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이후 MR, 가상공간 아닌 실제 내 방에 좀비가 나타난다

2017년 11월 16일 23:30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MR을 발표했습니다. MR은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혼합 현실(Mixed Reality)라고 부릅니다. MR은 지난 5월 개발자 컨버런스 빌드(BUILD)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베를린 가전 전시회 IFA 등 컴퓨터와 콘텐츠가 있는 곳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고했던 것처럼 윈도우10의 가을 크리에이터스 업데이트와 함께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우리나라에도 11월15일에 플랫폼이 소개됐고, 21일부터 헤드셋이 판매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R은 이미 흔할대로 흔한 가상 현실 기기 중 하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좀 더 큰 플랫폼을 그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홀로렌즈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 구루인 알렉스 키프만은 빌드 행사 직전 인터뷰를 통해 “스마트폰 시대는 끝났고,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MR이 다음 플랫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급진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라는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최호섭 제공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왜 MR이지?’


사실 저도 이 부분은 가장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MR과 VR, 그리고 AR은 과연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결국 그 용어가 이 가상 현실의 개념을 더 헷갈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VR은 Virtual Reality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가상 현실’이지요. 오큘러스나 HTC 바이브, 플레이스테이션 VR 등이 대표적인 VR입니다. 헤드셋 앞이 막혀 있고 눈 앞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방식이지요.


AR은 Augmented Reality의 약자입니다. 증강 현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할 겁니다. 카메라나 홀로그램을 이용해 현재 공간에 다른 콘텐츠를 더하는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가 대표적인 AR기기이고,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화면을 이용한 AR도 오랜 콘텐츠입니다. ‘포켓몬 고’가 대표적이지요.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히 보면 앞이 막혔냐, 뚫렸나입니다. 가상의 공간에 이용자를 데려다 놓는 것은 VR, 현실 공간에 가상의 사물을 가져오는 것을 AR로 봐도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R은 기기보다도 플랫폼이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 최호섭 제공
마이크로소프트의 MR은 기기보다도 플랫폼이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그리고 MR은 이 둘을 분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혼합 현실이라고 부르고 영문 약자로는 Mixed Reality, 혹은 Merged Reality로 부릅니다. VR과 AR은 기기와 기술에 더 가깝고 MR은 이를 아우르는 가상 현실의 통합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R도 헤드셋만 보면 VR에 가까운 기기입니다. 그럼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이를 MR이라고 부를까요? 우리가 영어를 그대로 옮기면서 VR이 곧 가상 현실로 통하게 됐지만 사실 우리말의 의미대로 해석하자면 '가상 현실’이라는 말이 가장 큰 개념이고, VR과 AR은 가상현실을 풀어내는 기술적 방법으로 가르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R이 의미하는 것도 큰 의미의 가상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마이크로소프트의 MR은 헤드셋의 이름이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가상 현실을 위한 플랫폼과 프레임워크, 앱 장터, 그리고 헤드셋의 표준을 정한 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역할입니다. 생태계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지요. 삼성전자를 비롯해 에이서, 에이수스, 델 등이 내놓은 MR 헤드셋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MR 플랫폼과 그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하나의 헤드셋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가상현실 시장이 VR로 집중되던 2015년 홀로렌즈를 꺼내 놓았습니다. 홀로렌즈는 홀로그램을 이용한 증강현실에 가까운 기기입니다. 하지만 이 기기는 필요에 따라서 VR처럼 콘텐츠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AR과 VR 사이의 오묘한 경계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둘이 결국 통합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봤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때부터 홀로렌즈를 MR 기기라고 불렀습니다. MR은 기기였던 것이지요.

 

윈도우를 총괄하는 테리 마이어슨 수석 부사장은 MR과 윈도우10 환경의 통합을 이야기했습니다. 플랫폼과 관련된 전략이지요. - 최호섭 제공
윈도우를 총괄하는 테리 마이어슨 수석 부사장은 MR과 윈도우10 환경의 통합을 이야기했습니다. 플랫폼과 관련된 전략이지요. - 최호섭 제공

하지만 올해부터 그 개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MR은 단순한 가상 현실 기술의 조합이 아니라 가상 현실 전체의 플랫폼으로 생각을 바꾸고, 그 안에 콘텐츠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은 VR 기기로, 어떤 것은 AR 기기로 볼 수 있도록 나눠지긴 하지만 결국 그 가상 현실 콘텐츠는 모두 이 MR 플랫폼 위에 모이는 것이지요.


