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연구, 평가는?] 일본, '113번의 기적' 만든 이화학연구소 편

2017년 11월 28일 16:03

우리나라 국책 연구개발(R&D) 성공률 98%.

논문 수와 같은 정량적인 평가에 치중하는

R&D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세상에 없던 연구, 어떻게 평가할까?

 

 

(1) 해외 석학 참여한 기초과학연구원(IBS) 첫 평가 열기 ‘후끈’

(2) [독일] 칸막이 없는 연구 문화 - ‘노벨상 사관학교’ 막스플랑크연구소  

(3) [일본] 100년 日기초과학, 경쟁력의 상징 - ‘113번의 기적’ 만든 이화학연구소

(4) [미국] 성공 실패보다 ‘성실 연구’ 최우선 - ‘한국식 정년 보장’ 없는 국립보건원 (11월 29일 온라인 공개)  

 

 

도쿄 시내에서 전철로 40분 쯤 달리면 사이타마(埼玉) 현 와코(和光) 시가 나온다. 이곳엔 일본 기초과학 연구의 산실로 불리는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RIKEN)가 있다. 지난해 이화학연구소는 일본 기초과학 연구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모리타 고스케(森田浩介) 이화학연구소 그룹장 겸 규슈대 교수가 발견한 113번 원소가 ‘니호늄(nihonium)’으로 공식 결정됐기 때문이다.

 

니호늄은 일본의 자국어 발음인 ‘니혼’에서 따왔다. 주기율표의 원소 이름에 국가명이 들어간 경우는 아시아에서는 니호늄이 처음이다. 그간 주기율표 전체에서도 국가명이 들어간 원소는 게르마늄(독일), 폴로늄(폴란드), 프랑슘(프랑스), 아메리슘(미국) 등 4개가 전부였다. 

 

10월 말, 이화학연구소에 가기 위해 와코시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자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파란색 종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113 신원소 발견의 도시, 와코시’.

와코시 전철역에서 이화학연구소까지 약 1.1㎞에 이르는 길에는 1번 수소(H)부터 113번 니호늄(Nh)까지 1.2m 간격으로 원소 표석을 세워 놨다.

 

 

장기 연구 안정적 지원


이화학연구소의 경쟁력은 기초과학에 대한 일본 정부와 사회의 아낌없는 지원이 밑거름이 됐다. 이는 연구개발 (R&D) 평가 시스템에서도 드러난다. 이화학연구소 본부에서 연구개발 평가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마루야마 료스케(丸山亮介) 평가추진과장은 “이화학연구소는 논문 수 등을 기준으로 삼는 정량적인 평가보다는 정성적인 평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113번 원소 발견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연구를 했는지 여부가 평가에서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리타 그룹장이 113번 원소를 처음 발견한 건 2004년이었다.

 

2016년 기준 이화학연구소 연구원은 약 3500명이다. 이 가운데 5년마다 평가를 통해 연구원 신분을 유지하는 임기제 연구원이 90%로 대다수다. 정년이 보장된 테뉴어 연구원은 10%에 불과하다. 마루야마 과장은 “테뉴어 연구원 수를 40%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연구자가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장기적인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문위원회 시스템 최초 도입

 

이화학연구소는 2~3년마다 개최하는 리켄자문위원회(RAC·Riken Advisory Council)에서 R&D 평가의 기본 잣대를 결정한다. 리켄자문위원회는 국내외 석학들로 구성되며, 3일간 열띤 논의를 통해 향후 5년간 이화학연구소의 R&D 방향을 정한다. 가장 최근 회의는 2016년 12월 개최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초대 원장을 지낸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도 자문위원 18명 중 한명으로 참석했다.

 

마루야마 료스케 이화학연구소 평가추진과장(왼쪽)은“자문위원회를 통한 정성적인 평가가 연구개발(R&D) 시스템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김유수 종신 주임연구원은“일본 과학계는 동료 과학자에게 인정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이현경 제공
마루야마 료스케 이화학연구소 평가추진과장(왼쪽)은“자문위원회를 통한 정성적인 평가가 연구개발(R&D) 시스템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김유수 종신 주임연구원은 “일본 과학계는 동료 과학자에게 인정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이현경 제공

여기서 도출된 이화학연구소의 R&D전략은 다분히 정성적이다. 5가지 전략에서 숫자는 찾아볼 수 없다. 연구개발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연구 운영 모델을 개척하고, 과학적 우수성을 통해 새로운 연구개발 결과를 얻음으로써 세계를 이끌며, 과학기술 혁신의 허브가 되고, 전 세계 우수한 인재의 산실로 자리 잡을 것이며, 과학연구에서 세계 수준의 리더를 양성하라고 권고한다. 마루야마 과장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운영하는 자문 위원회에서 힌트를 얻어 일본에서는 이화학연구소가 처음으로 R&D 평가 시스템에 자문위원회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연구자별 세분화된 평가 기준

 

연구소 규모가 방대한 만큼 연구자의 형태에 따라 평가기준도 세분화돼 있다. 이화학 연구소의 연구 조직은 크게 연구실(lab)과 센터로 나뉜다. 연구 성격으로 구분하자면 연구실은 기초연구에, 센터는 기초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 응용연구에 치중하는 편이다. 규모에서도 차이가 있다. 연구실은 이화학 연구소에 서 과학자로는 가장 높은 직책인 종신 주임연구원(Chief Scientist)과 연구원 3~4명으로 이뤄진 소규모 그룹인 반면, 센터는 센터장을 중심으로 여러 연구팀이 모여 있어 규모가 크다. 현재 이화학연구소는 38개 연구실과 14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마루야마 과장은 “연구실과 센터에는 독립적인 평가시스템이 적용된다”며 “종신 주임연구원의 경우 7년마다 평가가 이뤄지고, 센터장은 센터자문위원회의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센터 소속인 팀 리더는 센터자문위원회와 센터장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이화학연구소 종신 주임연구원 29명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인 한국인 김유수 박사는 “외부 전문가 5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연구 성과 발표와 질의응답 등에 꼬박 하루가 걸린다”며 “단순히 평가만 받는 게 아니라 향후 연구 계획이나 연구실 운영에 대한 조언을 듣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일본의 R&D 평가시스템은 오랫동안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에 무게를 두는 형태로 발전해왔다”며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동료 과학자에게 인정받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령 평범한 수준의 논문 10편보다 뛰어난 논문 1편이 과학자로서 더 인정받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화학연구소는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100주년 홈페이지에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초 연구를 통해 사회발전에 이바지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마루야마 과장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통한 재생의학이나 지난해 새로 개설한 인공지능(AI)센터 등을 통해 미래사회를 바꿀 기초과학 연구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ㅡ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현경 편집장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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