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의 목소리 (18ㆍ마지막회)] 한국 이공계 대학원의 선진화를 위해

2017년 08월 27일 14:00

구본경(케임브리지 줄기세포연구소 그룹리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유전학과 소속)

 

김명호 작가 제공
김명호 작가 제공

대한민국 과학기술계 선진화의 길목에서


가파르게 성장해 온 한국 과학기술계에서 선진화를 향한 움직임이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양적 성장을 탈피하고 질적인 성장을 통해 선진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재 들리는 학계의 다양한 목소리는 매우 환영할 부분입니다. 이공계 선진화관련한 여러가지 주제 중에 공정한 연구비 심사와 배분, 신진과학자의 양성, 공동기술지원실 (Core Facility)의 확충 등에 많은 분들의 목소리가 실리고 있고, 조만간 적절한 정책적인 반영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ㆍ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위의 세가지 주제 모두 연구책임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며, 아직까지 논의의 초점은 돈과 하드웨어에 집중되는 듯 합니다. 여전히 활발한 논의의 중심에 있지 않지만, 저는 실질적으로 우리 과학계를 움직이는 근간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생들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화의 길목에 서 있는 우리 과학계가 어떠한 비전을 이들 학문후속세대에게 제시하고 이들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을지를 다양한 분들과 함께했던 토론을 바탕으로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어떤 생각에 기초해서 대학원생 문제를 조금씩 풀어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한국대학원이 처한 문제들


대학원은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학문적 소양을 넓히는 공간이지만, 학계에 남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단계이며, 사회 각분야의 지도층이 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대학원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으로만 인식이 되어 왔기 때문에 대학원생이 바랄 수 있는 지원은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는 장학금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사제간의 관계가 졸업과 향후 취업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피라미드식 운영체제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만이 아니라 주요 과학선진국에서도 직면했고 또 직면하고 있는 공통된 문제입니다.


과학계는 국제적으로도 지나치게 경쟁이 심화되어, 결과적으로 국제학술지에 출판을 해서 졸업을 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필요해졌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석-박사통합과정으로 6~7년이나 소요된다고 하니, 오늘날 대학원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20대의 대부분을 고등교육에 소비를 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인고의 시간이 안정성이 높거나 고수익성인 직장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기회비용으로 인식이 되었지만, 현재는 과학계의 안정적인 직장도 포화된 상태이며 산업계에서도 더 이상 박사학위가 고수익의 보증수표가 아닙니다. 이러한 과학계의 경제구조적인 문제점이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 중에 하나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와 더불어 피라미드식 운영체제는 사제간의 갑-을 관계를 더욱 고착화 시켰으며, 여전히 일부에서는 비상식적인 노동력 착취, 언어 폭행, 성추행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기회비용과 더불어  비상식적 관례에 대한 소문은 이공계 꿈나무들이 이 나라의 학문후속세대로 자라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5~6년 이내에 닥쳐올 인구절벽은 사회 각 분야간에 인재유치경쟁이 갈수록 심화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목도하고 있는 교수 대 대학원생의 대립각은 사실 단순한 계층 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부족한 인적자원을 극복하고 선진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과학계 전체가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이공계 기피현상 때문에 치-의-약학계열로 상당수의 인력유출을 경험한 생명과학계는 특히, 2차의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인식을 어떻게 전환하는 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사회에는 항상 과학자/공학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있으며, 우리 사회도 지속적인  발전의 원동력으로 과학기술을 지목하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부 및 기업의 과제 수행을 위해서 외국 학생을 유치해야 할 만큼 대학원생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산업계에서도 기회비용을 단기간에 반전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박사급 연구원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급가능인력과 수요가 여전히 맞는 지금이 어쩌면 인구절벽에 앞서, 공급가능인력이 직면해야 하는 여러가지 문제 (대학원의 기간, 경제적 기회비용, 그리고 비상식적인 관행의 일상화)를 논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원생은 누구인가?


