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사랑한 판화가 에셔...이번 연휴에 아이랑 만나보자

2017년 10월 04일 11:00

[과학기자 문화산책]

 

‘어? 저 그림 어디서 많이 봤는데…’

 

‘손이 손을 그리는 그림’과 착시를 일으키는 ‘무한 계단’. 어디서 한 번쯤은 본듯한 두 작품은 모두 네덜란드의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이다. 작품을 그린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의 특별한 공간감이 반영된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킨다.     

 

● 수학을 사랑한 판화가 에셔

 

그의 작품에선 늘 수학의 향기가 난다. - 염지현 제공
그의 작품에선 늘 수학의 향기가 난다. - 염지현 제공

에셔는 예술가였지만 수학을 사랑했다. 보통 사랑한 게 아니라 지독히 사랑했다. 덕분에 수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풍겨오는 수학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

 

에셔는 전통 예술 영역에서 이단아로 불리던 흑역사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판화나 회화,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는 물론 수학, 건축과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20세기 대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특별한 수학적 시각과 공간감, 영감이 반영된 작품은 수많은 예술 작품에 오마주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에셔(또는 에스허르)’라는 작가는 몰라도, 영화 ‘인셉션’에 등장했던 무한계단이나 불가능한 도형을 대표하는 착시 삼각형은 누구나 한 번 쯤은 마주했을 확률이 높다. 

 

● 국내 최초, 에셔 특별展

 

기자는 그동안 에셔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사를 종종 써왔지만, 그때마다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을 맘껏 보여줄 수 없었다. 이미지 사용 권한을 얻는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그 절차를 진행한다고 해도 대표작 1~2점 이외에는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셔의 진짜 작품을 100여 점이나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니!

 

이번 전시를 주최한 박사진 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에셔 재단을 설득하는데 거의 3년이 걸렸다”며 “풍성한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재단뿐만 아니라 개인소장하고 있는 수집가에게도 여럿 도움을 받아 준비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선으로 표현한 작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특별전이 10월 15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미술관 1층에서 열린다. - 염지현 제공
수학의 아름다움을 선으로 표현한 작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특별전이 10월 15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층에서 열린다. - 염지현 제공

에셔의 작품을 만나러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국내에서 언제 다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오는 10월 15일까지, 에셔의 작품 1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 풍경화, 정물화에도 수학 감성 담겨

 

이번 전시는 특별히 그가 작품을 그린 시대 순서가 아닌, ‘시간과 공간’ ‘평면-입체’ ‘대칭과 균형’ ‘풍경과 정물’과 같이 4개의 테마로 꾸며져 있다.  

 

시간과 공간, 평면과 입체, 대칭과 균형은 주제에서도 느껴지듯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작품에서 수학이 느껴진다. 그러면 풍경화나 정물화는 어떨까. 제작 과정을 살짝 엿보면 이해가 더 쉽다.

 

에셔는 판화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즐겼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기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작품에 담았다. - 염지현 제공
에셔는 판화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즐겼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기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작품에 담았다. - 염지현 제공

 

에셔는 이탈리아 남부의 풍경에 푹 빠졌는데, 그는 초반부터 계단이나 벽처럼 집을 이루는 구조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었다. 에셔는 당시 이탈리아 여행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기하학 연구를 시작한 때도 이탈리아 여행 직후였다.

 

기하학에 관심을 두면서 에셔는 자신의 작품 속에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에서는 원근법에 따른 신기한 착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는 ‘폭포’는 에셔의 풍경화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폭포’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계단식 풍경이 담겨있다. 얼핏 보기엔 원근법을 정확히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풍경은 존재할 수 없는 모습이다. 올바른 원근법과 잘못된 원근법을 교대로 사용해 그렸기 때문이다.

 

작품 ‘폭포’의 관전 포인트는 작품명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물레바퀴를 움직이는 폭포에 있다. 폭포는 두 탑을 연결하는 물고랑을 따라 지그재그 모양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흘러간 물은 다시 물이 폭포로 떨어지는 지점과 만난다.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아마 물이 증발하지만 않는 한, 이 물레바퀴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에셔의 풍경화 또는 정물화에는 모두 이런 특징이 있다. 전시를 볼 때 작품마다 각기 다른 이런 특별한 포인트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 수학자 논문으로 작품을 완성한 에셔

 

에셔가 수학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다. 펜로즈는 ‘불가능한 도형 : 시각적 착시의 특별한 형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사실 펜로즈 삼각형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삼각형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삼각형의 내각을 집중해서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펜로즈 삼각형은 언뜻 보기엔 약 60°정도의 내각을 가진 일반 삼각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때 펜로즈 삼각형이 입체도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개의 각기둥이 합쳐져 그려진 펜로즈 삼각형은, 구조상 각기둥과 각기둥이 만나는 부분이 모두 90°를 이뤄야 한다. 따라서 펜로즈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270°(=90°+90°+90°)로,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라는 기본 성질을 어기는 착시 도형이다.

 

에셔는 이런 펜로즈 삼각형를 기초로 앞서 소개한 작품 ‘폭포’를 완성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미공개 강의록에 ‘폭포’는 펜로즈의 논문 중 ‘펜로즈 삼각형은 원근법적인 그림이다. 각각의 부분은 3차원 직사각형 구조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선들은 서로 연결 돼 있으면서 불가능성을 만들어 낸다.’라는 부분을 발췌해 적어 놓았다.

 

한편, 에셔는 1936년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기하학적 패턴과 대칭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이후 공간을 흑백으로 대조 해석하는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그 뒤로 에셔는 일정한 형태의 도형으로 평면을 빈틈없이 메우는 ‘테셀레이션’ (tessellation, 쪽매맞춤)을 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국내 최초로 열린 에셔특별전에서는 그의 테셀레이션 작품을 대표하는 ‘도마뱀’ 조형물과 함께 특별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을 만날 수 있다. - 염지현 제공
국내 최초로 열린 에셔특별전에서는 그의 테셀레이션 작품을 대표하는 ‘도마뱀’ 조형물과 함께 특별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을 만날 수 있다. - 염지현 제공


에셔는 전문 수학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수학 논문을 중심으로 대칭 분야를 공부했다. 특히 그는 헝가리의 수학자 조지 폴리아의 ‘평면 대칭군’에 관한 논문을 읽고, 17개의 평면 대칭군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그 결과 ‘평면을 규칙적으로 나눠 공간을 채우는’ 자신만의 테셀레이션을 완성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그의 테셀레이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도마뱀’과 관련된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거울의 방 안에 놓인 도마뱀 입체 조형물을 활용하면 특별한 기념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에셔전은 연휴가 끝나고 그 주에 막을 내린다. 워낙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에셔 재단의 허가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기약할 수 없다. 긴 연휴 중에 서울 나들이를 할 기회가 있다면 광화문에 들러 에셔전을 보면 어떨까. 수학, 과학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초등생 이상의 자녀를 둔 독자라면 더욱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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