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동물일수록 더 보호받아야 한다?

2017.08.29 17:10

 

노과학자의 눈에서는 딜레마와 맞서 싸워온 베테랑의 풍화한 상흔이 읽혔다. 50년 가까이 ‘동물복지’라는 개념을 무기로 대중과 농축산인, 정부를 설득하며 싸워 온 흔적이었다. 최초의
'동물복지 교수' 도널드 브룸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의대 명예교수. - 윤신영 제공

노과학자의 눈에서는 딜레마와 맞서 싸워온 베테랑의 풍화한 상흔이 읽혔다. 50년 가까이 ‘동물복지’라는 개념을 무기로 대중과 농축산인, 정부를 설득하며 싸워 온 흔적이었다. 동물복지라는 말을 그가 처음 쓴 것은 아니었다. 구글 엔그램으로 찾아보면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182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급격히 널리 사용됐는데, 여기에는 그의 공이 컸다.


주인공은 도널드 브룸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의대 명예교수. 1986년 세계 최초로 ‘동물복지 교수(Professor of Animal Welfare)로 임명된 이후, 동물복지 및 인간동물유대학 연구센터를 세우고 ‘동물복지과학(Animal welfare science)’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발전시켰다. 유럽식품안전청(EFSA) 등 여러 기구와 정부에 과학을 근거로 한 자문도 했다. 동물복지는 개개인의 선량함에 기대던 태도의 영역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통해 설득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인천 송도에서 열리고 있는 제33회 세계수의사대회 동물복지 분과 세미나의 좌장을 맡아 방한한 그를 28일 서울에서 만났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초청으로 대학원생들을 위한 세미나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세미나와 인터뷰 내내 “인류가 이용하는 모든 동물을 키우고 운송하며 죽이는 과정에 인도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할 명백히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브룸 교수의 저서들 중 일부. 동물복지과학과 도덕, 윤리의 진화 등 동물 복지와 관련한 다양한 책을 남기고 있다. - 아마존 외 제공
브룸 교수의 저서들 중 일부. 동물복지과학과 도덕, 윤리의 진화 등 동물 복지와 관련한 다양한 책을 남기고 있다. - 아마존 외 제공

> 동물복지과학은 무엇을 연구해 왔는가?
- 지난 30여 년 동안 동물행동학과 생리학, 면역학, 뇌과학 등을 통해 동물복지를 과학적 개념으로 가다듬어 왔다. 이를 통해 어떤 동물을 보호해야 할지를 결정해 왔다. 현재는 환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지능을 지닌 종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 특정 종을 더 보호해야 한다는 뜻인가?
- 그렇다. 복잡한 인지 능력을 갖춘 종만이 공포와 고통을 인식한다. 고통과 공포를 줄이는 게 동물복지의 핵심이기에, 이들을 다른 종보다 더 인도적으로 대할 근거가 있다.

 

> 특정 종이 복잡한 인지능력을 갖췄다는 건 어떻게 아는가?
- 그게 바로 동물복지과학에서 연구하는 주제다. 포경 논란의 주인공인 고래를 생각해 보자. 배를 타고 접근해 작살을 쏴서 잡는다. 동물행동학 연구 결과를 보면 고래는 보트 소리에 반응해 행동을 바꾼다. 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사람이 자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거다. 작살에 맞은 뒤에도 바로 죽지 않는데, 이 때 작살에 달린 끈이 격렬한 공포를 유발한다. 고래는 자신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잡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반응을 수집하고 분석해, 고래를 인도적인 방법으로 대해야 할 근거로 삼는다. 참고로, 현재의 포경 기술 중에는 인도적인 방식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 그래도 어떤 동물이 똑똑하니 더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딘가 불편하다.
- 정확히 이야기하면, ‘느낄 수 있는(sentient)’ 동물인지 여부다. 고통과 공포를 느끼는지가 핵심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다양한 지적 능력이 연구된다. 무의식이 있는가, 자아 개념을 인식하는가, 없는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는가, 전략을 세울 수 있는가 등. 흔히 똑똑하다고 일컫는 가치들이다.

 

브룸 교수의 연구 중 하나. 돼지가 거울에 비친 상을 이해하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뒤에, 완벽히 거울 속 공간을 이해했다고. - 도널드 브룸 제공
브룸 교수의 연구 중 하나. 돼지가 거울에 비친 상을 이해하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뒤에, 완벽히 거울 속 공간을 이해했다고. - 도널드 브룸 제공

> 사람들은 주변의 보통 큰 동물,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는 동물들을 함부로 다룰 때 더 큰 불편함을 느낀다.
- 몸이 크거나 이전부터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던 동물이 꼭 똑똑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큰 물고기의 입 속 기생충을 청소하는 청소놀래기를 보자. 늘 오는 손님 물고기가 있고 어쩌다 찾아온 손님이 있다면, 청소놀래기는 어쩌다 오는 손님을 먼저 청소한 뒤에 ‘단골’ 손님을 청소한다. 단골은 어차피 기다려준다는 걸 아는 거다. 비슷한 실험을 사람과 유인원, 카푸친원숭이, 앵무새 등을 대상으로 해봤는데, 사람에 이어 시행착오를 가장 덜 겪은 동물이 앵무새와 청소놀래기였다. 새와 물고기가 유인원보다 전략적인 셈이다. 이외에도 많다. 벌이나 개미 같은 사회성 곤충은 인지능력이 뛰어나고 새우는 몸 안에 통증을 느끼는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 동물복지과학의 연구 결과를 따른다면, 조류나 포유류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상 물고기까지 인도적인 방법으로 대해야 한다.

 

 > 그럼 아예 동물을 죽이지 말자고 주장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왜 굳이 동물복지인가.
- 동물을 죽여도 되는가는 윤리적인 질문으로, 동물복지와는 다른 주제다. 또 개인이 판단할 문제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는 육식을 하는데, 고기를 얻기 위해서 동물을 죽일 수도 있다는 입장인 셈이다. 물론 적절히 다룬다는 가정에서다. 또 만약 곡식창고가 있는데 쥐가 곡식을 먹고 있다고 해보자. 곡식은 꼭 지켜야 하고, 막을 방법은 쥐를 죽이는 것밖에 없다면 어떨까? 나는 이런 경우에도 죽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동물복지는 다르다. 동물이 이용되는 곳이라면 목적과 종에 상관없이 복지도 좋아야 한다. 만약 복지가 나쁘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영국에서는 인간도 감염될 수 있는 소 결핵이 유행이다. 오소리가 매개체로 꼽히는데, 이를 위해 제한된 구역에서 오소리를 사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오소리와 소의 접촉은 원래부터 매우 드물어 정책의 효용이 낮고, 밤에 사냥할 경우 오소리가 빗맞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곤 한다. 오소리의 동물복지 수준이 매우 낮은 셈이다. 더구나 그 지역의 오소리를 85% 이상 죽이지 않으면 오히려 감염된 오소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을 다시 생각하는 게 옳다.

 

> 동물복지라는 말에 아직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다른 시급한 일도 많다는 지적이다.
-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가 비슷하다. 하지만 동물복지는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축산업의 경우에도 동물을 다루고 나를 때 잘 대해주면 면역력이 좋아져 병에 걸리지 않는다. 이런 점을 잘 어필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영국에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인식이 많이 높아져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축산인 등 대부분의 사람이 동물복지가 옳은 길이라고 느끼고 있다. 교육도 활발하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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