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영화] 양아치, 젠틀맨 되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7년 09월 23일 10:00

#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감독: 매튜 본
출연: 콜린 퍼스, 태런 에저튼, 사무엘 L. 잭슨, 마크 스트롱, 소피아 부텔라, 마이클 케인
장르: 액션, 스릴러, 코미디
상영시간: 2시간 8분
개봉: 2015년 2월 11일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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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청소년 관람불가(이하 청불) 등급의 영화는 흥행이 쉽지 않았다. 2001년에 개봉한 ‘친구’가 ‘내부자들’이 나온 2015년 말까지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배급사들이 영화 개봉 전에 15세 이상 관람 등급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할까. 실제로 올해 초, 모 배급사는 개봉을 앞둔 영화에서 관람 등급에 영향을 미칠 만한 장면을 잘라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여건을 뚫고 흥행에 성공한 청불 영화가 2016년에 나온 ‘데드풀’과 ‘아가씨’였다. 그리고 그 전에 더욱 이례적인 성적으로 청불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밝힌 두 편의 영화가 있었다. 한 편은 앞서 언급한 ‘내부자들’로, 현재까지 청불 영화 중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이 오늘 소개할 작품이다. 612만 명의 관객이 들어 청불 외화로는 최고의 성적을 올린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킹스맨’)다. 다음 주 개봉하는 속편 ‘킹스맨: 골든 서클’을 보기 전, 미리 1편을 챙겨 본다면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에는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동네 양아치, ‘젠틀맨’ 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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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에그시’는 불의의 사고로 아빠를 여읜다. 아빠의 사망 소식을 알리러 온 의문의 남자는 에그시에게 목걸이 하나를 주면서 위급할 때 목걸이에 써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하라며 떠난다. 몇 년 후, 에그시의 엄마 ‘미셸’은 동네 깡패 ‘딘’과 사랑에 빠지고, 성장한 에그시(태런 에저튼 분)에게는 어린 동생이 생긴다. 하지만 미셸은 딘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받고, 에그시의 동생은 부모의 방치 속에 자란다.


에그시는 어느 술집에서 딘의 부하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그들의 차를 뺏어 달아나다가 사고를 친다. 취조를 받던 에그시는 어린 자신에게 목걸이를 주고 간 남자가 생각이 나 목걸이를 보고 전화를 걸고, 거짓말처럼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그 남자, ‘해리’(콜린 퍼스 분)가 나타나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격언을 에그시 눈 앞에서 몸소 보여준다. 알고 보니 해리는 유서 깊은 스파이 집단 ‘킹스맨’의 일원이었던 것. 과거 해리는 작전 수행 중 에그시 아빠 ‘리’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져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어 에그시를 도와주었다.


양복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킹스맨’들은 지난 17년간 한 명의 요원도 사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 분)과 그 부하 ‘가젤’(소피아 부텔라 분)에 의해 ‘랜슬롯’이 사망하자 새로운 요원을 선발한다. 에그시도 그 선발 과정에 참여한다. 그 사이 발렌타인의 타깃이 된 해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에그시가 해리를 대신해 이상 기후를 핑계로 세상 사람들을 몰살시키려는 발렌타인에 맞서 세상을 구하려 한다.

 


# 화려한 액션과 다양한 레퍼런스의 만남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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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킥 애스: 영웅의 탄생‘에서 루저들의 반란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블록버스터 안에서 캐릭터의 다양한 매력을 살리는 연출력을 선보인 매튜 본 감독이 ‘킹스맨’ 시리즈의 메가폰을 잡았다. 영국 태생인 매튜 본 감독은 한없이 근엄할 것만 같은 영국 신사의 이미지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스파이 역할을 더해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반대로 힙합 패션이나 맥도날드 등 미국 문화는 최대한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젠틀맨’의 기품을 한껏 극대화한다.


킹스맨들은 클래식한 패션과 달리 굉장한 하이테크한 무기를 바탕으로 액션을 뽐낸다. 맞춤 정장을 빼입은 요원들이 최첨단 무기를 가지고 자로 잰 듯한 액션을 선보일 때, 요란한 카메라 워크가 화려함을 더한다. 청불 등급을 받을 정도로 ‘센’ 표현은 덤이다. ‘킹스맨’ 양복점에는 양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최첨단 무기도 가득하다. 여느 스파이 영화들이 그랬듯 다양한 화기, 방탄이 되는 다용도 우산, 라이터 모양의 수류탄, 기억을 삭제하는 침을 쏘는 시계가 등장하고 볼펜까지도 무기가 된다.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면 킹스맨 본부로 연결되는 급행열차도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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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또한 과거의 다양한 작품의 이야기, 캐릭터, 대사를 가져와서 입맛에 맞게 변주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대표적으로 근간을 두고 있을 원조 스파이 영화 ‘007’ 시리즈를 입맛에 맞게 버무리고, ‘본’ 시리즈를 농담 거리로 삼는다. 킹스맨 요원들의 코드네임 ‘아서’, ‘갤러해드’, ‘랜슬롯’, ‘멀린’ 등은 모두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극중 해리의 표현대로 킹스맨은 영국 기사(Knight)의 현재형이다.


