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보다 마음이 먼저 열리는 프로덕트 RED

2017년 12월 01일 18:30

12월1일은 에이즈 퇴치의 날입니다. 이 날을 기억하게 되는 이유는 이 때를 즈음해 여러 기업들이 ‘레드(RED)’ 캠페인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오늘 애플의 앱스토어만 열어봐도 온통 빨간색의 앱들로 채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레드 관련 제품, 그러니까 ‘프로덕트 레드’라는 딱지가 붙어서 출시된 제품들을 처음 봤을 때는 지금과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익숙하던 제품이 빨간색으로 칠해진 것이 예뻤다는 것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판매액의 일부가 어딘가에 기부된다는 것은 꼭 레드가 아니어도 기업들이 종종 벌이는 이벤트지요. 프로덕트 레드의 기부처는 ‘(RED)’입니다. 바로 에이즈 퇴치를 목표로 하는 단체입니다.


이 이벤트는 묘한 제품들을 많이 낳았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소더비 경매 시장에 올라온 원통형 ‘맥 프로’였습니다. 이 제품은 세상에 단 한 대만 꺼내놓는다는 희소성도 있었습니다. 이 맥프로는 화제 끝에 97만7000 달러, 우리 돈으로 10억원이 조금 넘는 돈에 팔렸고 그 돈은 레드 재단에 기부됐습니다.

 

애플 제공
애플 제공

애플은 이 레드 재단에 가장 많이 기부하고, 관련 활동도 많이 하는 기업입니다. 애초 이 재단의 시작이 애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레드 재단은 U2의 리더 보노와 DATA(Debt, AIDS, Trade in Africa)의 바비 슈라이버가 함께 시작했습니다. 이때 기부의 방법으로 레드의 로고와 피를 뜻하는 붉은색을 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방법을 떠올렸고,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새빨간 아이팟을 출시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프로덕트 레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게 벌써 11년이나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는 나이키, 갭, 컨버스,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의 기업들이 이맘 때면 빨간색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애플 리사잭슨 환경 담당 수석 부사장과 앱스토어 레드 캠페인에 참여한 앱 개발사들을 만났습니다. 잠깐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레드 캠페인을 새로운 시선으로 더 깊게 바라볼 수 있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레드 이벤트의 핵심은 어떤 제품이 빨간색 옷을 입을까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을 비롯한 기업들이 꾸준히 이 이벤트를 이어가면서 서서히 에이즈 퇴치와 연결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 돈이 얼마나 모이고, 어디에 쓰이는지까지는 잘 몰랐던 게 사실입니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레드 재단의 주 목표는 에이즈를 치료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퇴치’하는 데에 있습니다. 에이즈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전염입니다. 에이즈는 많은 치료법이 개발되어서 당뇨병처럼 관리만 해주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고, 더 이상 전염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의료 관리가 되는 국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소득 국가들이 에이즈로 힘들어하는 것은 바로 약의 공급이 쉽지 않고, 그 사이에 아이들이 HIV를 갖고 태어나는 데에 있습니다.


하루에 한 알씩만 먹으면 이 바이러스를 억제하고, 전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 약은 하루치가 30센트밖에 안 됩니다. 지난해 프로덕트 레드에 참여한 앱 개발사들의 “우리 앱 하나를 팔면 65일치 약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실제로 이 약을 나눠주면서 신생아 감염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2분30초마다 한 명의 아이가 HIV를 안고 태어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약이 도움이 필요한 곳곳에 전달되어야 할 겁니다.

 

다행히 그 기부 규모는 꾸준히 늘어가고 있습니다. 애플은 지난 1년동안 3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26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역대 최고 규모로 1억 4400만 일분의 약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애플은 지난해까지 레드 재단에 10년동안 1억2000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그 4분의 1만큼을 1년동안 모은 셈입니다. 올해 애플이 아이폰7의 프로덕트 레드 에디션을 내놓은 것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레드 재단의 전체 누적 모금액도 지난해 3억6000만 달러에서 올해는 5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치료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2090만명이 에이즈 관련 의약품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1950만명, 2000년에는 70만명이었습니다. HIV에 감염된 임신부 치료 비율도 2010년 47%에서 2016년 76%로 늘어났습니다. 매일 태어나는 HIV 보균 신생아도 2005년 하루 1200명에서 400명 이하로 줄었습니다. ‘2020년이면 에이즈 전염을 뿌리 뽑을 수 있다’는 레드 재단의 이야기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잊지 말자는 이유로 달력에 기념일도 새깁니다. 하지만 결국 그 날을, 또 사람들을 잊지 않게 하는 데에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프로덕트 레드는 벌써 11년째 꾸준히 이어져 왔고, 1년에 한번씩이라도 에이즈 퇴치가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그 관심이 커지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매년 이날을 잊지 않고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도 그 노력의 영향 중 하나일 겁니다. 올해도 캔디크러시 사가를 만든 ‘킹(King)'을 비롯해 트위치, 뱅크오브아메리카, 스타벅스, 코카콜라, 트위터, 세일즈포스 등의 기업들이 레드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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