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쾌활한 척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질까

2017년 09월 17일 08:00

최근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소프트웨어 등에 익숙해져야 하다보니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다. 이제 조금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하나 둘 실수들을 발견했고 급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이것 밖에 안 되다니..’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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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소침해진 것 자체로도 별로인데 의기소침함을 느끼는 나를 보고 또 다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이런 작은 일로 기죽는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나의 선택지는 보통 둘 중의 하나였다. 1) 별 일 아니라는 듯 행동한다. 나의 마음은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그냥 무시하고 계속 일에 몰두하거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2) 억지로 쾌활한 척을 해본다. 빨리 이런 꿀꿀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라도 긍정적 정서를 끌어 올려 부정적 정서를 덮어버린다.


그런데 사실 이런 감정 조절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 감정이 생기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감정은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보내지는 일종의 ‘상태 메시지’ 같은 것이다. 따라서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그 메시지를 제대로 ‘수신’/이해해야 감정이 수그러들게 된다. 그러지 않고 감정을 계속 무시하면 받은 메시지함에 확인되지 않은 편지가 1358통 쌓여있는 셈이 된다. 잠깐 귀를 기울이면 되는 데 그게 귀찮거나 힘들어서 무시했다가 되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오래 질질 끌고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한 연구는 들어주지 않으면 쌓이지만 들어주면 금방 해소되는 감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약 1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평소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얼마나 솔직한지 아니면 얼마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억압하는 편인지를 측정했다(예,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생각/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다그치는 편이다). 그 결과 평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억압하지 않고 부끄럽거나 당혹스러운 생각들까지도 잘 인정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과 불안 증상을 덜 보이는 반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혹시 이미 행복하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평소 스트레스나 크게 기분 나쁠 일이 적기 때문에 더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직면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즉 감정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은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잘 받아들이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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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평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거나 억압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메라 앞에서 ‘모의 면접’을 하는 같은 과제를 주었다. 그 결과 똑같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 일을 했어도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부정적 정서를 덜 느끼는 등 힘든 일의 영향을 덜 받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성별, 인종, 사회경제적지위 등과 상관 없이 나타났다.


2주 간 매일매일의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반응을 추적조사 했을 때도 자신의 감정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일상 속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덜 불행한 경향을 보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발견은 나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지 여부는 행복이나 정신 건강과 상관 없었고 나쁜 상황으로 인한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는지 여부만이 행복 및 정신건강과 유의미한 상관을 보였다는 점이다.


불행한 사건에 ‘반응(react)’하지 말고 ‘대응(respond)’하라는 말이 있다. 나쁜 일이 우리를 흔들게 되는 시점은 그 일이 발생한 직후가 아니라 이후 그 일을 우리가 마음 속으로 프로세스하는 도중이며, 같은 일에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대응을 보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쁜 일이 그 자체로 우리를 흔든다기보다 그 이후에, 내가 나의 감정에 어떻게 응답(무시? 또는 과하게 부풀리기?) 하느냐가 더 큰 관건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불쾌한 감정이 밀려오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싫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어떻게든 감정을 어딘가에 쳐박아두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계속해서 고개를 들며 우리 안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감정이란 본래 물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라서 흐르도록 허락하면 잠시 머물렀다가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된다는 것도.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어서 나 역시 노력 중이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다.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의기소침해하는 나를 보고 쪽팔림을 느꼈다. 속상했다.’라고 내 마음 상태를 인정해 봤다. ‘내가 요즘 수고가 많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의외로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 참고문헌
Ford, B. Q., Lam, P., John, O. P., & Mauss, I. B. (2017). The psychological health benefits of accepting negative emotions and thoughts: laboratory, diary, and longitudinal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지뇽뇽 심리학 칼럼니스트

imaum02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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