어린 시절 아빠를 잃고 스파이 조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성하는 에그시의 모습에서는 마법 세게에 초대 받는 ‘해리 포터’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해리와 에그시의 대화 속에서 인용되는 ‘대역전’, ‘니키타’, ‘귀여운 여인’, 그리고 ‘마이 페어 레이디’는 ‘킹스맨’과 소재나 이야기상의 유사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악당 발렌타인이 각국의 사회지도층을 모은 파티 장면에서는 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오고, 킹스맨 본부 마당에서 전투기가 튀어나올 때는 감독 본인이 참여한 ‘엑스맨’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상 기후를 핑계로 인간의 수를 줄이려는 발렌타인의 아이디어는 “인간의 수가 반으로 줄면 불타는 숲도 반으로 줄어들까”라고 질문했던 만화 ‘기생수’의 오프닝과 꼭 닮았다.

 


# 하층 계급 청년의 신데렐라 스토리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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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이야기 흐름과 유사하다. 1964년, 빈민가 출신의 하층 계급 여성을 교육시켜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는, 2014년에 와서 젠틀맨 스파이의 성장담으로 탈바꿈되었다. 영화 속에는 (유서 깊은 킹스맨 조직답게) 여전히 귀족과 평민의 갈등이 존재하는데, 킹스맨의 수장 아서(마이클 케인 분)는 귀족 혈통을 중시한다. 반면 해리는 평범한 에그시도 훌륭한 스파이로 성장할 거라 보고 기대를 건다.


빈민가에서 비참한 삶을 살던 에그시의 인생은 악순환이었다. 아빠는 일찍 죽었고, 새아빠는 조폭 두목이다. 집에선 언제나 고성이 오가고 폭력이 이어진다. 한때 올림픽 꿈나무였던 에그시는 점점 마약과 도둑질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니 취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실에서 낙하산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에그시 눈앞에 나타난 기품 있는 킹스맨들은 ‘젠체하는 샌님’처럼 보이면서도, 결국은 선망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귀족과 평민으로 대표되는 영화 속 계급 투쟁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서와 해리(&에그시)의 미묘한 갈등 관계를 만들어내고, 해리와 발렌타인의 갈등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몰살시키려는 발렌타인과 그에 동조한 사회지도층(여기엔 아서도 포함된다)을 ‘감히’ 평민인 에그시가 ‘전복’시키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이른바 ‘불꽃놀이’ 장면으로 화제가 된 부분에서, 영화는 ‘무려’ 미국 대통령의 머리마저 날려버린다. 에그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순간, 경쾌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이 장면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는 장면임에도 거의 축제처럼 묘사된다. 평민 에그시가 젠틀맨으로 거듭나는 신분상승의 판타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심지어 에그시는 악당을 모두 처단하고 스웨덴 공주와 뜨거웃 하룻밤을 보낼 예정이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영화 속 이야기니까 판타지는 판타지다.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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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은 또 다른 측면에서 세상의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다. ‘액션’ 장면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다. 발렌타인이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한 유심칩으로 인해 정신착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장면인데, 하필 그중 해리가 있다. 누구보다 젠틀하고 빈틈없는 킹스맨 요원이지만, 이처럼 제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해리는 그야말로 살인병기에 불과하다.


다른 한 장면은 발렌타인이 꾸민 음모에 세계 각국, 각 도시의 사람들이 서로를 때리고 죽이려는 장면이다. 영국 런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인도 뭄바이 그리고 그중엔 서울의 지명도 잠깐 등장한다. 이 두 장면은 영화의 흐름상 세상 사람들의 수를 줄이겠다는 발렌타인의 발상 때문에 나온 장면이지만 영화의 제작기간 전후의 정세를 살펴보면 자못 의미심장하다.


동명의 코믹스 원작을 바탕으로 ‘킹스맨’이 제작되던 2014년은 IS가 본격적으로 창궐하던 시대였고, 중동 지역의 내전은 계속됐다. 난민은 속출했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난민을 대했다. 갑작스런 난민 유입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들을 배척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대거 목소리를 높이고 네오 나치 시위대까지 등장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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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학살 장면은 더욱 적나라하다. 전체 인구 중 백인의 인구가 8~90%를 차지하는 켄터키 주의 한 교회. 목사는 동성애, 이혼, 낙태가 “적그리스도의 짓”이며, 유대인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꾀죄죄한 모습의 신도들은 목사의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감독은 교회의 입구에 ‘America is doomed(미국은 파멸했다)’라는 표지까지 걸어두었다. 감독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감독의 표현대로 세상은 여전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킹스맨’은 잔망스럽고 화려한 액션을 바탕으로,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세대에게 세상을 맡기겠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저변에서 ‘젠틀맨’으로 표상되는 품격 있는 영국 전통 문화로의 회귀를 외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 과감한 액션, 뻔뻔한 설정, 배우들의 수트핏(스튜핏 아니다) 등 이래저래 ‘볼거리’가 많아서 화제가 됐다. 기발한 액션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관객들이라면 언제든 찾아보면 좋을 영화다.


콜린 퍼스, 태런 에저튼, 마크 스트롱 등 출연 배우들이 내한(했다가 미숙한 행사 진행으로 오히려 호되게 욕을 먹고 있는)해 화제가 되고 있는 속편 ‘킹스맨: 골든 서클’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공개된 평가로 미뤄봤을 때 1편이 보여준 ‘잔망스러움’과 ‘패기’에 미치지 못하거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영화로 보이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제쳐두고 여유 있는 시간, 극장에서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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