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27] 정통 안마시술소: 병원 대신 가는 곳

2017년 10월 21일 16:00

‘오늘 3시에 시간 나세요?’

 

반년 전에 알게 된 어느 소규모 출판사 대표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침 바쁜 일이 전날에 마감된 데다가 벌써 세 번째 권유여서 미안한 마음에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첫 만남에서 친해진 몇 개월 전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그분이 말했다.

 

“제가 거북목예요. 거북목 아시죠? 이게 고질병이라 근처 정형외과에 치료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다녀오면 하루이틀뿐이더라고요. 그래도 통증 때문에 안 갈 수 없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꾸준히 갔죠. 네댓 번은 갔을 거예요. 비용도 상당해요. 30분에 8만 원.”

 

“왜 그리 비싸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나요?”

 

치료비에 놀라 나는 반문했다. 몇 년 전 어깨를 다쳐 동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때 4000 원이었던 걸 상기하면 스무 배나 되는 치료비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빙그레 웃으며 그분이 대답했다.

 

“온찜질 위주의 물리치료와는 좀 달라요. 도수 치료라는 건데요, 치료사가 직접 손으로 치료해줘요.”

 

(도수 치료는 약물이나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치료사가 맨손으로 근육과 연골에 적절한 압력을 가해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이다. 2006년 이전에는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이었지만 악용의 우려 때문이었는지 그 후로는 보험에서 제외되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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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병원 근처 정통 안마소가 눈에 띄더라고요. 들어가서 물어봤죠. 1시간에 5만 원인 거예요. 그 후로 그곳 안마소에 다니는데 병원보다 나아요. 더 싸고 시간은 두 배고 효과도 좋아요. 한번 다녀오면 열흘은 가요. 윤 선생님도 저만큼이나 거북목인 듯한데 한번 같이 가시죠?”

 

몇 해 전부터 책상 앞에 한 시간쯤 앉아 있으면 뒷목 근육이 아파와 턱 밑에 양쪽 엄지를 대고 치켜 올려 스트레칭을 하고 있기에 그분의 제안은 솔깃하게 들렸다. 술자리에서는 그러자고 해놓았지만 막상 실행하려니 주저돼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 번째 권유에서야 미안한 마음으로 약속을 잡은 것이다.

 

약속 장소는 은행 앞이었다. 만나자마자 그분은 현금입출금기에 다녀왔다. 정통 안마시술소는 근처 건물의 2층에 있었다. 계단을 오르며 그분이 말했다.

 

“안마만 해주는 곳예요. 다른 건 없어요.”

 

격의 없이 지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말이었다.

 

“다른 게 있으면 안 왔죠.”

 

내 대답 끝에 통유리로 된 자동문이 열렸다. 내가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그분은 서둘러 카운터에 노란 지폐 두 장을 내밀었다. 아차 싶어 나도 지불을 하려 했지만 계산은 이미 치러졌다. 곧이어 안마 받을 각방이 정해지고 우리는 짙은 황토색 가운으로 갈아입고 다시 카운터 홀로 나왔다. 한쪽에 족욕용 욕조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내준 녹차를 마시며 족욕을 했다. 5분가량 족욕을 하면서 마주 앉아 있는 안마사에게 내 몸의 불편한 데를 설명해야 했다. 족욕을 하는 동안 안마사는 내게 말을 걸어 안마 계획을 세웠다. 시간이 되었는지 안마사는 내 발의 물기를 닦아주고는 안마 방으로 안내했다.

 

“손님은 목도 목이지만 몸 전체가 굳어 있네요. 처음 오셨으니 오늘은 신체 전반에 뭉친 근육을 푸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두 번쯤 하고 이후에 목 부위에 집중하는 게 낫겠어요. 그렇게 하시죠?”

 

안마용 침대에 엎드린 채 안면 구멍 속에 얼굴을 묻고 안마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안마사가 내게 말했다. 내 대답은 짧았다.

 

“네.”

 

난생처음 받아보는 안마에 뭘 알아야 선택의 여지가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자주 엎드려서 잠자는 습관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가정용 침대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마는 정수리부터 시작되었다. 머리, 귀, 뒷목, 어깨, 팔, 등, 허리, 골반,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까지 마치자 안마사는 다시 역순으로 진행해 마무리하였다. 그러고는 내 허리에 자신의 무릎을 지지하고는 내 왼쪽 발목과 오른쪽 팔목을 잡고 내 몸을 활처럼 휘었다. 그 힘에 내 몸은 손끝에서 휘어지는 회초리처럼 팽팽히 이완됐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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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온몸이 너무 뻣뻣해요. 아프실까 봐 오늘은 힘을 절반만 썼습니다.”

 

꼬박 한 시간 동안 안마를 해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인사를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로 나오자 먼저 마친 그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의 가을볕이 눈부셨다. 내가 나른해진 걸음을 뚜벅뚜벅 걷고 있을 때 그분이 말했다.

 

“얼굴까지 풀리셨네. 어떠세요? 오늘 밤에 잠 잘 오실 겁니다.”

 

마음 같아선 곧장 펍(pub)에 가서 함께 수제 생맥주 한잔 들이키면서 마음도 풀고 싶었지만 아내의 지병 때문에 그분은 일찍 귀가해야 해서 우리는 거리에서 헤어졌다.

 

“추석 연휴 지나고 한 번 더 가시죠? 그땐 제가 모시겠습니다.”

 

나의 인사말에 그분은 손을 흔들며 길을 건넜다.

 

그분의 말대로, 그날 밤 나는 숙면에 들었다. 안마를 받는 동안 엎드려만 있었는데, 무리한 운동을 한 것처럼 곳곳의 근육이 당겨와 나른하면서도 피곤했다. 잠이 들기까지, 10여 년 전 두 달간 요가원을 다녔을 때를 떠올리며 안마와 요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공통점은 ‘근육을 풀어준다’는 것일 테다. 다만 안마는 평소 자주 써서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는 것이고, 거꾸로 요가는 마치 젖은 행주를 짜듯이 평소 잘 안 쓰는 근육을 이완시켜 온몸 곳곳에 활기를 순환시키는 것일 테다.

 

그러니 굳이 요가가 아니더라도 자세만 곧추세우고 스트레칭만 꾸준히 하면 거북 목 정도는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안마사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안마가 끝날 무렵, 일거리가 많아지길 바라는 표현을 한답시고 나는 이렇게 말해버렸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자주 올 만하겠네요.”

 

“손님은 둘 중 무엇이 있으세요?”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는 둘 다 없습니다.”

 

그래도 마음 빚을 갚으러 나는 그곳에 한 번은 더 가야 한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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