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영화] 사회생활 잘하는 법, ‘인턴’

2017년 11월 11일 09:00

# 영화 ‘인턴’(The Intern)


감독: 낸시 마이어스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앤 해서웨이
장르: 코미디, 드라마
상영시간: 2시간 1분
개봉: 2015년 9월 24일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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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세 CEO와 70세 인턴의 만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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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의 창업자가 내세운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인터넷 의류 쇼핑몰 ‘ABOUT THE FIT’은 소위 ‘뜨는’ 회사다. 처음 25명으로 시작한 사원 수는 벌써 220명으로 늘어났다. 회사는 경험 많은 인재를 채용하면서 사회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는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한다. 은퇴 후 부인과 사별한 ‘벤’(로버트 드 니로 분)은 삶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이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한다. 벤은 회사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줄스’(앤 해서웨이 분)의 비서로 발령받는다.


하지만 회의하랴, 미팅하랴 정신없이 바쁜 줄스는 자신이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최종 승인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나이 많은 사람을 어려워한다. 그런 그녀에게 부모님과 동년배인 벤을 비서로 두는 건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줄스는 벤에게 일을 주지 않지만, 오랜 연륜으로 눈치껏 일을 하던 벤은 줄스의 기사 노릇까지 하게 된다. 덕분에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된다.


줄스는 외부 CEO를 영입하라는 투자자들의 성화가 불만이다. 누구보다 회사에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고, 회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이기에, 자신을 내치려는 것 같은 투자자들의 태도에 더욱 비참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외부 CEO 후보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번번이 퇴짜를 놓는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고 있는 남편과도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줄스와 벤, 두 사람의 회사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 북미 다음으로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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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CEO와 70세 인턴의 만남. 설정이 신선하다. 그에 못지 않게 조합도 신선하다. 아카데미 수상 배우인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왓 위민 원트’,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만났다. 보는 이들을 즐겁고 훈훈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배우들 덕분에 ‘인턴’은 재작년 추석 극장가에서 350만 명이 넘는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해외에서는 고전했던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이 터져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자신의 SNS에 한국 관객들에게 특별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왜 ‘인턴’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했을까? 기본적으로 독특한 설정과 역할에 가장 적합한 캐스팅이 빛을 발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CEO-인턴의 관계, 남성-여성의 관계를 반대로 뒤집는 설정은 반전의 재미를 준다. 그것도 젊은 여성 CEO를 연기하는 당찬 앤 해서웨이와 은퇴 후 70세에 인터넷 회사에 입사한 나이 든 인턴 로버트 드 니로라니! 두 사람은 언제나처럼 기대에 부응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생각보다 케미도 좋다.


매 작품마다 꽤나 준수한 흥행을 기록하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라는 점도 흥행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영화는 감독 스스로 제작이 어려웠다고 평할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인데다 갈등보다는 낭만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슈퍼 히어로 무비가 주류를 이루는 극장에서 이런 영화가 살아남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이야말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가장 자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의외의 설정, 특별한 만남이 주는 보편적인 공감의 폭은 예상보다 크다.

 


# 우리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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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기자들은 영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라는 ‘어른’의 모습을 제시했기 때문에 사랑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영화의 개봉 전후로 우리 사회에 ‘진짜 어른’이 부재하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고, 이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기성 세대에게서 가르침을 얻고 싶어하지 않는다. 시대는 변하는데 여전히 자기들의 기준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성 세대를 보고 젊은 세대는 특별히 ‘꼰대’라는 호칭을 붙여주지 않았던가.


그에 반해 영화 속 벤의 모습은 어떤가. 자신은 은퇴했고, 아내와는 사별했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얘기할 정도로 세월의 무상함을 경험한 벤. 그는 언제나 겸손하고, 모든 이들을 존중한다. 자신은 나이가 많지만 그것이 젊은 사람들을 무시해도 될 근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즉각 파악해서 도와준다. 무엇보다 모든 관계에서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게다가 ‘킹스맨’ 못지 않은 수트핏을 자랑한다)


그 덕분에 벤은 노년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얼마나 로맨틱한지, 벤이 첫눈에 반한 ‘피오나’(르네 루소 분) 역시 그의 매력에 풍덩 빠진다. 벤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는 직장상사 줄스조차 그를 믿고 의지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이쯤 되면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영화 속 벤은 젠틀맨의 표본이자,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상상해 온 ‘어른’의 이상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여기에 깊이 공감했다는 것은 영화의 놀라운 흥행 수치로 유추해 볼 수 있다.

 


# ‘인턴’이 보여주는 사회생활 잘하는 법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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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사회생활 잘한다”는 말을 아부 잘하고 상사 비위 잘 맞추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덕목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물론 벤은 눈치가 빠르고 상사가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도 한다. 하루종일 굶은 상사를 위해 치킨 수프를 내놓을 줄 아는 센스까지 갖췄다. 그렇지만 이게 “사회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에서 벤이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이유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그의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성별과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잠시 현실의 ‘인턴’들을 상기해 보자. 인턴으로 사는 삶은 고달프다. 대부분의 경우, 나이도 직급도 직장에서 최하위인데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 상사들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이런 인턴이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일을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눈치가 빨라야 하며, 상사의 비위를 맞출 줄 알아야 하고, 술도 잘 마셔야 되고, 유머러스 해야 하며, 무엇보다 고스펙이어야 한다. 가끔은 상사의 모욕적인 언사까지도 참아내야 한다. 현실의 인턴들은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 당한다. 위로하겠다고 던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청춘들을 더 병들게 만든다.


시대는 변하고, 로버트 드 니로도 늙었다. 언제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마피아만 연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회사의 창립자나 CEO가 나이 지긋한 남성의 전유물이던 시절은 갔다. 기업들도 군대처럼 상명하복의 문화를 점차 거부하고 있다. 인정하고 말고를 떠나 사회의 추세가 그렇다. 그런데 왜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회생활”의 모습은 여전히 그렇고 그런 모습일까. 사회생활은 곧 관계의 연속이다. 바람직한 관계는 한쪽에서 노력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서로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젊은 세대는 일방적인 관계에 지쳐가고 ‘혼밥’, ‘혼술’을 즐긴다. 이제는 어른들도 사회생활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나이 일흔의 지긋하고 젠틀한 ‘인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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