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마스터의 비결, 새는 알고 있다?

2017.09.19 09:59

영어와 제2외국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저귀는 작은 새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언어를 배울 때 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밝히기 위해 발벗고 나선 과학자들이 있다. 그런데 연구 대상이 특이하다. 사람을 데리고 뇌 활성을 측정하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실에 가는 대신, 어른 손가락 두 개 만한 몸집의 작은 새들을 새장으로 데려간다. 이들이 주목한 연구 대상은 노래하는 새, ‘명금류’다. 십자매나 금화조(사진), 카나리아 같은 새가 속한다. 

 

금화조 - 위키미디어 제공
금화조 - 위키미디어 제공


‘새는 다 노래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면, 조상들의 관찰력을 무시한 거다. 비둘기나 까치, 닭도 분명 소리를 내지만, 고유한 음정과 리듬, 패턴이 있어 진정 ‘노래’라고 부를 수 있는 소리를 내는 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새들은 어려서 부모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독특한 학습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옹알이처럼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노래하던 아기 새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한 끝에 점차 부모와 비슷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반복 연습을 통해 특정 울음소리나 노래를 학습하는 과정을 과학자들은 ‘발성학습(vocal learning)’이라고 부른다. 사람과 명금류, 고래류 등 극히 일부 동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학습 과정이다.

 

언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어린 새가 노래를 배울 때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알아내면, 사람이 언어를 배울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추정했다. 마침 명금류는 쥐처럼 작고 번식이 빠르며 튼튼하고 키울 때 손이 덜 탄다. 좋은 모델 동물이라는 뜻이다. 1990년대 이후, 명금류를 통해 언어의 기원과 발생을 밝히려는 연구가 미국과 일본 등 몇몇 나라에서 시작됐다.

 

국내에도 명금류를 이용해 언어의 발생을 연구하는 뇌과학 연구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5일 대구를 찾았다. 고지마 사토시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책임연구원은 국내 유일의 명금류 뇌 연구자로, 미국에 있던 10여 년 전부터 금화조와 십자매의 노랫소리 분석하고 뇌 메커니즘을 탐구해 왔다. 한국뇌연구원에 약 2년 전 합류한 그는 “동물을 이용한 뇌과학 기초연구지만, 언젠가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연구 의의를 밝혔다.

  

코지마 사토시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왼쪽)과, 같은 연구실의 이다현 박사. 이 박사는 인간의 언어를 뇌과학적으로 연구했다. - 윤신영 제공
고지마 사토시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왼쪽)과, 같은 연구실의 이다현 박사. 이 박사는 인간의 언어를 뇌과학적으로 연구했다. - 윤신영 제공

Q. 명금류를 연구한다니 특이하다.
한국에서는 특이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 명금류를 연구하는 학자가 미국에는 꽤 있다. 주요한 대학에는 다 실험실이 있다. 일본에도 연구실이 있다.

 

Q. 어떤 계기로 연구를 시작했나.
처음부터 명금류를 연구한 건 아니었다. 원래는 달팽이를 연구했다. 달팽이는 신경망이 단순해 많은 뇌과학자들이 모델 동물로 연구하는 동물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뇌과학자 에릭 칸델도 달팽이로 연구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명금류의 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UC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할 때 이 분야의 유명한 석학인 앨리슨 도프 교수와 함께 했다.

 

(앨리슨 도프 UC샌프란시스코 교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로 명금류가 노래를 배우는 과정을 정교하게 밝혀낸, 이 분야의 선구적인 학자다. 2014년 타계했다.)

☞ 앨리슨 도프 박사 네이처 부고 기사

 

Q. 왜 명금류에 주목하나?
이 새는 노래를 한다. 그냥 노래가 아니고 높낮이, 구조 패턴 등이 있는 노래다. 그걸 어린 새가 아빠 새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른다. 발성학습(vocal learning)인데, 동물 사이에서 매우 드물다. 사람 외의 영장류도 못하는 거니까. 발성학습은 몹시 복잡한 행위다. 일단 아빠 새의 노래를 듣고 그걸 어딘가에 기억해야 한다. 이후 이를 흉내 내는데, 이 과정에 운동신경이 복잡하게 관여한다. 한 번에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 이걸 듣고 기억 속에 저장된 아빠 새 노래와 비교해 교정한다. 교정하려면 노래의 높낮이 등 여러 사항을 바꿔야 한다. 이걸 관장하는 뇌 부위가 있는지, 있다면 어디인지 등을 연구한다.


최근 내가 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예를 들어 명금류의 뇌에 노래를 배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X 영역(Area X)이라는 영역이 있다. 이곳을 조작하면 새는 노래는 하지만 비브라토(높낮이를 바꿔가며 떨 듯 부르는 기술)를 구사하지 못한다.

 

고지마 사토시 박사의 명금류 사육실. 새들의 아파트 같다. - 윤신영 제공
고지마 사토시 박사의 명금류 사육실. 새들의 아파트 같다. - 윤신영 제공

 

Q. 뇌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가?
그게 바로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다. 높낮이를 조절하는 뇌 부위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새가 조절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새는 높낮이가 적합한지 아닌지 판단을 하고, 적합하다고 보면 유지시킨다. 노래는 매우 복잡한 근육을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감각 및 운동 신경이 다 관여한다는 뜻이다. 노래 패턴을 보면 새는 낮에만 노래하고 밤에는 노래하지 않는다. 이것을 밤에 새가 (노래에 관한) 기억을 저장한다고 보기도 한다. 아직은 가설이다.

