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24] 본점과 분점: 작은 차이에서 입맛이 달라지는 곳

2017년 09월 30일 19:00

지난 휴일에 나는 아내와 함께 근교로 소풍을 나가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오랜만에 ㅇㄷㅅ막국수(본점)를 찾았다. 그 음식점은 외진 곳에 있어도 방문객이 많아 휴일에는 번호표를 받아 기다려야 하지만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인지 비교적 한산했다. 그래도 다섯 테이블에 각각의 손님들이 삼삼오오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 중앙의 기다란 16인용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연만하신 내외분과 중년의 부부 넷이 마주 앉아 방금 나온 막국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중 중년의 여성이 방금 자기 앞에 놓인 물메밀국수 그릇을 통째로 들어 국물을 맛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옆에 앉은 남편에게 자신처럼 국물 맛을 보라는 표정으로 그릇을 건넸다. 아내를 따라 남편도 그릇째 들고 냉수를 마시듯 국물을 들이켰다. 가을볕이 곱게 내려앉은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는 아내에게 나는 그 네 분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맞춰봐. 붉은 티셔츠 입은 저분이 사위일까, 아들일까?”

아내는 그쪽 테이블에는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나의 뜬금없는 물음에 호응하지 않는 듯해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GIB 제공
GIB 제공

아마도 사위일 거라는 내 말의 요지는 이랬다. 만약 중년 여성이 노인 내외의 며느리였다면 남편에게 자기 물메밀국수를 스스럼없이 그릇째 건네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 즉 친정어머니였기에 편하게 행동했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의 근거였다. 하지만 그뿐. 이후 그 네 분의 분위기는 다소 남달랐다. 식사를 하는 동안 단 한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 네 사람 모두 묵묵히 국수만 먹을 뿐이었다. 사위로 보이는 분이 계산을 치르고 주차장에서 고급형 외제 승용차에 그 가족이 오를 때까지 말이다. 주변에 네 자리용 테이블이 여럿 남아 있음에도 굳이 16인용 자리, 그것도 한가운데를 선택해 자리한 것은 그 가족의 대외적인 자부심이 반영된 태도였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인공 의식의 무대 연출은 침묵이었다.


가족이 마주 앉아 말없이 먹는 음식 맛은 어떨까? 불도를 닦는 승려들이 줄지어 앉아서 말없이 식사를 하는 일은 수행의 일환이기에 음식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테니 차치하더라도, 가족의 경우에는 혼자 식사할 때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내 기준이다. 내게 음식 맛은 입맛만이 아니라 말 맛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특히 식사 중에 음식에 대한 품평 등의 이야기가 곁들어지면 미각이 더욱 살아난다. 반면, 대화에 너무 몰입되면 관심이 분산돼 미각은 무심해진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식사 도중 대화에 빠져들어서 정작 음식 맛을 못 느낄 때도 잦다.


그렇듯 음식 맛은 입맛이 결정하지만, 흔히 듣는 “입맛이 없어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입맛’은 맛을 느끼는 사람의 컨디션에 따라 좌우된다. 그래서 ‘식욕이 있으면 하찮은 음식이라도 맛있다’는 뜻으로 쓰는, “밥맛이 없으면 입맛으로 먹는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산해진미를 차려놓아도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없으면 무슨 맛을 느끼랴. 그날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막국수를 입으로 가져가 담담하게 씹어 삼키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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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테이블에도 김치말이메밀국수 두 그릇이 놓여졌다. 보통 때라면 사이드 메뉴로 녹두전도 추가했겠지만 배가 많이 고프지 않은 터라 아무래도 남길 것 같아 주문을 자제했다. 구수한 국수를 먹으면서 나는 뭐든 본점에서 먹는 맛이 더 좋다는 걸 재차 확인했다. 신 김치의 발효 정도도 그렇거니와 국물의 염담(鹽膽)과 면을 삶은 정도가 안성맞춤이었다. ㅇㄷㅅ막국수는 그곳 본점 말고도 파주 통일동산과 문산에 분점이 있지만, 녹두전만 하더라도 분점에서는 식용유를 더 많이 써서 너무 기름지거나 새끼손가락 굵기로 썰어 넣어주는 메밀묵의 양이 일정하지 않아 아쉬웠다. 심지어 막국수 위에 얹어주는 김 부스러기조차도 본점만 못 해 예민하게 평가하면 점수의 차이가 나니, 손님 입장에서는 가급적 본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어느 음식점이든 본점과 분점은 미묘한 간격이 있다. 같은 제품의 조리 기구를 사용하고, 동일한 곳에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레시피가 같은데 왜 맛에 차이가 날까? 그저 ‘손맛’의 차이일 거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너무 막연하다.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주방장이 매일 조금씩 다른 식재료의 성질을 잘 이해해서 조리에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식재료의 차이와 그날의 날씨를 고려한 조리법의 임기응변이 아닐까? 그에 따라 조리 시간도 조금 다를 수 있을 테고, 계절에 따라 찬물에 헹구는 일도 다를 테고, 식재료가 제철인지 아닌지에 따라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 조금 다를 테니 말이다.


자동화 공장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일지라도 똑같은 것은 없다. 심지어 모든 자동 항법을 탑재한 최첨단 비행기일지라도 생산 공정을 마치면 미세한 차이가 있어서 그것을 생체 감각으로 체크해 조정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전문가가 비행 시험을 해야 완성된다니, 조리사의 판단과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 맛의 차이는 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음식점의 접객 태도와 분위기도 손님의 기분에 작용해 입맛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단맛과 쓴맛은 음식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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