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한석봉 모친이 초롱불을 끄고 떡을 썬 까닭은...

2017년 09월 26일 10:00

지난달 ‘섹스와 젠더의 과학’에 대한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을 발견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 캐롤 드웩이 쓴 ‘Mindset’이란 책이다. 여성들이 수학이나 물리학, 철학을 기피하는 경향이 큰 건 이런 학문이 천재의 몫이고 천재는 남자라는 ‘고착된 마인드세트(fixed mindset)’에서 비롯된다며 이런 심리를 극복하려면 ‘성장 마인드세트(growth mindset)’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글에서 참고문헌으로 소개됐다.


자기 능력을 정해진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고착된 마인드세트)은 흥미를 억누르고 실수를 피하려는 경향이 큰 반면, 현재 능력이 발달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성장 마인드세트)은 흥미를 추구하고 더 많이 노력해 결국은 더 큰 성취를 이룬다는 것이다. 문득 마인드세트, 즉 마음가짐 또는 사고방식이 젠더의 문제만이 아님을 깨달은 필자는 인터넷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해봤는데 원서가 출간된 2006년에 ‘성공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다.

 

조선의 명필 한호(석봉은 호)는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독창적인 경지에 올랐다. 한호의 ‘증류여장서첩’.
조선의 명필 한호(석봉은 호)는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독창적인 경지에 올랐다. 한호의 ‘증류여장서첩’.

마이클 조던은 농구천재가 아니다!


예상대로 책에는 재능만 믿고 노력을 안 하거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안 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숱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꾸준히 노력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그런 경우다.


농구에 별 취미가 업는 필자는 당연히 마이클 조던은 타고난 농구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드웨어, 즉 큰 키와 흑인 특유의 탄력성이 받쳐주므로 농구공을 만지자마자 두각을 나타내 승승장구, MBA를 정복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마이클 조던은 학교농구팀에서 방출됐다. 원하는 농구팀이 있는 대학을 가지도 못했다. 다른 대학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졸업 무렵 지명권이 있는 NBA 두 팀은 그를 외면했다. 이렇게 좌절할 때마다 조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습하며 약점을 보완하고 실력을 쌓았고 마침내 정상에 우뚝 섰다. 그 결과 조던은 “끊임없이 자신의 천재성을 향상시키기를 원했던 천재”라는 찬사를 받으며 농구계의 전설이 됐다.


문득 우리나라 축구계가 생각났다. “축구신동이 나타났다!”며 10대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선수들이 얼마 못가 경기장 뒤로 사라진 반면 “평발이라 안 된다”던 박지성 선수는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관리로, 역시 성실함의 대명사였던 차범근 선수와 함께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긋지 않았는가.


필자가 아는 한 화가분이 들려준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이분이 미대를 다닐 때 교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던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 가운데 누구도 화가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이분처럼) 붓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해온 소수의 미술학도만이 화가가 되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보면 재능과 노력이 반비례관계이고 결국 노력하는 자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

 


재능을 칭찬하면 독이 될 수도


그런데 드웩 교수의 책 5장 ‘부모와 교사들의 마인드세트는 어디에서 비롯될까?’를 읽으면서 천재, 즉 재능이 있는 사람이 왜 노력을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됐다. 여기 사랑스런 당신의 자녀가 있다. 다음 중에서 그런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얘기는 어느 쪽일까.


1. “너 그걸 참으로 빨리 배웠구나! 넌 정말 똑똑해!”


2. “그 숙제 참으로 길고 복잡하더구나. 나는 네가 정신을 집중하여 그것을 끝낸 노력을 정말로 높이 평가한단다.”


맥락상 1번이 하지 말아야 할 얘기라고 눈치 챘을 것이다. 드웩 교수에 따르면 이런 칭찬은 아이에게 ‘만약 내가 무엇인가를 재빨리 배우지 못하면, 나는 똑똑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결과 새로운 걸 배울 때 시간이 걸릴 것 같으면 자신이 ‘똑똑하지 않은 게’ 들통날까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회피한다는 것이다. 즉 어려운 도전에 대해 혐오감을 키우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어떤 분야의 일류가 되는 과정에서 어려운 과제에 부딪치기 마련이므로(시기의 문제다) 이런 마인드세트인 사람은 결국 중간에 포기한다.