  

Q. 인간도 비슷한가?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굉장히 비슷하다. 다만 다른 게 있다. 명금류의 이 메커니즘은 오직 노래를 배우는 과정에만 특화돼 있다. 그런데 똑같은 메커니즘과 대응하는 뇌 영역을 인간은 악기를 배우거나 스포츠를 익히는 데에도 쓴다. 예를 들어 대뇌기저핵에 해당하는 부분은 명금류의 노래와 인간의 언어에 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 영역은 인간에게는 파킨슨 병과 관련이 있다. 운동과 관련이 깊다는 뜻이다.

 

Q. 어떻게 뇌를 연구하나. 작은 새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에 넣고?
너무 작아 fMRI는 불가능하다. 연구하고자 하는 뇌 부위에 직접 전극을 꽂아 신호를 측정한다.

 

(직접 방문한 실험실에는 격리된 채 한창 실험중인 십자매와 금화조를 볼 수 있었다. 머리에 전극을 꽂은 상태로 잘 날아다녔다. 연결된 측정장비에는 쉴새 없이 뇌 활성 데이터가 기록되고 있었다.)

 

실험 중인 십자매. 머리에 전극을 꽂은 채 잘 날아다녔다. - 윤신영 제공
실험 중인 십자매. 머리에 전극을 꽂은 채 잘 날아다녔다. - 윤신영 제공

 

Q. 사람의 언어와 비교하려는 시도도 흥미롭다.
이건 개인적인 계기도 있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영어 때문에 고생을 했다. 성인이 된 이후 영어를 배우면, 아무리 해도 원어민처럼 되기 힘들다. 특히 발음이 그렇다. 하지만 아기들은 그렇지 않다. 내 영어는 지금 당신도 듣고 있듯이 일본의 억양이 남아 있는데, 당시 어렸던 내 아이는 완벽한 영어 억양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었다. 이 연구를 오래 하면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Q. 아기 새 연구와 성인의 외국어 학습을 직접 연관시키긴 힘들지 않을까?
이런 연구가 있다. 명금류에게 인위적으로 스피커로 낮은 소리를 시끄럽게 들려준다. (영상을 보니 금화조가 노래하는 중간에 듣기 싫은 ‘딱! 딱!’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이 새는 원래 부르던 낮은 음을 포기하고 좀더 높은 음으로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배경 소음과의 차별화를 위해 노래를 바꾼 것이다. 우리 귀에 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측정해 보면 높이에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노래를 새로 배우게 하는 과정을 ‘인공학습’이라고 부른다. 이 방법을 다 큰 새에게 써서 노래를 가르칠 수 있다. 실제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Q. 명금류의 발성학습을 통해 인류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려는 과학자도 있다.
일본 도쿄대의 오카노야 가즈오 교수 등이 하는 연구가 그쪽이다. 인기가 많은 주제다. 뭐랄까, 이야기를 만들기 좋은 분야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언어를 완벽하게 배우게 되는지 그 뇌 내 메커니즘 쪽에 더 관심이 많다. 오카노야 교수가 그 분야에서 워낙 유명해서 비슷한 분야를 하지 않는 게 낫기도 하고.(웃음) 내 목표는 외국어 학습을 개선하기 위한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오카노야 가즈오 도쿄대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명금류 연구자다. 명금류의 노랫소리를 분석하고 발성학습 패턴을 연구해 인간 언어의 기원을 추정하고 있다.)


☞ 오카노야 가즈오 교수의 공동연구자 다카하시 미키 교수가 기고한 2014년 7월 과학동아 기사

 

 

코지마 사토시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왼쪽)과, 같은 연구실의 이다현 박사. 이 박사는 인간의 언어를 뇌과학적으로 연구했다. - 윤신영 제공
고지마 사토시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왼쪽)과, 같은 연구실의 이다현 박사. 이 박사는 인간의 언어를 뇌과학적으로 연구했다. - 윤신영 제공

Q. 언어 학습을 연구하는 뇌과학자니, 마지막으로 두 가지 크고 어려운 질문을 하겠다. 당신은 ‘학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질문의 의도가 뭔지 어려운데… 동물에게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것. 그게 학습이다. 달팽이처럼 단순한 동물은, 한쪽을 계속 찌르면 그 부위를 움츠린다. 아주 단순한 학습이다. 명금류는 더 복잡하다. 하지만 둘 다 행동을 바꿨다. 
 

Q. 어려운 질문 두 번째다. ‘사회성’은 무엇일까.
사람이나 명금류나 둘 다, 발성학습을 할 때 사회 관계가 중요하다. 새가 어릴 때 아빠 새의 노래를 듣고 배우는데, 같은 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주면 아기 새는 잘 모른다. 사회적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스위치를 눌러 노래가 나오는 기계를 도입하면, 새가 노래를 잘 배운다. 비록 기계와의 관계지만, 일종의 사회 관계가 형성된 덕분이다.

 

우리도 그렇다. DVD 등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조차 이걸로는 언어를 잘 배우지 못한다. 인간 선생님에게 직접 배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현재 이런 사회성과 뇌 메커니즘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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