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섹스와 젠더의 과학

2017년 08월 29일 10:30

대중 심리학은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는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 마시아 스테패닉,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미국의 월간 과학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매년 9월호를 한 가지 주제를 잡아 특집으로 꾸민다. 따라서 어떤 해에는 읽을 게 넘치지만 어떤 해에는 훑어보다 그냥 집어던지기도 한다. 올해 9월호 제목은 ‘섹스와 젠더의 새로운 과학’이다. 보통 섹스(sex)는 생물적 성을, 젠더(gender)는 사회문화적 성을 뜻한다. 이번 특집은 최근 수년 사이 과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섹스와 젠더에 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다루고 있다.


성, 즉 남녀의 차이는 너무 뻔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과학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진화심리학과 뇌과학이 다양한 측면에서 남녀에서 보이는 행동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남녀의 전형을 구축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몇 과학자들이 이런 설명들이 그다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연구결과를 속속 발표하면서 과연 우리가 남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특성들이 정말 그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번지점프는 위험을 감수하는 전형적인 수컷의 행동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남성이 사양하는 반면 많은 여성이 즐긴다. 즉 특정 위험 행동에 대한 선호도는 섹스가 아니라 개인차일 뿐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번지점프는 위험을 감수하는 전형적인 수컷의 행동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남성이 사양하는 반면 많은 여성이 즐긴다. 즉 특정 위험 행동에 대한 선호도는 섹스가 아니라 개인차일 뿐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남자는 바람둥이, 여자는 요조숙녀?


남녀 행동의 차이를 설명하며 ‘정당화한’ 일등공신은 진화생물학일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게 남자의 바람기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파트너가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에게로 눈이 돌아가는 건 남자의 마음이 진화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즉 남자는 정액만 투자하면 자기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지만 여자는 임신해 아이를 낳고 오랜 기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유전자를 고르기 위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실험들이 많은데 가장 노골적인 예로는 캠퍼스에서 남자 대학생에게 낯선 젊은 여성이 다가가 성관계를 제의할 경우 절반 이상이 응하는 반면 여자 대학생에게 낯선 젊은 남성이 다가가 성관계를 제의할 경우 100% 거절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호주 멜버른대의 과학철학자 코르델리아 파인과 진화생물학자 마크 엘가는 기고한 글에서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으로 ‘가벼운(casual)’ 성관계에 대한 남녀의 선호도 차이를 증명하는 건 넌센스라는 입장이다. 상대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폭력, 몰래카메라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거절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다.


지난 수십 년 사이 성관계에 대한 자기결정력이 커지고 피임이 쉬워지면서 혼전 성생활이 활발해졌고 특히 여성에서 성관계 파트너 수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젊은이이었던 한 세대 전만해도 이런 모습은 서구사회의 일이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일상이 됐다(유교문화 때문에 차마 고등학교에서 콘돔을 나눠주지는 않고 있지만). 결국 여성이 괜찮은 남편을 만날 때까지 ‘정숙하게’ 지내는 건 여성의 마음이 그렇게 진화한 게 아니라 그 여성이 속한 사회문화가 그렇게 요구한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한편 수년 전 화제가 된 일본의 ‘초식남’ 현상은 남성 가운데 상당수(대략 30%였던 걸로 기억한다)가 바람둥이 짓은 고사하고 여성에게 접근을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일본 현지 인터뷰에서 한 여성이 “남자가 대시를 해야지 연애를 하든 말든 하죠...”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씁쓰레 하던 표정이 기억난다.


남자는 모험심이 강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경향이 큰 반면(마음에 드는 짝을 차지하려는 동기에서 진화한 마음) 여자는 조심스럽고 겁이 많다는 것도 막상 근거가 약하다. 즉 위험을 무릅쓰려는 경향은 ‘특정한’ 위험에 대해 그런 것이지 위험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다. 즉 이는 개인의 성향일 뿐이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을 가서 낮에는 호기롭게 번지점프를 한 사람이 밤에는 도박장에서 혹시라도 잃을까봐 남이 하는 걸 구경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번지점프 같은 생물적인 위험조차 남자가 여자보다 더 대범한 건 아니다. 필자는 돈을 내는 게 아니라 받더라도 번지점프는 사양할 것이다. 즉 진화심리학이 정당화한 남녀심리의 상당 부분은 사실 섹스가 아니라 젠더에 기반한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최근의 연구결과다.

