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나고야의정서 가이드③] 전통지식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2017년 09월 11일 18:00

※편집자 주: 8월 17일 한국에서도 해외의 생물 유전자원이나 전통지식을 활용할 때 관련 법률에 따라 자원 제공국의 사전허가를 받고, 이익도 공유하도록 하는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됐습니다. 이에 동아사이언스는 실제 연구 현장에서 생물 유전자원을 활용하는 연구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연구자 나고야 의정서 가이드’를 연재합니다.

 

국제 공동연구도 사전허가 필요할까

기초연구와 상업화 연구, 똑같이 적용될까

전통지식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국내 자생생물로 대체 가능할까

 

☞관련 기사: 17일 한국에서도 ‘나고야의정서’ 발효…“연구 현장에도 타격 예상”

 

(데스킹 전) [연구자 나고야의정서 가이드③] 전통지식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 pinterest 제공
쿡 제도의 원주민들. 쿡 제도에는 코코넛, 해변완두콩 같은 식물 추출물을 이용해 골절을 치료하는 전통지식을 갖고 있다. - pinterest 제공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B 박사는 쿡 제도에서 사용하는 전통적인 골절치료 방식을 현대의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원시 부족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했다. B 박사는 연구를 시작하기 전 쿡 제도의 원시 부족을 대표하는 합법적 기구인 ‘코우투 누이’에 연구 계획서를 제출하고, 사전허가를 구했다. 유전자원 및 전통지식에 대한 접근과 활용 목적, 이익공유 방안 등을 제안했다.
 
코우투 누이 집행부는 간부회의와 연례총회를 거쳐 B 박사의 연구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그 결과로 B 박사는 쿡 제도의 전통치료사가 제조한 ‘바이라카우 아띠(Vairakau Ati)’ 한 병을 얻을 수 있었다. B 박사는 이 약물을 호주의 연구실로 가져가 성분 분석, 세포배양실험, 동물실험 등을 거쳐 바이라카우 아띠에 담긴 식물 추출물의 효능을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골절 치료, 연골 재생, 외상 치료 등 의약품뿐만 아니라 피부 재생 기능이 있는 기초화장품까지 개발해 특허를 냈다.
 


이는 ‘쿡 아일랜드 메디컬 테크놀로지(CIMTECH·심테크)’라는 회사를 설립한 외과의 그레이엄 마더슨 호주 카링바사립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의 실화다. 쿡 제도는 150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전통 문화를 많이 잃었다. 그러나 원시 공동체 사이에서 구두로 전해져 내려온 전통지식은 일부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마더슨 박사가 연구를 수행한 건 국제적으로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기 전이었던 2003년부터다(쿡 제도의 경우 나고야의정서 이행 법률과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도 비준하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원시 부족과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연구였던 만큼 당시 마더슨 박사는 나고야의정서에 준하는 절차를 거쳤다.
 
마더슨 박사가 연구에 활용한 것은 쿡 제도의 전통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제조한 유전자원(식물 추출물)이다. 때문에 마더슨 박사는 쿡 제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코우투 누이도 주요 이해관계 당사자로 여기고, 연구에서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코우투 누이가 동참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또 쿡 제도 정부의 승인과 투자를 이끌어 현지에 제조 시설을 구축하고  현지인을 고용했다. 모든 자원의 생산과 공급이 쿡 제도인의 동의 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심테크의 소유권과 연구 성과 특허권, 금전적 이익 역시 마더슨 박사와 코우투 누이의 공동 소유다. 당시 코우투 누이 수장이었던 루비 도리체 레이드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통의학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마더슨 박사의 프로젝트는) 쿡 제도에서 실시된 첫 과학 연구로, 남태평양 일대에 유례없는 일자리와 이윤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연구 프로젝트의 금전적·비금전적 이익 공유 합의 조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 제공
자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

현재 심테크는 쿡 제도산 활성 오일 성분으로 만든 항노화 기초화장품 ‘테티카(TeTika)’ 시리즈를 판매 중이다. 테티카는 ‘신뢰와 통합’이라는 뜻의 원시 부족 언어다. 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은 “심테크와 코우투 누이의 합의는 연구를 수행하기 전 원주민에게 연구의 의도, 위험성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익 공유 조건에 대한 정직한 합의를 이끈 모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특정 공동체에서 전해져 내려온 전통지식이 현대과학을 만나 빛을 보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나고야의정서가 전통지식을 지켜온 제공국 또는 원시 공동체의 주권을 인정해 주는 이유다. 2015년에는 투 유유 중국 전통의학연구소 주임교수가 고대 의학서적에서 얻은 중국 전통지식으로 개똥쑥(Artemisia annua) 추출물을 이용해 말라리아 치료제(아르테미시닌)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안민호 ABS연구지원센터 연구원은 “나고야의정서상 연구자가 토착 지역 공동체의 전통지식을 이용하고자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고지해야 하는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사전통고승인(PIC)을 구하고 상호합의조건(MAT)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이런 부분에 대해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며 “연구자들도 도덕적인 차원에서 공동체 간 분쟁이나 갈등, 자본 유입에 따른 문화 침식 등 연구 프로젝트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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