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독한 계모에도 孝를 다한 인종

2013.04.30 10:37

 

표독한 계모에도 孝를 다한 인종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표독한 계모에도 孝를 다한 인종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효릉은 제12대 인종(1515~1545)와 인종비 인성왕후(1514~1577) 박씨 능이다.

인종은 희릉에 안장된 장경왕후의 맏아들로 1515년에 태어났는데, 생모가 인종을 낳은지 7일만에 사망해 문정왕후 윤씨의 손에서 자랐다. 1520년, 여섯 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놀라운 것은 3세 때부터 글을 배워 익히고 8살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을 익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품도 남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제나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이 바른 자세로 앉아 공부에 열중했고, 언동은 때와 장소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검약하고 욕심이 없어서 일찍이 시녀 가운데 호화로운 옷을 입은 자가 있으면 곧바로 궁궐에서 내보낼 정도였단다.

● 효를 다하려 불 속에서 죽으려 했던 세자

다음 얘기는 인종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인종이 동궁에 있을 때 한밤중에 불이 났다. 누군가가 여러 마리의 쥐꼬리에 솜방망이를 만들어 불을 붙인 뒤 동궁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불이 나자 인종은 계모 문정왕후의 짓임을 직감했지만, 자신을 길러준 계모의 뜻을 어기는 것도 불효라 생각해 꿈쩍 않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밖에서 중종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계모의 뜻을 따르는 것도 효이지만, 왕인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도 불효가 된다고 생각해 불길을 헤치고 나왔다는 것.


 

표독한 계모에도 孝를 다한 인종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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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과 문정왕후, 인종과 명종은 조선 왕실사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만큼 문정왕후를 중심으로 부연 설명하고자 한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측천왕후'로 비유될 정도로 조선왕조 내내 왕비가 정치에 관여하려 하거나, 처신에 문제가 있을 때면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거론됐다. 그녀가 남존여비가 분명한 조선에서 남성 관료들을 호령했고 조선의 국시이던 억불정책을 무시하고 불교를 장려했으며, 왕권강화를 위해 강력한 독재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세조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 이후 조선왕실에는 몇 차례 왕비들의 수렴청정이 있었지만 문정왕후처럼 철저히 정권을 장악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그녀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혹독한데 이를 역으로 말하면 그러한 권력 행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었다는 것은 탁월한 정치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 조선의 측천왕후, 악명을 떨치다

문정왕후는 신하들이 주도한 반정 덕에 왕위를 차지한 중종의 세 번째 왕비다. 우여곡절 끝에 국모인 왕비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넷을 낳아 초기 삶은 녹녹치 않았다. 신하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왕도 갈아 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문정왕후는 왕궁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의 쓴 맛을 맛보면서 후일을 도모했다.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왕비가 된지 20년이 다 되어 낳은 아들 경원대군(훗날 명종) 덕분이다.

중종의 왕비임에도 후계를 이을 아들이 없으므로 그녀는 20년 동안 세자(인종)의 방패막이를 자임했지만, 본인이 아들을 낳자 상황은 급변했다. 그동안 보살펴준 세자는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위해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정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녀는 세자를 끌어내리고 경원대군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싸움터에 뛰어 들었지만 이 부분만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중종이 사망하자 그녀가 반드시 제거해야할 대상이었던 인종이 왕위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정왕후의 정적들이 권력의 핵이 되었는데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문정왕후는 장차 경원대군과 자신의 친정가문을 죽이지 말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여 인종을 근심스럽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역전의 기회를 맞았다. 인종이 병약하기도 했지만 즉위 9개월 만에 사망함에 따라, 중종의 유일한 적자인 경원대군이 12살 나이에 조선 13대 왕 명종으로 즉위한 것이다. 문정왕후는 명종이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면서 그녀에 반대하던 대윤파를 ‘을사사화’를 통해 일소시켰다. 이 당시의 정쟁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관련 왕릉과 연계될 때 부연하여 설명한다.


참고문헌 :
「[王을 만나다·14] 서삼릉-효릉(12대 인종·인성왕후)」, 김두규, 경인일보, 2009.12.24
「문정왕후」, 김정미, 네이버캐스트, 2010.07.09
「25년 세자… 8개월 재위 꿈을 펼 기회도 없었다」, 이창환, 주간동아, 2010.08.09
『왕릉』, 이상용, 한국문원, 1997
『경주역사기행』, 하일식, 아이북닷스토어, 2000
『조선왕릉 답사수첩』, 문화재청, 미술문화, 2006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4부를 연재합니다.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세계문화유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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