드웩 교수는 “부모로서 자녀 재능에 대해 칭찬을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면서도 “칭찬은 어린이의 개인적인 특성이 아니라 노력과 성취를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아울러 “그 여자애는 타고난 천재야”라거나 “걔는 바보얼간이야” 같은 말, 즉 부모가 자식 앞에서 고착된 판단의 잣대를 다른 아이들에게 적용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에게 재능보다 노력의 중요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례가 한석봉설화 아닐까. 붓글씨에 재주가 있었지만 가난했던 한석봉은 절에 들어가 스님에게 글씨를 배웠고 수년 뒤 ‘더 배울 게 없다’고 판단하고 하산한다. 한밤중에 어머니는 한석봉을 불러놓고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씨를 쓰거라”며 호롱불을 껐고 둘은 어둠 속에서 떡을 썰고 붓글씨를 썼다. 불을 키고 보니 떡은 가지런히 썰려있는 반면 글씨는 삐뚤빼뚤했다. 결국 한석봉은 다시 절로 들어가 정진해 조선최고의 명필이 됐다는 얘기다.


즉 한석봉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직접 모범을 보임으로써 노력의 중요성을 한층 강조한 것이다. 자기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면서 자녀에게 “스마트폰 그만보고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는 부모들은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꾸준한 노력, 즉 끈기 역시 타고난 재능이라는 말이다. 외모와 마찬가지로 성격도 상당 부분 유전된다는 걸 감안하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돌이 갓 지난 아기도 어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끈기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험을 요약한 그림으로 왼쪽은 어른이 상자에서 장난감을 꺼낼 때 30초가 걸리는 ‘노력 조건’과 10초가 안 걸리는 ‘노력 없는 조건’두 가지가 있다. 다음은 고리에 매인 장난감을 푸는 과제로 역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다음은 아기에게 뮤직박스 작동원리를 알려준 뒤 아기가 음악을 틀기 위해 버튼을 몇 번이나 누르는지 조사한다. 실험결과 어른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본 아기들이 버튼을 두 배 정도 더 많이 눌렀다. - 사이언스 제공
돌이 갓 지난 아기도 어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끈기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험을 요약한 그림으로 왼쪽은 어른이 상자에서 장난감을 꺼낼 때 30초가 걸리는 ‘노력 조건’과 10초가 안 걸리는 ‘노력 없는 조건’두 가지가 있다. 다음은 고리에 매인 장난감을 푸는 과제로 역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다음은 아기에게 뮤직박스 작동원리를 알려준 뒤 아기가 음악을 틀기 위해 버튼을 몇 번이나 누르는지 조사한다. 실험결과 어른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본 아기들이 버튼을 두 배 정도 더 많이 눌렀다. - 사이언스 제공

돌 갓 지난 아기도 일반화 능력 있어


학술지 ‘사이언스’ 9월 22일자에는 돌이 갓 지난 아기도 어른이 노력하는 모습에서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끈기라는 삶의 태도를 보고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MIT 뇌․인지과학과의 연구자들은 13~18개월 아기들을 대상으로 어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끈기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지 조사했다. 즉 ‘노력 조건’에서 아기들은 어른이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음... 이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을 어떻게 꺼낸다...”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어른은 상자를 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30초만에 마침내 성공한다. 한편 ‘노력 없는 조건’에서는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 어른이 10초 이내에 꺼내는 것만 다르다. 끝으로 ‘기준 조건’에서는 이런 본이 없다.


이제 아기들의 차례다. 어른이 뮤직박스의 버튼을 눌러 음악을 들을 수 있음을 보여준 뒤 아기에서 뮤직박스를 주고 자리를 피한다. 그러나 사실은 버튼을 눌러도 소용이 없다. 연구자들은 2분 동안 아기가 버튼을 얼마나 많이 누르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노력 조건’ 즉 어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기들이 버튼을 가장 많이 눌렀다. 즉 음악을 틀기 위해 끈질기게 시도한 것이다. 반면 ‘노력 없는 조건’과 ‘기준 조건’인 아기들은 버튼을 누르는 횟수가 절반수준이었고 둘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


무척 간단한 실험이지만 결과가 함축하는 바는 심오하다. 즉 돌이 갓 지난 아기도 어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그 결과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끈기가 성공의 중요한 요소임을 간파할 수 있다. 게다가 이를 일반화해 어른의 과제와는 다른 자신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적용한다.


이 연구결과에 대해 메릴랜드대의 루카스 버틀러 교수는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어른과 아이들은 물론 심지어 아기에서조차 끈기는 단순히 유전되는 성격 특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적 맥락에 기반함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자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정 바란다면 자녀에 대한 관심은 한 단계 낮추고 자신의 삶 자체를 좀 더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자신을 향한 부모의 백 마디 말보다 부모의 진지한 삶의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므로.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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