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 수능시험 연기와 스트레스 관리

2017년 11월 21일 15:30

숙종 3년의 일입니다. 회시 즉 2차 과거 시험에 부정을 저지른 자가 너무 많이 적발되자, 조정은 이미 치른 초시를 없던 일로 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임금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은 당연히 취소되었죠. 당시 수험생, 선비 이동표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전합니다.


“과거를 이틀 동안 다 무사히 본 후에 선비들이 남을 데리고 든 사람이 있다고 해 (합격자) 방을 내지 않고 그 과거를 파장(罷場)하고 다시 회시(會試)를 보게 해 처음에는 (회시 보는 날을) 8일로 정하였다가 또 16일로 연기했는데 그날이나 반드시 볼지(시험이 치러질지), (이후로) 머물기가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 한국학 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 제공에서 발췌, 수정

 

조선 시대 과거 시험장(18세기 민화). - 주간 동아 제공
조선 시대 과거 시험장(18세기 민화). - 주간 동아 제공

수능 연기와 불안


포항 지진이라는 재난으로 인해서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었습니다. 시험 전날에는 ‘공부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과 같은 상상을 하곤 하는데, 정말 시험이 연기되자 많은 수험생들이 당황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수능 시험일에 맞추어 공부 및 페이스 조절을 해온 터라, 갑작스러운 시험 연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짜증을 내고, 불안과 초조감을 호소하는 수험생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심리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일주일 때문에 갑자기 없던 실력이 생겨나거나 혹은 실력이 떨어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부분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힘이 날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면, 평소에 자신 있던 과목을 들여다보면서 안정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소와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 잠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실 모든 수험생에게 동일한 조건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좋아하던 환경에서 변함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선배,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불안이 조절되지 않으면 이완요법이나 복식호흡도 도움이 됩니다.


간단한 복식 호흡
1.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눕는다. 눈을 감아도 좋다
2. 배 위에 손을 얹고 호흡을 느낀다.
3. 천천히 코를 이용해서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4. 잠시 숨을 멈춘 후, 다시 숨을 완전히 뱉는다.
5. 같은 동작을 5-10회 반복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사실 여러분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45세 무렵의 선배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죠.


약 25년 전 1992년 후기 대입학력고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모 대학교에 보관 중이던 시험지가 뜯겨진 채로 발견되었죠. 전대미문의 사태였습니다. 대학교 경비원이 시험지를 유출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출제된 시험지는 모두 폐기되었고, 출제위원은 다시 시험문제를 출제해야 했습니다. 부랴부랴 새로 시험문제를 만들었죠. 이 일로 인해서 학력고사를 하루 앞둔 수험생들은, 무려 20일이 지나서야 겨우 후기 학력고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1992년 1월 21일 헤드라인. 후기 대입시 2월 10일로 연기. - 동아일보 제공
동아일보 1992년 1월 21일 헤드라인. 후기 대입시 2월 10일로 연기. - 동아일보 제공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 그냥 고통을 감내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수능시험 연기는 추가적인 사고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을 이해하면, 조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험이 연기된 것은 전적으로 수험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지진이 나도, 시험은 무조건 강행한다!’고 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시험도 잘 보고, 원하는 대학도 합격하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안전과 행복입니다. 정말 이 사회가 ‘행복은 단지 성적순’으로 생각했다면, 아마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그대로 수능을 강행했을 것입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괴롭겠지만, 그것이 수험생 여러분을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힘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불의의 취소 사태로 과거 시험을 보지 못한 조선의 선비, 이동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낙담하여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다시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무려 장원으로 급제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오히려 시험 취소가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수험생 여러분!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길 기원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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