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뇽뇽 사회심리 I 끝없는 자기 비난은 도망의 다른 이름

2017년 12월 02일 15:00

자기 비난은 반드시 필요한 거라는 시각이 있는 거 같다. 자신이 벌인 실수나 실패, 잘못 뿐만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은 각종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내가 조금만 더 잘 했으면.. 그걸 몰랐던 내 탓이네.. 라며 스스로를 미워하고 나쁜 말을 던지는 것이 곧 ‘책임’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자기비난은 책임지는 행위와 관련이 있을까?

 

GIB 제공
GIB 제공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올바른 결과를 내기 위해 올바른 선택을 내리고 적절한 노력을 하는 등 일의 과정 하나하나에 직면하며 개입하는 것이다. 일이 잘 되지 않거나 스스로가 실망스러울 때에도 도망치지 않고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끝없이 나를 비난하는 건 사실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최근 여러 일더미에 묻혀있다가 정작 중요한 일을 데드라인이 가까워오는데도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엄청난 불안감과 함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시간 잘 지켜서 잘 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나의 반응을 살펴보았더니 ‘이 바보야. 너 왜그랬어’라며 자신을 막 패다가 ‘오마이갓 나는 이제 끝났어’라는 체념이 잇따르고 결국엔 ‘연락 끊고 도망칠까? 잠적할까?’의 순이었다.


실제로 자신에 대한 지나친 비난이 결과적으로 도피행각을 불러온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지나친 비난이 불러오는 각종 감정들에 휩쌓여 있으면 그 감정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실제로 정작 중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다가 ‘나는 나쁜 인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는 사람들은 잘못을 고치기 위한 행동을 덜 보인다. 이런 사람들보다 ‘나는 나쁜 행동’을 했다며 특정 행동에 죄책감을 한정시킬 줄 아는 사람이 잘못은 고치면 된다며 행동 수정을 비교적 잘 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쁜 인간’보다 ‘나쁜 행동’을 고치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Tangney et al., 2005). 따라서 실수나 잘못을 해도 이걸  나의 정체성과 자아가 걸린 이슈(self-issue)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GIB 제공
GIB 제공

물론 이해하는 것(understanding)과 봐주는 것(condoning)은 다르다. 정확한 현실인식은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에 대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비현실적인 시각 말고 인간으로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걸로 인생 끝이 아니라 여기에서도 충분히 배울 건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면 됨을 아는 것이다. 나의 약점이 종종 실수를 불러오듯 타인의 약점과 실수에도 관대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가능하면 스스로를 패는 일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지을 수 있게된다. 정작 중요한 건 문제를 수습하는 행동임을 알기에 금방 시선을 옮겨 책임을 지는 데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빨리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심하게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잘못한 타인을 용서하고 새로운 기회를 주듯 자기 자신 또한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Tangney의 표현에 의하면 “용서할 수 없는 타인과는 안 보면 그만이지만 용서할 수 없는 나와는 안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Tangney, J. P., Boone, A. L., & Dearling, R. (2005). Forgiving the self: Conceptual issues and empirical findings. In E. L. Worthington Jr. (Ed.), Handbook of forgiveness (pp. 143–158). New York, NY: Routledge.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