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약초 족도리풀, 알고 보니 독초?

2017년 11월 07일 11:36

우리가 가진 최대의 잘못된 생각들 가운데 상당수 역시 타인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사회적인 영향력 때문에 사람들이 거짓 믿음 혹은 편향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특정한 넛지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넛지’에서

 


올해 노벨상은 농사로 치면 대풍이다. 과학상 세 부문 모두 대단한 업적인데다 사람들의 관심이 큰 주제였다(화학상은 아닌 것 같다). 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소설을 쓴 일본계 영국 작가다. 그의 대표작 ‘나를 보내지 마’(2005)는 복제인간의 사랑과 슬픔을 그린 일종의 SF다.


경제학상 역시 큰 화제가 됐는데 행동경제학을 개척한 공로로 수상한 미국 시카고대 리처드 탈러 교수가 베스트셀러 ‘넛지’(2008)의 저자이기 때문이다(하버드대 캐스 선스타인과 공저). 2009년 번역 출간된 ‘넛지’는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당시 필자는 왠지 처세술을 다뤘을 것 같아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탈러의 수상 소식을 듣고 책을 사서 읽고 있다.


책은 뜻밖에도 무척 재미있는데 내용이 심리학에 가깝다(사실 행동경제학은 사회심리학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제목인 ‘넛지(nudge)’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지르다’는 뜻으로 책에서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당히 형편없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그 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매번 ‘완벽한 정보를 가졌거나, 엄청난 인식 능력과 완벽한 자기 통제력을 지닐 수는 없기’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 대다수는 타성에 젖어 주변에 정보가 널려 있어도 보려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많은 영역에서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초보자’이며 따라서 능력(안목)을 지닌 사람 또는 조직이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릴 수 있게 ‘정황이나 맥락’을 만들어줘야 살기 좋은 사회가 되고 이게 곧 유익한 ‘넛지’라고 말한다. 물론 실제로는 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유해한 ‘넛지’가 도처에 있다(주로 사람들이 돈을 더 쓰게 만드는 게 목적).


책에는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수많은 예들이 소개돼 있는데 ‘이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기가 찬 경우가 많다. 3장 ‘인간은 떼 지어 몰려다닌다’에서 저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기대한다고 생각되는 바에 부합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일임에도 남들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사이언스 중개의학’ 10월 18일자 표지. 쥐방울덩굴속 식물을 그린 아름다운 세밀화이지만 정작 관련 논문은 이 약초가 간암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 사이언스 중개의학 제공
‘사이언스 중개의학’ 10월 18일자 표지. 쥐방울덩굴속 식물을 그린 아름다운 세밀화이지만 정작 관련 논문은 이 약초가 간암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 사이언스 중개의학 제공

1992년 다이어트 약물 부작용 사례 나와


문득 얼마 전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실린 논문이 생각났다. 동아시아에서 약재로 쓰이는 몇몇 약초가 간암을 일으킨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특히 대만과 중국 사람들이 피해가 컸다). 그런데 사실 이 약초 가운데 하나가 이미 20여 년 전 많은 사람들에게 신부전증을 일으키는 게 밝혀져 사용이 금지됐음에도 여전히 널리 쓰였고 약성이 비슷한 다른 약초는 이런 제한도 없이 쓰여 그 결과 최근 간암과의 연관성까지 밝혀진 것이다.


약초는 천연물인데다 수천 년 동안 약재로 쓰였으니 몸에 안전할 거라는 사람들의 막연한 믿음이 화를 키운 셈이다. 논문에 실린 도표를 보면 대만의 경우 간암 환자의 무려 78%, 중국은 47%가 쥐방울덩굴과(科) 약초 복용으로 일어난 돌연변이가 관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약초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지나친 음주나 간염바이러스 감염을 간암 발생의 주된 환경 요인으로 알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충격적인 수치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는 간암의 13%가 이 약초와 관련이 있었다. 20년 전 이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약재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방치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쥐방울덩굴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식물의 어두운 면이 처음 드러난 건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벨기에 브뤼셀의 한 자연요법 병원에서 체중감량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 두 명이 이듬해 급성 신부전증으로 신장이 완전히 망가져 투석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


조사 결과 이 병원에서는 1990년 6월 체중감량 약물의 처방을 바꿔 중국 약재 두 종을 추가했는데, 한방기(漢防己. 분방기(粉防己)라고도 부르며 학명은 Stephania tetrandra이다)와 후박(학명 Magnolia officinalis)의 뿌리 추출물이다. 그 뒤 이 다이어트 천연조제 약물을 복용하다 신장이 망가져 투석에 이른 여성 일곱 명이 추가로 확인됐고, 이에 대해 ‘중국약초신장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벨기에 당국은 1992년 말 두 약재의 판매를 금지했다.


