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20] 집골목: 유년의 추억이 빙그레 웃고 있는 곳

2017년 09월 02일 18:00

단독주택들로 마을을 이룬 오래된 동네에는 골목집이 있다. 어디든 골목집은 담장을 경계로 사방에 이웃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외부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집골목뿐이다. 그런 골목집은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전에 터를 잡은 집이다. 맨 먼저 터를 잡자 전후좌우로 하나씩 이웃집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집골목이 생긴 것이다. 나의 조부께서 지은 집이 골목집이 되었다. 그 집에서 나는 네 살 때부터 24년을 지냈다. 대지는 육십 평이었지만 기와지붕을 얹은 건평은 스무 평이 채 안 되었다. 장독대를 이고 있던 세면장과 마당 귀퉁이의 변소와 창고가 있던 뒤꼍을 포함한 앞마당이 삼십 평 남짓 되었으니, 늦가을이면 연탄을 실은 리어카가 빠듯이 드나들 수 있는 넓이의 골목의 평수는 열 평가량 되었다. 그러니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대지는 2할이나 빠진 오십 평쯤 되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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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로 드나드는 통로로만 쓰였던 그 무용한(?) 공간이 허전해 보였는지 봄이 오면 나의 할머니께서는 긴 골목의 담장 아래에 깨꽃을 나란히 심으셨다. 지구 저편의 브라질이 원산지인 깨꽃의 원어명은 ‘salvia’이고 외래어표기법으로는 ‘샐비어’지만 그 꽃을 우리 가족은 ‘사루비아’라고 불렀다. 할머니 덕분에 해마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사루비아는 골목 양쪽 가장자리를 진홍색으로 나열했다. 사루비아 말고도 우리 집 마당에는 백합, 달리아, 채송화, 봉선화, 백일홍, 철쭉 등의 꽃식물들이 계절마다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어린 나는 사루비아를 좋아했다. 이유는 단 하나, 새끼손가락 길이의 가느다란 꽃잎을 따면 그 속에 든 설탕물처럼 달짝지근한 수액을 빨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년의 나는 그 단맛이 좋아 집골목을 지날 때마다 꽃잎을 따서는 수액을 빨아먹곤 했다.


그 집골목은 우리 가족에게는 그저 집 안팎으로 드나드는 고즈넉한 통행로였지만 어린 내게는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였다. 훗날에는 선친께서 그곳에 팔각형의 보도블록을 깔아 궂은 날에도 질척이지 않았지만, 이전에는 흙바닥이었기에 맨땅에서 하는 놀이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서 내가 끼어 있는 한 우리 집골목은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였다. 그런 날은 모여든 아이들이 당장 나를 따라 샐비어 꽃잎의 수액을 빨아대는 바람에 꽃들을 맴도는 꿀벌들에겐 수난이었다. 그것도 날씨가 무덥기 전까지였지만 그 즈음이면 각자 집에서 접어온 정사각형 딱지를 한 움큼씩 내놓았다. 그중에는 각자 대표 선수가 한두 개씩은 있었는데 그것은 달력 같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갑빠’(크고 두툼한 딱지. 남성의 멋진 가슴 근육에 비유한 속어)였다. 갑빠로 내려칠 때마다 맨바닥에서 배를 내놓고 뒤집어지는 잔챙이 딱지를 따먹는 재미에 아이들은 밥때가 지나는 것도 모르고 제 장딴지 안쪽이 벌겋게 되도록 딱지를 치며 집골목에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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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뿐만 아니라 집골목에서의 놀이는 이제는 모두 기억나지 않을 만큼 숱했다. 계절에 따라 놀이 종목은 바뀌었다. 봄가을에는 주로 선생님이 쓰다 버린 몽당 분필을 주워 와 금을 그어 팔방놀이를 하거나 동네 길가에서 주운 납작한 돌멩이로 비석치기를 했고 겨울에는 저마다 호주머니에 불룩이 챙겨온 구슬을 꺼내놓고는 딴치기, 삼각형, 구멍파기 등 여러 형식의 구슬치기에 여념 없었다. 또한 또래 아이들은 나무 팽이 윗면에 크레용으로 형형색색을 칠한 팽이들을 추돌시켜 언 땅에서 싸움을 시켰다. 그러다가 설 명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리 동네에서는 ‘띠기’라고 불렀던) ‘달고나’ 할아버지께 달려가 세뱃돈으로 달고나를 샀다. 나는 주로 별 모양이나 저고리 모양을 선호했는데 나중에는 1자형 문양이 떼어내기 쉬운 걸 알고는 보너스를 받기 위해 달고나를 들고 우리 집골목에 혼자 와서는 바늘을 이용해 성공률을 높였다.


집골목에서의 환희는 그뿐 아니었다. 평생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위해 헌신하셨던 나의 선친께서 드물게 외식을 하고 귀가하시는 날이면 자신만 맛난 식사를 하여 미안했는지 종종 전기구이 통닭을 들고 오셨다. 집골목 대문 밖에서 ‘삑! 삑!’ 하고 초인종을 연속 두 번 누르는 분은 언제나 나의 선친이었다. 대문을 열어드리기 위해 슬리퍼를 끌고 뛰어나가면 이미 집골목을 걸어 들어온 통닭 냄새가 어린 나를 반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귀가가 자주 늦어지길 바랐지만 (선친의 주머니 사정으로) 그런 날은 드물었다. 하지만 어쩌다 그날이 오면 아버지 손에는 늘 통닭이나 ㅌㄱㄷ 아이스크림 한 통이 들려 있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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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일부러 장대비를 흠뻑 맞고 귀가하던 사춘기를 지나, 연서가 배달되었는지 궁금해 매일 집골목을 오가며 우체통을 열어보던 청년기를 지나,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집을 떠난 후 일 년쯤 지나서는, 나는 더 이상 우리 집골목을 밟을 수 없었다. 낡은 집이었지만 마당이 넓고 집골목이 길어 빨래를 널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세탁소 주인이 우리 집을 샀기 때문이었다. 그해 7월 초순에 이사했으니 집골목의 샐비어는 한창이었을 테다. 그 양쪽 사이에 빨랫줄이 오선지처럼 그어졌겠지만 꽃에만 몰두한 벌들은 분주했을 테다. 이듬해에도 샐비어는 피었을까? 세탁 일에도 분주했을 새 집주인이 한해살이 꽃씨를 챙겨 전 주인처럼 집골목을 환히 불 밝혔을까? 여름이면 여전히 그곳에 잔치를 벌이듯 꿀벌들이 날아와 아침부터 해거름까지 재잘댔을까?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느닷없이 소식이 끊겨 내내 텅 빈 우체통처럼 이미 나는 그곳에 없었으니.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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