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A와 CES가 바라보는 가전의 차이

2017년 09월 06일 17:30

박람회는 각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신 유행과 기술 흐름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고, 미래를 내다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박람회 그 자체는 매우 유행을 많이 탄다. 주제에 예민한 게 박람회, 전시회라는 이야기다.

 

최호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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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PC를 중심으로 한 박람회들이 인기를 끌었다. 컴퓨터는 가장 돋보이는 기술이었고, 새로운 반도체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놓쳐서는 안 됐다. 라스베가스 컴덱스, 하노버 세빗, 그리고 타이페이 컴퓨텍스 등이 주목받았던 게 그리 오래 전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 인기 있는 박람회를 꼽자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 그리고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를 들 수 있다.


모바일과 가전이 인기다. 최근의 흐름은 분명 그렇다. 물론 그 이면에는 PC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이전만 못하다는 요인도 있지만 이제 컴퓨터는 제품이라기보다 ‘컴퓨팅’이라는 역할로 의미를 옮기면서 그 형체와 주요 시장을 바꾸고 있다. 그 기술력이 표현되는 방법이 가전이고, 또 다른 한 편으로 컴퓨터 역시 놀라운 제품이 아니라 컴퓨팅 경험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가전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한다.

 

최호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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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가전의 의미


CES와 IFA가 주목받는 것도 이 흐름이다. 두 전시회는 ‘소비자 가전’을 중심에 둔다. 그 때문에 서로 주제가 겹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IFA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드는 두 전시회 간 차이는 꽤 크다. 이는 곧 시장의 시선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이제 가전은 단순히 냉장고, 세탁기, TV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전의 의미는 더 넓어졌고, 컴퓨터를 비롯해 자동차 등으로 끊임 없이 확장,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장이 바라보는 가전의 역할도 나라마다, 환경마다 서로 다르다. 그 흐름이 매우 흥미롭다.


IFA가 CES와 가장 다르다고 느낀 것은 전시 공간에 있다. CES는 미국 기업, 혹은 글로벌 기업의 미국 기지에서 운영하게 마련이다. 부스는 밝고 화려하고 크면서도 다양한 기술들이 전시된다.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전시 부스도 이 미국 박람회와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회들도 그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CES는 미국이라는 공간 외에 나머지는 우리에게 그리 낮설지 않다.

 

최호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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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A의 전시 공간은 또 다르다. 밀레, 보쉬, 지멘스를 비롯한 유럽 가전들이 전시 부스를 꾸미는 주제는 ‘공간’ 그 자체에 있다. 유럽 가전 역시 아마존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 등 연결성에 대한 고민은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유럽 가전은 자체적인 가전 사물인터넷 플랫폼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아마존과 구글의 플랫폼을 끌어안는다. 새로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이들은 플랫폼 개발보다 이미 구축된 환경 안에서 최적의 경험을 만드는 데에 더 집중하는 눈치다.


특히 눈에 띄는 차이는 각 기업들이 관람객에게 공간과 경험을 판다는 점이었다. 부스는 밝고 화려하기보다 아늑하고 편안하게 꾸며졌다.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제품보다 꾸며 놓은 주방, 거실이 더 탐난다. 보통 제품보다 다른 부분이 더 눈에 띄는 건 그리 좋은 경우가 아니지만 이 경우는 좀 달랐다. 집 안에 이런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자연스레 그 공간을 꾸민 가전들로 시선이 옮겨진다.


‘공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이 전시 부스들의 공간은 가전에 맞춘 가상 환경이지만 가전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두드러지기보다 공간과 어떻게 잘 맞출 수 있느냐의 중요성이 있다. 그건 IT 기술이나 모터 기술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최호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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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된 시장이 움직이는 동력, ‘공간의 이해’


공간은 그만큼 재미있는 주제다. 특히 집에 꼭 맞춰지는 빌트인 가전은 근래 나타나는 분명한 흐름이다. 그게 만들어주는 가치도 꽤 크다. 우리는 그 동안 기성복처럼 가전에 집을 맞춰 왔다. 냉장고는 툭 튀어 나오고, 세탁기는 세탁실에 어중간하게 놓인다. 보기에 좋지 않을 뿐더러 공간을 잘못 쓰는 경우도 많다. 주어진 인테리어에 정해진 가전을 쓰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빌트인 가전은 비싸다. 대량 생산이 어렵고 어느 정도는 맞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사할 때 가져갈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실용적이지 않다’, ‘사치품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좋다는 것은 알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왜 빌트인 가전을 사냐’는 핀잔을 듣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가전 기업들은 이 빌트인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이를 원하는 시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CES에서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의 윤 구 상무와 가전 흐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불현듯 생각이 났다.


“유럽은 가구쇼와 가전쇼가 통합되고 있고, 양쪽 산업이 모듈 형태로 연결되는 게 트렌드입니다. 공간을 개인화하고, 집을 꾸미는 것이 취미로 자리잡으면서 조금 더 비싸더라도 공간 효율성을 신경쓰는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 시장 뿐 아니라 모든 인테리어를 직접 꾸미는 중국 시장에서도 강하게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최호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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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이제 단순히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공간이 아니다. 공간의 의미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CES에서 눈에 띄었던 새로운 가전 흐름 중 하나가 음성 인식과 주방의 결합이다. 이 역시 가족이 개인화되면서 거실에 모여서 TV를 보던 과거의 흐름이 사라지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공간이 주방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CES가 이를 기술적으로 집중했다면 IFA는 공간적인 의미로 해석한다고 볼 수 있다.


“가전 산업의 미래도 라인의 단순화로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것에서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가격 부담을 높이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빌트인 가전은 부담이다. IFA 부스에서 눈길을 끌었던 공간을 가지려면 가전 뿐 아니라 가구와 인테리어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윤 구 상무의 이야기는 결국 그 흐름을 완성하려면 개인화할 수 있는 생산 환경 흐름까지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전 전시회는 왜 다시 주목받고 있을까? 그 안에는 자율주행 차량이나 인공지능 스피커, 새로운 스마트폰 기술 등도 있겠지만 그 기술들이 결국 가정의 환경과 경험을 바꾸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이 냉장고가 없어서 전시회를 찾고, 세탁기를 처음 구입하는 시장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PC나 스마트폰보다 더 성숙되어 있고, 본질적인 기술 발전의 여지도 적은 게 가전이다. 이들을 끌어 당기는 또 하나의 답이 바로 공간의 본질적인 이해와 존중이 아닐까 한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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