이는 비단 마이크로소프트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페이스북도 오큘러스를 플랫폼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오큘러스 대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MR과 비슷한 환경을 바라본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오큘러스나 바이브같은 VR과 다른 건가?’


처음 MR기기를 봤을 때는 ‘이것도 흔한 VR 기기 중 하나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사실 기기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 VR 기기들이 헤드셋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에 카메라나 표식을 설치하는 것과 달리 이 기기에는 주변 환경을 3D로 읽어내는 카메라가 달려 있습니다. 카메라 두 개로 주변을 모델링하기 때문에 모션 센서와 함께 쓰면 더 정확하게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단 설치가 쉽습니다. 그냥 헤드셋을 PC에 연결하고 머리에 쓰면 됩니다. 최근에 나오는 헤드셋들은 대부분 이 방식을 씁니다. 구글이 곧 내놓을 데이드림 스탠드얼론 기기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가상 현실 환경을 MR이라고 부르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바로 세상과 이용자를 연결한다는 부분이지요.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초기 VR 기기들은 주변 환경보다 가상 현실을 눈 앞에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MR 헤드셋은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주변을 읽어들이고, 이를 콘텐츠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이 카메라가 증강현실처럼 주변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공간을 이용자와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R이 기술보다는 개념에 가깝다는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다른 형태의 헤드셋이 개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닙니다. MR의 족보를 따져 올라가면 그 위에는 ‘X박스 키넥트’와 테이블 PC인 ‘서피스’가 있습니다. 홀로렌즈가 아니냐고요? 키넥트는 성공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공간을 인식하고, 사물을 읽어 콘텐츠에 반영하는 환경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기기입니다. MR 헤드셋에 붙은 공간 인식 카메라가 그 역할을 고도화한 것이지요. 이는 홀로렌즈에도 비슷하게 적용됐습니다.


태블릿이 아니라 과거 테이블 PC ‘서피스’는 사람의 움직임을 기기와 연결하는 기기입니다. 서피스가 발표되던 당시에는 큰 터치스크린을 만드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다섯개를 통해 손가락의 움직임을 읽어들였지요. 이용자와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시도는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MR은 VR과 다르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야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앱이나 개발 환경도 다른 건가?


마이크로소프트는 MR을 자체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기존 환경과 호환되지 않는 또 하나의 헤드셋 규격이 나온 셈입니다. 마치 콘솔 게임기처럼 콘텐츠에 따라서 어떤 게임은 오큘러스를, 또 어떤 것은 바이브를 써야 하고, 여기에 MR이 하나 더 더해진 것이지요.


파편화는 줄어드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기기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으니 말이지요. 일단 마이크로소프트는 VR로서는 후발 주자인 셈입니다. 아무리 윈도우10을 갖고 있다고 해도 생태계에 전용 콘텐츠를 더 개발해달라는 요구는 꽤 부담스럽습니다. 그건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미 윈도우 스토어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개방입니다. MR은 VR 콘텐츠의 단골 프레임워크인 유니티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픈 VR 개발 환경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구동 환경을 바꾸는 포팅이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기존 콘텐츠를 직접 돌리기는 어렵지만 MR용 콘텐츠로 하나 더 만드는 것은 거의 손 대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그래서 MR은 출발 초기지만 콘텐츠가 많은 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스토어에 MR 카테고리를 열었고, 스팀 VR도 그대로 흡수해서 쓸 수 있습니다. 오픈VR은 거의 모든 VR 관련 기업들이 원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머지 않아 헤드셋이 콘텐츠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지 않을 겁니다. 이는 MR 뿐 아니라 대부분의 VR에 해당되겠지요.


MR 헤드셋은 지금까지 여섯가지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의 ‘HMD 오딧세이’가 가장 먼저 선보였습니다. 해외에서는 에이서, 에이수스, 델, 레노버, HP가 헤드셋을 출시했지요. 아직 이 기기들이 국내에 들어올 계획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달동안 여러 곳에서 써 본 결과 시야각이나 반응성, 화질 등은 거의 차이가 없었고, 응답속도나 화질 등 결과물 자체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헤드셋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통해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