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가위 교정 식품이 식탁으로 들어온다

2017년 11월 10일 10:21

  유전자 편집기술인 ‘크리스퍼(CRISPR/Cas9)’를 이용해 와인에서 꽃향기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와인의 맛을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는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퍼는 특정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제거하거나 끼워 넣는 기술이다.


  와인의 기본적 풍미는 포도가 결정한다. 여기에 포도의 당분을 알코올로 바꿔주는 미생물인 효모가 발효되며 내놓는 휘발성화합물(향기)이 얹어져 고유의 향을 이룬다.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와인의 풍미가 달라지는 건 효모의 상태가 달라서다.


  벨기에 플랑드르생명공학연구소(VIB) 연구진은 와인을 만들 때 쓰는 효모(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의 전체 유전자를 분석해 꽃향기인 ‘페닐에틸 아세테이트’를 만드는 효모의 유전자를 규명했다. 그 결과 TOR1과 FAS2라는 두 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페닐에틸 아세테이트의 생산이 줄어든다는 점을 확인했다. 돌연변이 효모로 만든 와인에선 꽃향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연구진이 유전자 편집기술인 크리스퍼를 이용해 돌연변이를 교정하자 페닐에틸 아세테이트 성분이 많이 만들어져 꽃향기가 풍부해졌다.


  요한 테벨레인 VIB 연구원은 “우디향(네롤리돌), 과일향(에틸 아세테이트) 등을 만드는 효모의 유전자도 밝혀진 만큼 유전자 편집으로 특정 풍미를 증가시킨 맞춤형 와인 제작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엠바이오’ 8일자에 실렸다.


  최근 생명공학계의 대세 크리스퍼는 품종 개량 분야에서도 쓰임이 범상치 않다. 올해 9월 일본 농업식품연구소는 크리스퍼로 자주색 나팔꽃을 흰색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으며, 2월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팀은 대두의 올레산 함량을 2배 높여 혈압 저하 효과를 내는 대두를 만들기도 했다.
  김 단장은 “크리스퍼 등장 초기엔 가뭄, 병충해 등에 강한 품종으로 개량해 수확량을 높이는 연구에 관심이 집중됐다면 최근엔 사용자의 기호에 맞춘 신품종을 개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품종 개량 분야에서 크리스퍼는 후발주자다. 익히 알려진 유전자변형(GM) 기술은 이미 상용화된 식품을 식탁에 올리고 있으며, 한참 선배인 전통 육종 기술의 시작은 약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간다.

  전통 육종은 서로 형질이 다른 두 개체를 인공적으로 교배해 양쪽 유전자를 모두 물려받은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부모 세대의 장점만을 잘 물려받은 좋은 품종이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수확량, 크기, 맛 등 소비자가 원하는 특징을 갖춘 품종이 나타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교배가 가능한 종이 한정적이란 점이 한계다.


  대안으로 떠오른 GM 기술은 교배가 불가능한 다른 생물에서 유용한 유전자를 가져올 수 있다. 가령 전통 육종은 옥수수와 고구마를 교배할 수 없지만, GM 기술로는 고구마의 유전자를 빼 옥수수에 삽입하는 일이 가능하다.


  GM 기술은 개량에 필요한 유전자를 선별해 박테리아와 결합한 뒤 개량하고자 하는 개체에 삽입하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서 크고 단 토마토를 만들기 위해 전통 육종은 큰 토마토와 단 토마토를 반복 교배시키며 원하는 품종이 선별되길 기다리고, GM 기술은 큰 토마토의 유전자를 빼와 단 토마토에 조합시키는 방식으로 품종을 개량한다.


  크리스퍼와 GM 기술의 차이는 외부 유전자의 삽입 여부다. 크리스퍼는 외부 유전자를 도입할 필요 없이 이미 내부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자르고 이어 붙여 새로운 형질을 만든다. 큰 토마토에서 단맛을 내지 못하게 만드는 유전자를 잘라내 단맛을 내도록 개량해 주는 것이다. 원하는 유전자를 직접 넣는 GM 기술보다 성공률은 낮지만, 외부 유전자가 삽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각 품종 개량 기술은 장단점을 가진 채 저마다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전통 육종 기술은 최신 생명공학 기술이 접목되며 편리성을 얻었다. 이전엔 교배를 마치고 나온 씨앗을 재배해 다 크고 나서야 개량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씨앗의 유전자를 분석해 재배 기간을 기다리지 않고 개량 성공 여부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강병철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각 개량 기술마다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미래 식탁을 꾸리는 일에 어떤 기술이 승자가 될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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