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없는 인텔의 데이터센터 이야기

2017년 10월 27일 17:00

인텔이 10월24일 뉴욕에서 시프트(Shift)라는 제목의 행사를 열었습니다. 시프트는 ‘변화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세상은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고, 새로운 기술은 우리의 삶에 변화를 요구합니다. 때로는 숨이 찰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변화를 요구합니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행사는 ‘왜 바뀌어야 하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인텔의 데이터센터 마케팅을 맡고 있는 리사 스펠만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부터 산업의 방향성, 그리고 건강 관리까지 우리 주변의 모든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변화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갑자기 나타나 파괴적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리거시(Legacy)라고 불리는 기존 산업은 버텨낼 수 없습니다. 마치 장난감의 성지인 토이저러스와 레고가 스마트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말이지요.

 


“데이터를 믿어라”


가장 먼저 연설 무대에 오른 MIT의 앤드류 맥아피 교수는 ‘비즈니스에 대한 조언을 믿어서는 안 된다(Business advice We shouldn’t believe any more)’라고 말했습니다. 주관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익숙한 이야기이지요.

 

사람과 기계의 역할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이야기는 행사의 주제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선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공포’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딥러닝과 로봇을 비롯한 기계의 영역이 확대될수록 사람의 역할은 더 줄어들고 이는 곧 일자리 위기로 연결된다는 것이지요.

 

긱(Geek)과 히포(HiPPO), 데이터와 직관의 대결, 앤드류 맥아피 MIT 교수 - 최호섭 제공
긱(Geek)과 히포(HiPPO), 데이터와 직관의 대결, 앤드류 맥아피 MIT 교수 - 최호섭 제공

맥아피 교수는 프로세스를 이야기합니다. 반복되는 단순 작업은 기계에게 맡기고 사람은 판단하라는 것이지요. 결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의 머신러닝 관련 기업들도 늘 반복하는 말입니다. 머신러닝의 역할은 판단이 아니라 확률에 기반한 데이터 분류에 있습니다. 그 데이터를 분류하는 일은 속도나 정확성 면에서 사람과 기계를 두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맥아피 교수는 기계와 사람의 관계를 명확히 구분할 것을 주문합니다. ‘판단’이라는 역할에서 기계는 사람을 따를 수 없습니다.


맥아피 교수는 화면에 하마 그림을 띄웁니다. 고액 연봉자, 즉 의사 결정권자의 의견을 뜻하는 히포(HiPPO, Highest Paid Person’s Opinion)를 하마에 빗댄 겁니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경험과 감각에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그 직관적인 판단에 의지하는 게 당연한 흐름이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경영자는 바로 이 경험과 감각이 예민한 사람으로 연결되었지요. 맥아피 교수가 반대에 세운 것은 ‘긱(Geek)’입니다. 우리에게는 흔히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변형어인 ‘덕후’로 더 잘 통하기도 합니다. 맥아피 교수는 긱들의 판단에는 맥락과 데이터가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데이터 기반의 머신러닝으로 다시 연결됩니다. 맥아피 교수는 알고리즘과 머신러닝의 가치가 역전되는 것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국에서 두었던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는 막대한 데이터에서 나오는 통계였습니다. 알고리즘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 그 결과값은 대국을 승리로 이끄는 한 점이 됐습니다.

 

“믿어야 하는 것은 데이터” - 최호섭 제공
“믿어야 하는 것은 데이터” - 최호섭 제공

데이터도 결국 규모의 경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데이터는 그 자체로 막강한 힘이 됩니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머신러닝, 사물인터넷 등은 바로 그 데이터를 모으는 방법들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들은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시장에서 힘을 갖는 것은 데이터를 누가 더 많이 모으냐에 달려 있습니다. 크라우드(Crowd)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결국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맥아피 교수의 설명입니다.

 


‘어떻게’보다 ‘왜’를 다시 돌아보다


맥아피 교수의 연설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러 곳에서 듣던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연결짓느냐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텔의 시프트 역시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의 반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몇 개의 연설이 끝난 뒤 일본에서 온 기자와 연설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떻게’라는 답이 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난해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기술 이야기가 더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충분할 정도로 많습니다. 클라우드가 없어서, 머신러닝 기술이 무르익지 않아서 기업들이, 혹은 정부가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인텔이 데이터센터와 관련된 행사를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뉴욕 맨하탄 한복판에서 연 것도 바로 기술 없는 기술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게 아니까 하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제온(Xeon)’ 없는 인텔의 데이터센터 이야기는 당연히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빅데이터의 효용성은 어떻게 보면 식상할 정도로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아직도 빅데이터에 손을 내미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 최호섭 제공
빅데이터의 효용성은 어떻게 보면 식상할 정도로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아직도 빅데이터에 손을 내미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 최호섭 제공

인텔에서 데이터센터를 총괄하는 리사 데이비스 부사장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데이터의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기업이 직접 데이터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은 데이터로 판단해야 하고, 데이터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시프트 행사에서 이야기하는 변화의 핵심인 셈입니다. 물론 기업들은 그 변화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데이터와 관련된 인프라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도입한 기업들이 이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높이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야기는 지겨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과 정부, 기관 등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막연하고 묘한 장벽이 있습니다. 클라우드라고 하면 일단 한 발 물러서는 건 멀리서 찾을 일도 아니지요.