그럼에도 중국약초신장병 환자가 계속 나와 1998년에 이르러 100명이 넘었고 이 가운데 70%가 투석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 다수에게서 훗날 방광암이나 요로암이 발생했다. 벨기에 당국은 정밀조사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즉 다이어트 약물에서 신장을 망가뜨린 게 한방기가 아니라 광방기(廣防己. 학명 Aristolochia fangchi)였다. 즉 한방기로 알고 쓴 약초가 실은 광방기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중국에서는 생김새가 비슷한 여러 약초를 아울러 방기(防己)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이 가운데 한방기와 광방기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중국의 약초 가운데는 식물분류학적으로는 별 관계가 없더라도 생김새가 비슷해 같은 계열의 이름을 갖게 돼 혼용될 가능성이 늘 있다. 참고로 방기는 관절통, 수족경련, 중풍, 부종 등 여러 증상에 대해 쓰였다. 아마도 벨기에의 자연요법의사가 한방기가 살을 빼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붓기를 빼주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다이어트 약물 처방에 추가했을 것이다.


한편 유럽 발칸반도의 나라들인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도 일종의 토착병으로 심각한 신장질환과 요로암 발생이 알려져 있었는데, 정밀조사 결과 광방기와 같은 속의 식물(학명 Aristolochia clematitis)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즉 밀을 수확할 때 함께 자라던 잡초 아리스톨로키아 클레마티티스의 씨앗도 밀알에 섞여 들어갔고 이를 먹은 사람들이 탈이 난 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섭취하는 양이 적어 수십 년이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이를 ‘발칸-토착신장병’이라고 불렀다.


결국 중국약초신장병과 발칸-토착신장병은 둘 다 Aristolochia, 즉 쥐방울덩굴속(屬) 식물이 원인이라는 말이다. 이에 따라 많은 나라에서 쥐방울덩굴속 식물의 유통이 금지됐다. 그렇다면 쥐방울덩굴속의 어떤 성분이 문제를 일으킨 것일까.

 

동아시아의 전통처방에 약재로 쓰이는 쥐방울덩굴과 식물에 들어있는 아리스톨로크산(AA)은 DNA를 공격해 변이를 일으킨다. 전체 간암에서 AA 관련 간암(빨간색)의 비율을 나타낸 도표로 대만은 78%, 중국은 47%에 이르고 우리나라도 13%를 차지한다. 원의 크기는 조사한 간암 건수에 비례한다. - 사이언스 중개의학 제공
동아시아의 전통처방에 약재로 쓰이는 쥐방울덩굴과 식물에 들어있는 아리스톨로크산(AA)은 DNA를 공격해 변이를 일으킨다. 전체 간암에서 AA 관련 간암(빨간색)의 비율을 나타낸 도표로 대만은 78%, 중국은 47%에 이르고 우리나라도 13%를 차지한다. 원의 크기는 조사한 간암 건수에 비례한다. - 사이언스 중개의학 제공

DNA에 달라붙어 변이 일으켜


이 약초에는 아리스톨로크산(aristolochic acid)이라는 폴리페놀분자와 관련 분자들이 존재하는데(이하 뭉뚱그려 AA라고 부른다), 벨기에 처방에 쓰인 광방기 분말에는 1그램 당 0.65밀리그램 수준으로 들어있었다. 그리고 AA가 바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AA는 세포핵에 있는 게놈의 DNA의 퓨린 염기(아데닌이나 구아닌)에 달라붙는데,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일어나 아데닌이 티민으로 바뀌면서 해당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TP53 같은 암억제 유전자에 이런 사고가 생기면 암세포가 될 수 있다. 우리 몸의 입장에서는 AA가 생체이물(xenobiotic)이므로 이를 대사하는 과정에서 AA와 접촉하는 신장이나 요로, 간의 세포가 변이를 겪고 따라서 이 부위에서 암이 생기는 것이다.

