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연구, 평가는?] 미국, 한국식 정년 보장 없는 국립보건원 편

2017년 11월 29일 15:00

우리나라 국책 연구개발(R&D) 성공률 98%.

논문 수와 같은 정량적인 평가에 치중하는

R&D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세상에 없던 연구, 어떻게 평가할까?

 

과학동아 제공
 
 
미국 워싱턴DC에서 북서쪽으로 17km 떨어진 작은 도시 베데스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이 도시에는 세계 최고의 의생명 분야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메인 캠퍼스가 자리해 있다. 이곳에는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난치성 희귀질환 환자들도 임상시험에 희망을 걸고 찾아온다. 11월 1일 NIH 캠퍼스 앞에 도착하자 지하철 메디컬센터역 출입구 벽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는 ‘환자를 최우선으로(Patient First)’ 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환자들이 여생 동안 임상시험에 참여하며 병마와 싸워온 덕분에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연구가 진일보 할 수 있었음을 항상 마음에 새겨두겠다는 NIH식 표현이다.
 
 
융합과 협력 연구에 비중
 
환자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NIH의 구호는 이곳 연구자들을 평가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NIH가 운영하는 연구과제는 보통 NIH 소속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내부 연구 프로그램’과 연구소 밖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외부 연구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는 과학적 우수성이다. 논문 수나 임팩트 팩터(IF)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독창성, 학계에서의 영향력, 사회적 공헌도, 높은 재현성 등이 평가 기준이다.

 
롤랜드 오웬스 NIH 내부 연구 프로그램 담당 부원장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크리스퍼 (CRISPR-Cas9) 유전자 가위’처럼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연구 주제는 연구자의 과학적인 연구 능력과 잠재적 가능성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초연구가 30% 정도를 차지하는 내부 연구 프로그램의 경우 평가에서 연구의 독창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반면 목표 지향적인 성격이 강한 외부 연구 프로그램은 사회 공헌도를 중요하게 본다.

 
하지만 최근에는 내부 연구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질병퇴치로 인류에 공헌한다는 NIH의 비전과 임무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도 평가에서 중요한 잣대가 됐다. 오웬스 부원장은 “연구 수준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공중보건에 도움이 되는 연구여야 한다”고 말했다.
 
NIH는 올해 7월 내부 연구 프로그램의 평가 제도를 일부 재정비 하고, 연구자들 간의 융합과 협력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평가하는 항목의 비중을 늘렸다. 공동 연구나 학회 활동, 국제학술지 편집위원 활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오웬스 부원장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연구가 점차 늘고 있어 융합과 협력이 중요해졌다”며 “리더십과 멘토링, 연구실 구성원의 인종과 성 다양성, 의사소통 능력도 평가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롤랜드 오웬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내부 연구 프로그램 부원장(왼쪽)과 신시아 매시슨 NIH 국립암연구소(NCI) 연구본부 평가지원팀 박사(오른쪽) - 송경은 제공
롤랜드 오웬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내부 연구 프로그램 부원장(왼쪽)과 신시아 매시슨 NIH 국립암연구소(NCI) 연구본부 평가지원팀 박사(오른쪽) - 송경은 제공
 

실패한 연구도 이유만 명확하면 지원

 

모든 평가는 피어 리뷰(동료평가 방식)로 진행된다. 내부 연구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24개 NIH 연구소의 경우 연구책 임자(PI)를 대상으로 4년마다 외부 석학들로 구성된 ‘과학 자문위원회(BSC)’가 평가를 한다. 보통 PI 5~6명이 모여 있는 연구실 단위로 10여 명의 BSC 위원이 평가를 한다.

 

1년 전 연구자들에게 평가 일정과 가이드라인 등이 공지된다. 연구책임자들은 A4 용지 25장 분량의 성과보고서를 작성해 평가 두 달 전까지 제출한다. 1998년부터 NIH 국립암연구소(NCI)의 PI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상 선임연구원은 “최근 4년간 발표한 논문 중 본인이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논문 5개를 중심으로 작성한다”며 “나머지는 대부분 앞으로의 연구에 대한 계획과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BSC 위원 두 명이 대표로 서면 평가를 하고 나면, BSC 위원 16명 전원이 직접 연구실을 방문해 현장 평가 를 한다. PI들과 연구실 실무책임자(Lab Chief)가 각각 20 분씩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한 뒤 PI별 인터뷰가 진행된다. 이 연구원은 “개별 인터뷰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어필하고, 연구실의 애로사항을 가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현장 평가에서 BSC 위원들이 토론을 거쳐 점수를 투 표해 도출한 평균값이 2차 평가 결과다. 이후 전체 BSC 검토를 거쳐 4개월 뒤 연구실에 점수를 포함한 정성평가 결과가 통보된다. 이의 신청 기간은 한 달이다.

 

신시아 매시슨 NIH 국립암연구소 연구본부 평가지원팀 박사는 “만약 어떤 연구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왜 실패 했는지, 중간에 연구 주제를 바꿨다면 왜 바꿨는지 등 그 이유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연구 과정의 과학적 우 수성을 입증하면 문제 삼지 않는다”며 “오히려 연구비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테뉴어 받아도 연구 질 떨어지면 OUT

 

이런 기준은 테뉴어(종신직) 연구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된다. 엄밀히 말하면 NIH에는 ‘한국식 테뉴어’라는 개념이 없다. 송민경 국립암연구소 암치료평가프로그램 책임자는 “한번 테뉴어를 받았다고 해서 계속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칙적으로 해고하지는 못하지만, 연구의 질적 수준이 너무 떨어지면 연구비나 연구 장비, 공간 등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NIH 에는 PI 1000여 명이 연구실을 이끌고 있으며, 이 중 약 800명이 테뉴어, 약 200명이 테뉴어 트랙에 있다. 테뉴어를 받은 PI는 4년 주기로 계속 평가를 받는다.

 

한편 공개 채용을 통해 새로 영입된 PI는 테뉴어 트랙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테뉴어 여부는 2년 뒤 중간평가, 다시 4년 뒤 최종평가를 거쳐 결정된다. 최종평가에서 테뉴어를 받지 못하면 즉각 연구소를 떠나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우에 따라 2~3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질 수 도 있다. 오웬스 부원장은 “NIH 소속 연구자들은 외부에서 연구 수주를 안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성실히 연구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고 말했다.

 

 

ㅡ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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