 


인공지능이 아직도 두려우신가요


인공지능은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이른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꼽힐 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앞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를 잠깐 언급했는데 이는 우리만의 걱정은 아닌가봅니다. 자신이 일하던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 너바나가 인텔에 인수되면서 인텔에 합류한 아미르 코스로샤히 인공지능 부문 부사장은 인공지능이 비즈니스 요소로 쓰이는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컴퓨터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1950년대 뉴로 사이언스가 연구되면서 컴퓨터와 접목되는 연구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머신러닝 역시 1960년대부터 연구된 기술이지요. 아미르 부사장은 컴퓨터의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큰 인프라에 대한 부담 때문에 당장 도입이 쉽지는 않지만 점차 그 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너바나를 만든 아미르 코스로샤히 부사장. - 최호섭 제공
너바나를 만든 아미르 코스로샤히 부사장. - 최호섭 제공

그 뒤에는 결국 인텔의 제온이나 제온 파이, 너바나, 알테라 등의 프로세서 이야기가 따라붙어야겠지만 이 행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대신 인공지능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의료나 금융에서 역할을 찾아가는 미래를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아미르 부사장은 그 역할을 명확히 했습니다. 머신러닝의 알고리즘은 결국 데이터의 입력과 학습, 평가, 그리고 적용의 반복입니다. 그는 인공지능의 역할이 데이터 분류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인텔의 머신러닝에 대한 역할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텔은 반도체 회사지만 데이터 과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밥 로저스 박사는 인텔의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인텔에 왜 데이터 과학자가 있을까요? 머신러닝과 빅데이터 등 데이터 기반 분석이 큰 관심을 받는 반면 실제 현장에서는 아직 적용이 쉽지 않습니다. 데이터의 종류가 다양하고, 기업들은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어려워합니다. 이 때문에 인텔에는 데이터 과학자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밥 로저스 박사 역시 머신러닝의 역할을 도구로 설명합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역할은 구분된다는 것이 아미르 부사장의 설명입니다. - 최호섭 제공
인공지능과 사람의 역할은 구분된다는 것이 아미르 부사장의 설명입니다. - 최호섭 제공

그는 ‘쏜(Thorn)’이라는 웹사이트를 보여주었습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미아를 찾는 사이트입니다. 미아를 찾는 광고는 미국에서만도 1년에 200만 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아와 그 데이터를 매칭해주는 게 이 쏜의 역할입니다.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사람의 대표적인 능력이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머리카락의 모양을 바꾸거나 안경을 쓰고, 혹은 화장을 하면 사실 같은 사람을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조금 다릅니다. 머신러닝은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매칭 확률이 높은 사진을 순서내로 나열해줍니다. 기계가 꺼내주는 것은 꼭 정답은 아닙니다. 확률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결국 사람이 옳은 정보를 매칭하는 데에는 몇 배, 혹은 몇 백배 빠르고 정확해집니다. 기계와 사람의 역할이 구분되는 것이지요.


밥 로저스 박사는 데이터 과학과 머신러닝의 구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습니다. 데이터들 사이에서 흐름을 찾아내는 게 데이터 과학자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데이터 과학자들은 그 흐름을 알고리즘으로 만들어냅니다. 머신러닝은 수 많은 데이터들 중에서 그 흐름에 맞는, 혹은 벗어나는 데이터들을 분류해줍니다. 데이터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더 정확한 흐름을 찾아낼 수 있지요. 인공지능은 결국 데이터를 다루는 하나의 도구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기업이 변화할 수 있는 출발점은 데이터라는 게 시프트 행사의 주제입니다. - 최호섭 제공
결국 기업이 변화할 수 있는 출발점은 데이터라는 게 시프트 행사의 주제입니다. - 최호섭 제공

행사는 하루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인구가 110억을 넘어섰을 때의 미래 사회, 식량 문제, 해수면 관리처럼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런 미래를 상상하고, 또 문제를 미리 풀어보는 일들은 결국 데이터에서 시작됩니다. 이미 우리는 데이터로 병을 진단하고, 피싱 e메일을 지우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는 더 많은 분야에서 기존과 다른 가치관을 만들어낼 겁니다. 때로는 새롭게, 때로는 파괴적으로 접근하겠지요. 당연히 그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큰 컴퓨팅 파워가 필요합니다. 반도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을 인텔이 뉴욕까지 와서 입을 꾹 다문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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