 

AA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AA가 대사되는 과정에서 중간 산물이 DNA의 아데닌(A) 염기에 달라붙는다. 그 뒤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상보적인 가닥에 티민(T) 대신 아데닌이 들어와 결국 A에서 T로 바뀌는 변이가 일어난다. TP53 같은 암억제 유전자에 이런 변이가 일어나면 암이 생길 수 있다. - 미국 보건사회복지부 제공
AA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AA가 대사되는 과정에서 중간 산물이 DNA의 아데닌(A) 염기에 달라붙는다. 그 뒤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상보적인 가닥에 티민(T) 대신 아데닌이 들어와 결국 A에서 T로 바뀌는 변이가 일어난다. TP53 같은 암억제 유전자에 이런 변이가 일어나면 암이 생길 수 있다. - 미국 보건사회복지부 제공

싱가포르와 대만의 공동연구자들은 먼저 대만의 간암 환자 98명을 대상으로 암세포의 전체 엑솜(게놈에서 유전자가 있는 부위)을 분석해 이 가운데 76명(78%)의 암 관련 유전자에서 AA가 일으킨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그 뒤 네트워크를 동원해 세계 각국의 간암 환자 1400명의 암세포 전체 엑솜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중국 간암 환자의 47%가 AA와 관련이 있게 나왔고 화교들이 많이 사는 동남아시아도 29%나 됐다. 그 다음이 우리나라로 13%(231명 가운데 29명)였고 일본은 2.7%에 불과했다. 한편 유럽은 1.7%였고 북미의 경우는 그 세배인 4.8%였지만 아시아계 87명의 22%가 AA 관련 변이가 있는 걸로 설명이 된다. 즉 동아시아의 전통 약초 처방이 많은 곳일수록 AA 관련 간암 발생의 위험성도 높다는 게 뚜렷이 입증된 것이다. 실제 연구자들은 1997년에서 2003년 사이 대만의 전통의학 처방을 조사한 결과 인구의 3분의 1이 AA가 포함된 약초를 복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논문 말미에서 저자들은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데 AA가 쥐방울덩굴속 약초에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즉 분류학적으로 한 단계 위인 쥐방울덩굴과(科) 식물 다수가 AA를 지니고 있고, 역시 약재로 쓰이는 족두리속(Asarum) 식물에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족두리풀이라고 부르는 이 식물의 약재명은 세신(細辛)이다. 세신 역시 각종 통증과 호흡기질환, 부종 등에 쓰인다.


논문에서 저자들은 전통의학 처방에서 광방기보다 세신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쥐방울덩굴속인 광방기와는 달리 족두리속인 세신은 중국약초신장병 사태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런 규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5년 쥐방울덩굴속 약재의 유통과 사용을 금지했지만 세신에 대해서는 아직 규제가 없는 것 같다.

 

최근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저자들은 대만에서 2003년 쥐방울덩굴속 약초의 유통이 금지된 뒤에도 AA관련 간암이 만연한 주된 이유가 역시 AA를 함유한 쥐방울덩굴과 족도리속 약초가 제한 없이 널리 쓰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족도리풀(학명 Asarum sieboldii)의 모습으로, 약재로 쓰이는 뿌리줄기가 세신(細辛)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최근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저자들은 대만에서 2003년 쥐방울덩굴속 약초의 유통이 금지된 뒤에도 AA관련 간암이 만연한 주된 이유가 역시 AA를 함유한 쥐방울덩굴과 족도리속 약초가 제한 없이 널리 쓰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족도리풀(학명 Asarum sieboldii)의 모습으로, 약재로 쓰이는 뿌리줄기가 세신(細辛)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특히 약의 경우 ‘천연은 좋고(부작용이 적고) 합성은 나쁘다’ ‘(여러 성분이 섞여 있는 상태인) 식물추출물은 좋고 정제된 약물은 나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약물의 부작용(독성)은 개별 약물(분자)의 속성이지, 이게 천연인지 합성인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사실 아스피린이나 메트포르민(당뇨병약) 같은 합성약물 가운데 다수는 천연물(각각 살리실산나트륨과 구아니딘)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구조를 살짝 바꾼 분자들이다.


그럼에도 매체, 특히 건강프로그램을 많이 내보내는 종편 등에서는 오늘도 약초 전문가들이 나와 천연이 좋다고 줄기차게 ‘그릇된’ 넛지를 하고 있다. 다음은 이번 논문의 마지막 구절로 보건당국이 ‘유익한’ 넛지를 구상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AA를 함유한 식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차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교육과 대중의 자각이 시급하다. 아울러 전통 약재 이름이 혼란스러워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 식물의 실체를 확실히 알기 어렵고 한 약재에 여러 식물이 섞여 있기도 하고 심지어 엉뚱한 이름이 붙어있기도 하다. 따라서 약재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는 크로마토그래피 같은 분석법과 약재 유통을 관리하는 규제가 병행돼야 AA에 대한 노출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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