 

여성 최초이자 유일한 필즈상 수상자인 미국 스탠퍼드대의 수학자 마리암 미르자카니 교수가 지난 7월 14일 40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수학은 천재(소수 남성)의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었다면 56명의 필즈상 수상자 가운데 여성이 한 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 스탠퍼드대 제공
여성 최초이자 유일한 필즈상 수상자인 미국 스탠퍼드대의 수학자 마리암 미르자카니 교수가 지난 7월 14일 40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수학은 천재(소수 남성)의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었다면 56명의 필즈상 수상자 가운데 여성이 한 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 스탠퍼드대 제공

여성 필즈상 수상자가 한 명 뿐인 이유


남녀의 차이라는 고정관념의 대표적인 예인 ‘천재성’에 대한 글도 꽤 흥미롭다. 미국 뉴욕대의 심리학자 안드레이 심피언과 프린스턴대의 철학자 사라-제인 레슬리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천재는 소수 남성의 특성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많은 재능있는 여성들이 천재들의 학문이라고 여기는 분야에 뛰어들려는 용기를 잃게 되고 그 결과 그런 분야에 여성 비율이 낮은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대학생 때 ‘과학자가 되려고 하는데 천재가 아니라면 물리학은 절대 해서는 안 되고, 화학은 수재까지는 가능하고, 그것도 아니면 생물학 밖에 할 게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천재들의 학문이란 이런 식의 얘기로 자연계에서는 주로 수학과 물리학, 인문계서는 철학 같은 학문을 말한다.


21세기 들어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크게 늘어 많은 학과에서 여성의 비율이 50%를 넘었지만 공교롭게도 ‘천재들의 학문’에서는 여전히 남성의 비율이 꽤 높다. 글을 보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저자 두 사람 가운데 여학생이 70%가 넘는 심리학과의 교수인 심피언은 남성이고 30% 수준인 철학과의 교수인 레슬리는 여성이다. 두 사람은 수년 전 한 학회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다 우연히 이런 발견을 했다고 한다. 즉 심리학은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철학의 한 분과였고 실제 두 학문의 연구방법론이 여전히 매우 비슷함에도 어떻게 남녀 학생의 선호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어 그 원인을 추적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는 천재성은 남자의 특성이고 특정 학문이 천재들의 영역이라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주입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즉 여섯 살만 돼도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 비해 자기 성이 정말 똑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비율이 낮다고 한다. 그 결과 초등학교 저학년에 벌써 ‘수학은 남자의 공부’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수학이나 물리과학에 흥미가 있음에도 ‘재능도 없는데 괜히...’라는 생각에 지레 겁먹고 다른 분야로 발길을 돌리는 여학생이 많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 캐롤 드웩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궁극적인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즉 자기 능력을 정해진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고정된 사고방식)은 흥미를 억누르고 실수를 피하려는 경향이 큰 반면, 현재 능력이 발달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성장하는 사고방식)은 흥미를 추구하고 더 많이 노력해 결국은 더 큰 성취를 이룬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21세기가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천재성은 소수 남성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고정된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따라서 사회문화적으로 천재성을 너무 부각하지 않는 게(과학 분야의 예를 들면 경우 아인슈타인의 신격화) 재능 있는 여학생들이 이런 선입견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수면제 졸피뎀은 2013년부터 남녀용이 따로 만들어지고 있다. 여성용 알약(위)은 5mg이고 남성용 알약(아래)은 10mg이다. 여성의 경우 약물의 대사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최근 의학연구에 섹스의 차이를 반영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수면제 졸피뎀은 2013년부터 남녀용이 따로 만들어지고 있다. 여성용 알약(위)은 5mg이고 남성용 알약(아래)은 10mg이다. 여성의 경우 약물의 대사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최근 의학연구에 섹스의 차이를 반영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섹스를 무시해온 의학계


이처럼 젠더의 문제를 섹스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큰 반면 정작 섹스의 문제는 둔감해 무시하곤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마시아 스테패닉 교수는 이런 대표적인 예로 의학을 들고 있다. 즉 남녀의 생리적인 차이가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치료나 처방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특히 약물복용에서 심각한데,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약물이 수컷(동물실험)과 남성(임상시험)을 대상으로 테스트 한 결과를 바탕으로 승인이 되고 용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중, 근육 및 체지방 비율, 호르몬의 조성이 남성과 꽤 다른 여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약물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가 50~70% 더 많다.


대표적인 예가 수면제인 졸피뎀(Zolpidem)으로 많은 여성들이 다음날 오전에도 운전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정신이 흐릿하다는 부작용을 호소했다. 결국 미국 식약처(FDA)는 전면적인 재조사에 들어갔고 여성이 이 약물을 대사하는 속도가 남성에 비해 꽤 느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FDA는 여성의 경우 복용량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게 했다.


스테패닉 교수는 “2016년 미국립보건원(NIH)은 성별(sex)을 생물적 변수로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제 의학에서 섹스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래저래 과학에서도 젠더와 섹스가 제대로 정립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