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26] 사무실: 일과 사람과 길이 있는 곳

2017년 10월 14일 18:00

오랫동안 해오던 일도 열흘쯤 쉬면 일손의 감도도 떨어지나 보다. 꼬박 열흘이었던 지난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일터에 복귀한 직장인들이 연휴 후유증을 앓는다는 기사가 주요 뉴스에 오르고 그 댓글에서는 앓는 소리가 요란하다. 연휴 열흘이 즐거웠던 사람들일수록 그 시간은 짧고 아쉽게 느껴질 테고, 열흘의 시간을 불편하거나 공허하게 보낸 사람일수록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테다. 추석 당일과 앞뒤 이틀간 본가와 처가를 다녀온 것 말고는 일주일이나 되는 자유로운 시간 동안 사적으로 해야 할 일 중 뭐 하나 야무지게 추진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찔끔찔끔 만지작거리다가 연휴를 마친 나로서는 무뎌진 심신에 피로만 더 쌓인 것 같아 거북한 기분으로 업무에 복귀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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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건물의 3층에 위치한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갈 때까지도 개운하지 않은 컨디션으로 출입문 앞에 섰다. 지문 인식 보안장치에 오른손 검지를 갖다 대자 시건장치가 개방됐다. 직원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내 자리로 가자마자 PC의 전원 버튼부터 눌렀다. 부팅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불편해 생긴 습관이다. 이어서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나서 자리에 앉아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한쪽에 놓인 빈 머그잔을 왼손에 쥐면 PC 모니터에 사용자 암호를 입력하라는 화면이 뜬다. 선 채로 키보드에서 숫자 네 개를 오른손으로 쳐 넣고 엔터 키를 터치한다. PC가 여러 구동 프로그램들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머그잔을 들고 탕비실로 들어간다. 싱크대에서 내 전용 머그잔을 세척하는 동안 원두커피 자동 머신을 워밍업시킨다. 물기를 닦고 머신 받침대에 머그잔을 올려놓는다. 커피 농도는 중간, 물의 양은 한 컵으로 설정해 작동시킨다. 머신 분쇄기에서 원두가 갈리고 물에 섞여 황토색 아메리카노가 머그잔 속으로 흘러든다. 머그잔 표면에는 “당신은 내가 당신인 줄도 모르고 끌고 간다”라는 김혜순 시인의 시구가 씌어 있다.


그 시처럼, 사무실에서의 나의 일과가 시작된다. 출근 직전이었던,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무거웠던 심신이 내 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 몇 모금을 마시면 마치 뭉게구름 사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햇볕처럼 의식이 선명해진다. 그러면 곧장 나는 10분 뒤에 있을 주간 회의의 주제들을 떠올리면서 직원들이 유기적으로 처리해야 할 한 주간의 주요 업무들을 체크한다.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는 신간 도서들의 현황을 점검하고 일의 일정과 경중을 고려해 기획 검토 및 원고 상황과 편집, 디자인, 제작, 홍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단계적 역할과 스케줄을 확인하고 일을 나눈다. 그때가 중요하다. 업무를 나누는 일이 중요한 건 어떤 역할의 일을 누가 실행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 경험이 적어 총체적인 일머리나 세부적인 해결 능력이 부족한 직원에게는 책임 있는 연출이나 마무리 과정을 맡길 수 없을뿐더러 적절히 맡긴 일에도 노파심이 생겨 거듭 확인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신입 사원이 아니라면 그 결과는 보통은 경력의 길이보다는 일 욕심의 정도에 비례한다. 오히려 연차가 여러 해 되었음에도 유연하지 못한 타성에 젖어 있거나 궁리를 피하고 일을 겁내 하는 직원의 경우엔 일의 진행도 더디거니와 그 결과가 좋지 못하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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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그러다 보니 어느 회사든지 일 욕심이 많은 직원이 일을 더 많이 맡게 되고 실제로 더 많은 일을 해낸다. 조직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여러 부문의 업무를 어느 한 직원이 겸직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당사자는 이왕에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전문적이고 종합적으로 그 세계를 꿰뚫고 싶을 테고, 그 마음가짐이 스스로를 추동시킬 것이다. 문제는 일중독이다. 오래전 출판계에 처음 몸담았던 나 역시 몇 해 동안은 그야말로 밤낮없이 일했다. 회사의 규모가 작지 않아 이미 정해진 업무 부문에는 각각의 담당자가 있었지만 새로운 사업 모델을 추진하려는 즈음에 내가 입사하게 되어 온갖 잡무와 편집 업무는 물론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주어진 바 없는 신설 기획 준비 업무가 하나둘씩 내게 맡겨졌다. 더구나 IMF 여파로 회사 경영이 힘들 때 급여는 동결되었고 자발적으로 퇴사한 직원들의 빈자리가 두 개나 생기자 잘 알지 못했던 제작과 마케팅 부문에까지 일 욕심이 더해진 나는 자원해서 그 업무까지 도맡아 일했다. 그러니 그 한두 해 동안 나는 제때의 퇴근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시쳇말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은 딱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나는 일에 지쳐버렸다. 이후 회사 매출 사정이 나아져 직원들은 충원됐지만 그때 나는 책임자가 돼 있었고 부챗살처럼 펼쳐진 나의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더욱이 나의 심신은 멈추지 않는 기관차처럼 달려만 가고 있었다. ‘아, 이런 게 일중독이구나!’ 싶었다. 그 후 3년이 지나 나는 퇴사했다. 그대로 몇 해만 더 지나면 철길이 끊긴 풀숲에서 기울어진 내 인생의 바퀴가 헛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사직서를 내고 실제로 사직하기까지도 5개월이나 걸렸지만, 결국 나는 퇴사했다. 퇴사한다는 것은 더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노동의 대가로 받는 보수도 끊긴다는 의미지만, 선택과 결정은 또 다른 행로에 그를 서 있게 한다. 그러나 누구든 일에 대한 태도는 잘 바뀌지 않는다. 일을 겁내 하는 사람일수록 당장의 직장을 떠나지 못하고, 늘 일을 헤쳐 나가는 사람은 일터가 어디든 해녀처럼 일에 풍덩 달려들어 자맥질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시처럼, 처연하게도 우리 모두는 일 앞에서 “당신은 내가 당신인 줄도 모르고 끌고 간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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