다.


린과 뱅크가 악착같이 공부를 하고 매 시험마다 최선을 다하는 반면에, 팟과 그레이스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 이 구조는 4명이 모여 부정행위 작전을 진행하면서도 똑같다. 팟과 그레이스는 돈만 지불하고 린과 뱅크를 기다린다. 린과 뱅크는 완벽한 부정행위를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시험 과정에 생길 모든 변수에 대응하며,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물론 이는 두 사람의 선택이고, 불법적인 일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금수저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기꺼이 이 흙수저들의 고군분투 컨닝 프로젝트에 감정적으로 동참한다. 불법적인 일인 줄 알면서도 우수한 인재들이 꼭 성공하길 바라는 것이다. 영화가 주는 장르적 쾌감은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윤리적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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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영화가 계급 구조를 둘로 나누는 데에 머물렀다면 너무 전형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린과 뱅크의 캐릭터를 정반대로 설정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한다. 돈이 궁하던 린은 그레이스를 만나면서 공부를 하면서 돈도 버는 ‘새로운 방법’에 눈을 뜬다. 린이 컨닝의 ‘혁신’을 이끌어 내며 점점 판을 키우는 동안, 친구들의 부정행위를 발견한 뱅크는 이들을 제지한다. 흔히 말하는 ‘고자질쟁이’가 된 것인데, 도덕적으로 옳은 뱅크의 행동을 캐릭터 간 갈등의 불씨로 점화시키는 건 부정행위를 이유로 린을 장학생에서 탈락시키겠다는 학교의 방침이다.


뱅크는 거의 도화지처럼 순수한 인물로 그려진다. 시험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부정행위는 아무리 친구들이라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고, 세상은 녹록치 않지만 정직한 방법으로 헤쳐 나가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속 중요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도 유학을 못 가게 된 뱅크는 막다른 길에 서고, 결국 린 일행이 펼치는 국제 시험 컨닝 작전에 동참하게 된다.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교육은 언제나 신분상승의 유일한 도구처럼 활용되어 왔다. 21세기 들어, 부의 대물림이 가속화되면서 영화가 보여주듯,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나갔고 우리가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 구조에도 자본주의의 속성이 침투해 들어왔다. 린과 뱅크, 두 사람은 자본주의의 마력에 전혀 다른 대응을 하는 인물들이다. 한 명은 자본주의와 금수저들의 부의 대물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돕는 반면, 다른 한 명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린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뱅크를 답답해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현실에 물들어 가는 뱅크의 모습에 안타까워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린과 뱅크가 말 그대로 ‘끝’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우리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과연 린과 뱅크의 선택을 응원하고 있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 그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영화 속 인물들을 응원하던 이들도 영화의 결말부에선 여러 가지 윤리적 고민과 맞닥뜨릴 수 있다. 결말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의 선택에 따라 우리가 본능적으로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도 발견할 수 있다. 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 영화를 좀 더 확장시킨다면, 우리는 이 사회의 공고한 계급 구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도 가능해진다. 답은 언제나 사지선다가 아닌, 각자의 몫이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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