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영화] 환상의 팀플레이 ‘스포트라이트’

2017년 10월 14일 08:00

# 영화 ‘스포트라이트’


감독: 토마스 맥카시
출연: 마크 러팔로, 마이클 키튼, 레이첼 맥아담스, 리브 슈라이버, 스탠리 투치
장르: 드라마, 스릴러
상영시간: 129분
개봉: 2016년 2월 24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주식회사 더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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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범죄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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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 보스턴. 존경받던 성직자 게오건 신부가 30여 년간 수많은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된다. 성직자의 성범죄라는 커다란 스캔들이 터져 공동체 전체가 충격에 휩싸일 법도 한데,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잠잠하다. 보스턴의 가톨릭 교구가 사건의 전파를 무마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써두었기 때문이다.


지역 신문인 보스턴 글로브지(誌)에 새로 부임한 편집장 ‘배런’은 성추행 사건 이면에 좀 더 거대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탐사보도를 담당하는 ‘스포트라이트’ 팀에 심층 취재를 지시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톨릭 사제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하는 피해자들과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를 만나 사제들의 성범죄 정황을 취재해 나간다.


게오건 신부 사건을 추적하던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은 그동안 목소리를 빼앗겼던 피해자들을 끊임없이 인터뷰하면서 보스턴에만 무려 80명에 달하는 신부에게 게오건과 유사한 성추행 혐의가 있음을 밝혀낸다. 또한 가톨릭 교구와 추기경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비호했다는 사실도 규명해낸다. 2002년, 스포트라이트 팀은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해 동안 600건이 넘는 가톨릭 사제 성추행 관련 기사를 내보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다.

 


#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의 실화
  

영화 ‘스포트라이트’ 속 배우들과 실제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 좌측부터 마크 러팔로와 마이크 레젠데즈, 레이첼 맥아담스와 사샤 파이퍼, 마이클 키튼과 월터 로빈슨. - 주식회사 더쿱 제공
영화 ‘스포트라이트’ 속 배우들과 실제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 좌측부터 마크 러팔로와 마이크 레젠데즈, 레이첼 맥아담스와 사샤 파이퍼, 마이클 키튼과 월터 로빈슨. - 주식회사 더쿱 제공

영화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지 스포트라이트 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성추행, 실화를 생각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은 이 영화에 없다. 그 대신 사건을 신중하게 취재하는 기자들과 수 년, 수십 년이 지나도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일상을 천천히 따라간다.


영화 속 장면 하나. 극중 기자인 사샤(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처음으로 만난 성추행 피해자 조는 아주 조금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주 덤벙거리고 약속 시간보다 훨씬 전에 왔다는 둥, 음식을 두 개나 먹고 있었다는 둥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뱉는다. 사샤가 성추행의 가해자이거나, 조력자가 아닌데도 조는 성추행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들어한다. 영화는 이런 작은 설정을 통해 여전히 파괴된 일상을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통곡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중요한 순간, 그들의 고통을 기자들의 입을 빌려 전달할 뿐이다. 이 점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영화를 만든 제작진은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한 팀플레이를 선보였고, 미국 아카데미는 그 해 작품상과 각본상으로 화답했다. 연출, 연기, 촬영, 편집, 음악 등 어느 것 하나 과하지 않고 영화에 봉사한다. 특히 권투의 보디블로 기술처럼 이야기를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시나리오가 인상적이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캐릭터들이 각자 사건을 취재하고 작은 퍼즐조각들을 모아 맞춰나가는 과정, 그리고 종국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이 되었을 때 관객이 느끼는 영화적인 쾌감은 강렬하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나무랄 데 없다. ‘헐크’로 더 유명한 마크 러팔로의 우직함, ‘맥블리’ 레이첼 맥아담스의 섬세함,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마이클 키튼의 연륜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리브 슈라이버, 스탠리 투치 등 조연 배우들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영화가 사건에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듯, 배우들도 오버액팅하지 않는다.

 


# 직업인의 윤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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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렇듯 극중 이야기에서, 작품의 제작 방식에서 팀플레이를 무척이나 강조한다. 왜 팀플레이를 강조했을까? 아마도 기자, 성직자, 변호사 등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공동체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자들은 가려진 진실을 밝히고 권력의 부정을 고발하며, 성직자는 약자를 보호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회는 영화가 지향하는 이상향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에도 의문의 여지는 있다. 영화에서 범죄를 저지른 성직자들을 돕는 짐, 에릭 등 변호사들의 행동이 공동체의 정의 구현에 이바지하는 걸까. 또한 자신들의 직업윤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충직하게 의뢰인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부조리를 확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반대편에는 변호사 개러비디언 (스탠리 투치 분) 같은 인물도 있다. 보스턴에서 보기 드문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성격은 괴팍하지만 성추행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데 사력을 다한다. 짐이나 에릭처럼 권력자에게 부역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상처 받고 아파하는 수많은 약자들에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 생각을 멈추면 보이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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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부정과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특정인 혹은 집단에 권력이 집중되는 경우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때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공동체 내에서 자정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회가 정한 법과 원칙에 따라 잘못을 벌하고 피해자를 달래야 하며 권력은 분산시켜야 한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범죄가 만연해진 것은 엄청난 권력을 지닌 교구 내에서 자정작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견제해야 할 보스턴 글로브도 마찬가지다. 유대교 신자인 보스턴 글로브지의 편집장 배런이 부임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사제들의 성추행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보스턴 토박이인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 (마이클 키튼 분)조차도 지역의 마당발로 통하며 뛰어난 사교성과 정보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 몇 년 전 다른 부서에서 사제들의 성추행 관련 제보를 묵살한 전력이 있다. 권력에 가까울수록 부조리에 둔감해지고 쇄신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로비는 영화 중반부에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의 고등학교 후배가 당시 교장이었던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이 느낀 고통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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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영화에서 사회를 진일보시키는 인물들은 그 스스로 외부인을 자처하거나, 외부인에 의해 각성한 내부인이다. 다른 도시에서 새로 부임한 편집장이자 유대교 신자인 배런, 아르메니아 출신인 변호사 개러비디언, 그의 도움을 받는 포르투갈 출신 기자 마이크 (마크 러팔로 분)는 가톨릭 중심인 보스턴에서는 철저히 외부인이다. 외부인들은 내부인들이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는 사회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약자에게 공감한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내부인들(로비, 사샤, 매트 등)은 공동체 안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자정작용이 불가능한 공동체의 개혁은 ‘바깥’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이처럼 언론과 사회가 궁극적으로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바로 힘 있는 가해자에 의해 목소리를 잃은 피해자들, 주목 받지 못하는 소수자, 차별에 몸서리치는 약자들이다. 영화는 우리가 쉬쉬하면서 넘어갔던 숱한 부조리의 본질에 접근해 결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른들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돌아보게 만드는 맑고 투명한 거울 같은 작품이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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