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인텔, AMD 그래픽 품은 CPU 공개

2017년 11월 07일 17:47

영원한 라이벌로 남을 것 같던 인텔과 AMD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두 회사가 손 잡은 통합 프로세서가 등장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인텔이 AMD의 그래픽 기술을 칩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게이밍 랩톱용 코어 i7의 최상위 기종 H 시리즈 안에 AMD 라데온 그래픽 칩이 통합되는 그림이다.

 

인텔 유튜브 제공
인텔 유튜브 제공

인텔은 2008년 코어 프로세서를 시작으로 그래픽카드를 CPU 안에 통합했다. 2D 그래픽과 간단한 3D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직접적인 성능 개선 목적보다는 전기를 많이 먹는 그래픽카드 대신 낮은 전력으로 PC를 구동하기 위한 장치였다. 또한 세상의 적지 않은 PC가 게임 성능이 필요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인텔은 그렇게 모든 CPU에 그래픽 코어를 통합해 왔고, 지금은 성능에 따라 아이리스 플러스와 UHD 그래픽스 등의 제품을 프로세서에 통합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소식은 인텔이 자체 개발한 그래픽코어 대신 AMD의 게이밍 그래픽 프로세서를 통합한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CPU와 GPU 사이에 전용 라인인 인터커넥터를 통해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AMD 입장에서는 인텔의 주문에 맞춘 커스텀 칩을 공급하는 것이고, 인텔은 외장 GPU를 PCI 없이 직접 프로세서와 연결하는 다리를 만든 것이다. 아키텍처의 통합이라기보다 반도체 단위의 협력이 이뤄지는 셈이다.


 

 


인텔은 왜 이런 묘한 칩을 만들었을까? 그것도 가장 경계하던 경쟁자 AMD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뜨거운 관심거리다. 이 칩은 모바일용 인텔 8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최상위 제품으로 나올 전망이다. 일단은 게임 시장을 노리는 고성능 모바일 통합 프로세서를 위한 프로세서로 해석할 수 있다.


인텔은 오랫동안 그래픽 프로세서에 대한 고민을 해 왔다. 그리고 지금 PC시장에서 그래픽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인텔의 그래픽 코어를 게임과 밀접하게 연결 짓지는 않는다. 이는 초창기 i740같은 외장 그래픽카드부터, HD그래픽스, 아이리스 등의 통합 칩으로 성능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게이밍 PC라면 인텔의 CPU에 엔비디아나 AMD의 그래픽카드를 쓰는 게 가장 일반적인 상황이다.


인텔은 엔비디아나 AMD와 경쟁할 그래픽 프로세서를 내놓지 않았다. ‘안 했나’와 ‘못 했나’ 사이는 오묘하지만 ’라라비 프로젝트’는 인텔이 고성능 그래픽카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인데 현재는 병렬 컴퓨팅에 초점을 맞춘 ‘제온 파이’로 방향을 옮겼다. 인텔 프로세서와 AMD,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는 묘한 동거를 이어 왔다. 어찌 보면 오랜 시간 동안 팽팽하게 만들어진 생태계의 균형같은 느낌도 든다.


인텔은 왜 이 균형을 흔드는 것일까? 폼팩터에 대한 고민을 들 수 있다. 코어H의 주요 시장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두께 1㎝ 이하의 게이밍 랩톱이다. 인텔 CPU에 외장 그래픽은 게이밍 PC의 공식과도 같았지만 칩이 분리되면 그만큼 더 큰 메인보드가 필요하고, 전력 소비량도 늘어난다. 인텔이 애초 그래픽 코어를 프로세서에 품은 이유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제 그 영역을 게이밍 PC로 넓히려는 시도다.


칩이 통합되면 더 작고 얇은 기기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컴퓨터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폼팩터의 다양성을 위한 통합인 셈이다. 최근 인텔의 전략 가운데에는 PC를 게이밍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 직접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울트라북 수준의 디자인에 충분한 게임 성능을 낼 수 있다면 인텔로서는 새로운 PC 수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인텔 유튜브 제공
인텔 유튜브 제공

당장 직접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머신러닝도 놓칠 수 없다. 단순한 데이터 처리가 반복되는 머신러닝에는 고성능 CPU 뿐 아니라 작은 코어의 집합체인 GPU가 효과적이다. 물론 전용 프로세서가 가장 좋은 성능을 내지만 일반적인 PC 안에서는 GPU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미 윈도우10과 맥OS는 기기 자체에서 사용 습관과 콘텐츠를 분석하는 머신러닝을 도입했다. 이 분석에는 역시 GPU가 유리하다. 시장의 수요에 맞는 하드웨어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어쩌면 코어H는 AMD의 APU가 그렸던 그림을 완성할 지도 모르겠다. AMD는 2011년 애슬론과 라데온 그래픽카드를 묶은 통합 프로세서, APU를 내놓았다. 사실 이 프로세서는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관심에 비해 인기는 끌지 못했다. 당시 AMD는 프로세서 하나로 CPU 연산과 GPU 연산을 함께 처리하는 통합 프로세서를 꿈꿨다. 이종 프로세서(Heterogeneous Processor)로도 불렀던 APU는 결국 가속 프로세서(Accelerated Processing Unit)라는 이름을 갖게 됐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데 그쳤다.


인텔이 AMD의 힘을 빌린 새 프로세서로 이종 연산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GPU는 게임 뿐 아니라 GPU 기반 애플리케이션 가속에 활용되면서 결과적으로 더 쾌적한 모바일 컴퓨팅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텔이 이 시장을 언제까지 내버려두고 있지도 않을 게다.


엔비디아는 이 칩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보이지만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애초 AMD가 인텔에 GPU 관련 설계를 제공하는 형식이었다면 ‘인텔의 고성능 칩은 AMD 그래픽’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H시리즈 프로세서의 핵심은 GPU와 연결하는 인터커넥터에 있다. 엔비디아가 이 인터페이스에 맞는 커스텀 GPU를 만든다면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인터커넥터는 장기적으로 통합 칩이 아니더라도 외장 그래픽카드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요즘 머신러닝에서 CPU와 GPU 사이의 병목에 예민한 엔비디아로서는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방법이기도 하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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