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반도, 전쟁불안증? 혹은 전쟁불감증?

2017년 09월 16일 10:00

계속되는 북한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흉흉합니다. 많은 분들이 전쟁의 위험성을 걱정합니다. 생존 배낭과 방독면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이민을 떠나고 싶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각국 지도자의 성격을 들먹이거나, 심지어 예언서를 언급하며 불안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쟁같은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분도 있습니다. 미국인과 중국인이 아직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안심하라고 하기도 하죠. 으레 북한과 미국은 허풍을 떨지 않았냐고 하며, 심지어 위기 관련 뉴스는 다른 목적을 위한 음모 정도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아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꺼버리는 분들이 많죠.


심지어 개인 각자의 마음에도 한편으로는 노심초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천하태평한 상태가 공존합니다. 정말 괴이한 수준의 인지 부조화입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발사 중인 북한 미사일. 계속되는 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전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또한 한국인들은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 Eget verk 제공
발사 중인 북한 미사일. 계속되는 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전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또한 한국인들은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 Eget verk 제공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불안


야크 판크세프는 포유류가 가진 일곱가지 심리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탐색, 분노, 두려움, 공황, 유희, 욕정, 돌봄 입니다. 이중 불안과 관련된 정서는 두 가지, 즉 두려움(Fear)와 공황(Panic)입니다. 이러한 정서는 우리 선조의 삶에 큰 이득을 주었지만, 또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했죠.


부스럭거리는 수풀 뒤에 어른거리는 얼룩 무늬는 과연 무엇일까요?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 금방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잽싸게 도망친 개체는, 태평스럽게 수풀에 가까이 간 개체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을 것입니다. 자손도 더 많이 낳았겠죠. 네. 우리는 모두 쉽게 불안과 공포를 느끼던 조상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두려움의 감정을 즐기기도 합니다. 공포영화는 바로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 성향을 이용한 것이죠. 


공황은 일반적인 불안과 약간 다릅니다. 우울감과 더 많이 관련됩니다. 집단 생활을 하는 포유류, 특히 영장류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슬픔, 죄책감, 수치심 등이 이에 속하죠.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모든 사회는 어느 정도 위계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 걱정하지만, 또한 나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끊임없이 평가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공포와 두려움 속에 노심초사하며, 주변의 분위기에 의해 공황에 빠지기도 하는 ‘숙명적 불안’을 견뎌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Anxiety. 포유류의 한 종으로서 인간은 불안의 숙명을 가진 존재다. 불안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이지만, 또한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유일한 정서 중 하나다. - BaileysGallery 제공
Anxiety. 포유류의 한 종으로서 인간은 불안의 숙명을 가진 존재다. 불안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이지만, 또한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유익한 정서 중 하나다. - BaileysGallery 제공

불안의 시대


2016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정신질환 실태조사에 의하면, 2011년에 비해 대부분의 정신장애 유병율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비록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불안 장애의 유병율이 높아진 것입니다. 모든 연령대에서, 남녀 공히 불안장애를 더 많이 앓게 된 것이죠. 도대체 우리는 왜 전보다 더 불안해진 것일까요?


일부에서는 불안의 원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사회적 요인을 지적합니다. SNS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는 유언비어, 1인 가정의 증가로 인한 가족 구조의 해체, 최근 증가한 기술적 대형 재난 등이죠. 분명 인간은 숙명적 불안의 존재입니다. SNS가 없고 대가족이 살던 시대에도 인간은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파편화된 복잡 사회는 개인적 불안을 집단적 공황으로 급격히 확산시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벌써 60년이 넘었죠.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단지 상상에 의존할 뿐입니다. 즉 전쟁에 대한 불안은 경험적 불안이 아니라, 원초적인 무의식적 불안입니다. 그러므로 전쟁공포증은 종종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과장되어 확산될 수 있습니다. 전전긍긍하며 방독면을 준비하고 해외로 도망친다면서 호들갑을 떠는 이유죠.


반대로 아예 철저하게 외면해버리는 심리적 방어도 일어나곤 합니다.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인양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각자가 자주 사용하는 무의식적 방어가 반영된 것입니다. 아마 두 가지 반응 사이 어딘가 정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상 늘 외침이 끊이지 않았죠. 우리 민족은 외적의 침입이라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국 전쟁 이후 60년 동안 예외적인 평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무려 200년 이상 큰 외침 없이 평화롭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임진왜란 직전, 1590년 대 초반입니다.

 

부산진 순절도(釜山鎭殉節圖), 대한민국 보물 제391호. 1592년 4월 13일(음력) 700척의 배와 18700명의 왜군은 부산진을 완전히 포위했고, 부산진을 지키던 1000여명의 군사는 모두 전사했다. 임진왜란의 첫 전투였다. 그러나 조정은 당시에도 둘로 나뉘어, 왜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을 계속했다. - 변박 제공
부산진 순절도(釜山鎭殉節圖), 대한민국 보물 제391호. 1592년 4월 13일(음력) 700척의 배와 18700명의 왜군은 부산진을 완전히 포위했고, 부산진을 지키던 1000여명의 군사는 모두 전사했다. 임진왜란의 첫 전투였다. 그러나 조정은 당시에도 둘로 나뉘어, 왜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을 계속했다. - 변박 제공

전쟁공포증의 두 가지 반응


황윤길은 부산포에 도착하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일본의 정세를 시급히 보고했다……. 김성일은 ‘신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징조를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황윤길이 인심을 동요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조정 신하들 중 일부는 황윤길의 말을 지지했고, 일부는 김성일의 말을 지지했다. 내가 김성일에게 ‘그대의 말은 황윤길의 말과 다른데, 만일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성일이 ‘저 역시 어찌 왜적이 끝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겠습니까? 다만 황윤길의 말이 너무 지나쳐 조정 안팎이 놀라고 당황할 것이므로 그것을 우려해 그리 말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류성룡, <징비록> 1권 1장에서


황윤길과 김성일은 1591년, 위와 같은 보고를 조정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터졌습니다. 흔히 황윤길은 전쟁의 위험을 알린 지혜로운 신하로, 그리고 김성일은 어리석거나 나쁜 신하로 그려지곤 합니다. 물론 결과만 보면 그런 면이 있지만, 사실 전쟁의 가능성을 100%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만약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황윤길은 괜한 호들갑을 떤 소인배로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의 불안은 주로 판크세프가 말한 ‘공포’와 ‘공황’, 이 두 가지 정서에 의해 지배됩니다. 외적이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공포’라고 할 수 있고, 사회가 무너져 혼란해질 것이라는 불안은 ‘공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둘다 불안을 유발하는 핵심적 정서입니다만, 그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다릅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공포는 외적으로 표현되는 불안을 유발합니다.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반대로 공황은 내적으로 억압하는 불안을 유발합니다. 상황을 부인하거나, 안으로 숨으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낍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은 불안해집니다. 초조감을 이기지 못하고 밤을 꼴딱 새며 전전긍긍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게 잠만 쿨쿨 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죠. 그 중간 어디쯤의 상태를 유지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도 마찬가지입니다. 과도한 전쟁불안증과 무책임한 전쟁불감증의 중간 어디쯤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우의정 류성룡의 천거로 무려 6계급을 특진하여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착실하게 전쟁을 준비했다. 그가 거북선 건조한 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4월 12일이었다. 그는 임진왜란 기간 내내 단 한번도 패전하지 않았다. - 이윤호 제공
이순신 장군 동상. 우의정 류성룡의 천거로 무려 6계급을 특진하여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착실하게 전쟁을 준비했다. 그가 거북선 건조한 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4월 12일이었다. 그는 임진왜란 기간 내내 단 한번도 패전하지 않았다. - 이윤호 제공

에필로그


전쟁에 대해서 100% 적중률을 보이는 예언이 두 가지 있습니다. ‘오늘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와 ‘언젠가는 전쟁이 일어난다’입니다. 이 두 가지 예측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 사회는 두 가지 예언이 서로 맞다며 싸우고 있는 격입니다. 물론 둘다 100% 맞는 예언이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예측입니다. 조정이 왜의 침입 가능성에 대해서 대해 지루한 논쟁을 계속 하고 있을 때, 이순신은 말없이 전함을 만들고 수병을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정신과 전문의 박한선은 인간의 마음 그리고 마음의 병에 대한 인류학적 의미에 대해 공부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정신 장애의 진화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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