한국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교수/연구책임자는 위에 나열한 시스템적인 문제에 대부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연구비를 주는 정부와 승진심사를 하는 학교/기관에서 심각한 성과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원생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을 하지만, 극심한 성과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실제적으로 각 실험실이 개선을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어 버리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 연구자의 경우, 같은 금액의 연구비로는 대학원생 숫자를 줄여서 대학원생 개개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늘리는 것이 개인적으로 취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성과압박의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입니다. 현재까지도 대학원생들에게 등록금과 소액의 생활비 이외에 추가적인 지원이 왜 필요한 가에 대한 과학계 구성원들간의 의견 차이도 매우 큽니다. 경제적 지원을 늘려달라고 하면, ‘대학원생은 공부를 하러 온 것이지, 돈을 벌러 온 것이 아니다.’, ‘돈을 벌고자 하면, 노력해서 회사에 가라.’라고 하는 논리가 여기저기 퍼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학원생은 단순한 학생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고 실험을 해야 합니다. 제안하는 사고 실험은 ‘대학원생이 없다면 교수와 연구책임자들은 어떻게 연구를 수행할 것인가?’입니다. 대부분의 이공계 실험실에는 연구를 위한 인력이 필요합니다. 대학원생이 없다면 석-박사급 연구인력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대학원생은 이공계의 연구 ’대체’ 인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며, 공식적으로는 학생 신분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연구원과 다름없는 노동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대학원생이 받는 경제적인 지원은 등록금과 생활비 지원을 합하더라도, 석사연구원이 받는 인건비에 대부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석사 이상의 경력자이면서도 석사연구인력보다 저렴한 연구대체인력인 실정이고, 이 때문에 한국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저렴한 지원을 받는  대학원생이, 실험실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부작용을 낳아 학생 당 지도교수의 지도시간이 줄어들게 되었고, 방임된 대학원생의 학위기간은 늘어났으며, 또한 과학계 전체로 확대해 보면 필요 이상으로 박사과정을 계속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 대학원생은 어려운 학위기간의 대부분을 홀로 고군분투하게 되고, 늘어진 학위기간을 통해서 지치게 되며, 무리하게 양산된 박사들은 사회에 나아가 한정된 직장을 놓고 무한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석사연구원보다 저렴한 대체인력인 박사과정대학원생. 여전히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우리 과학기술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하는 단계에 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대학원생 한 명에게 투자하는 지도시간과 경제적인 지원을 늘리고, 과학계 전체에서 배출하는 대학원생의 숫자와 사회의 수요를 잘 조절하여, 20대의 젊음이라는 큰 기회비용을 바치는 우리의 학문후속세대에게 적절한 경제적ㆍ학문적 지원을 하는 것이 선배 학문세대가 노력할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학원생의 세 가지 기본권리


대학원생은 학생이자 석-박사연구원의 대체 인력이라는 관점에서, 대학원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권 - 대학원생은 교육을 받는 자로서, 인격체로 대우 받을 권리가 있다.


대학원생의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되도록 줄이고자 학교 내 인권단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또한 옴부즈만과 같은 직책을 학교에 신설하여, 교수-학생 간의 갈등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팀을 운영하는 것이 토의되고 있습니다. 학교 내에서 대학원생의 권리와 교수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교육하는 것도 예전부터 강조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에 대한 노력이 계속 되고 구체적인 실천방향이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권 - 대학원생은 노동을 제공하는 자로서,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석사연구원과 박사연구원이 받는 노동의 대가의 중간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금액은 ‘등록금 + 최소생계비’에 해당할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등록금이 높아 연구책임자가 지원을 하기에 무리가 많이 가는 학교는 시스템의 개선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 정부-학교-교수 3자간의 논의가 필요할 듯 합니다.


환경권 - 대학원생은 교육을 받으면서 노동을 제공하는 자로서, 안전한 환경에서 연구와 학업에 집중할 권리가 있다.


이공계 대학원은 이미 정부와 기업의 과제를 수행하는 사업장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기업의 노동환경에 준하는 안전한 노동환경을 교육기관에도 의무시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이 단순한 교육기관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라도 안전한 노동환경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일상적인 안전관리와 안전사고 시 대학원생이 받을 수 있는 보험은 기초적으로 갖추어야하는 부분이며, 나아가 업무의 종류에 따라 특정 건강검진을 제공하는 것 또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학원에서의 정의와 동료정신


위에 나열한 대학원생의 기본3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큰 비용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약자층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대학원생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가에 대해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학계가 노력을 해야합니다. 또한 학교나 연구소에서 ‘갑’으로 인식되는 교수나 연구책임자도 정부나 기업에서 연구비를 수주해서 연구를 수행하는 ‘을’이기 때문에, 위에 제시된 문제를 교수나 연구책임자 개인이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대학원생에 대한 인식을 논의를 통해 바꿔 나가는 동시에, 학계 전체가 함께 노력을 하여 시스템이 바뀔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대학원 시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일한 사회적 상황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각각 어떠한 논리적 근거를 통해서 정당화되고 ‘정의’로 포장이 되는지를 잘 보여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한 사회가 ‘정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정의’라는 가치는 구성원 모두가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서 구현하는 ‘움직이는 가치’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80~90년대 양적성장세 속에서 대학원을 움직여온 ‘정의’와 21세기 선진화를 앞둔 2017년 한국 대학원에서의 ‘정의’는 동일하게 정의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예전의 정당화 논리를 탈피하고, 우리 과학기술계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논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피라미드식 계층구조를 타파하고자 일어섰던 프랑스인들은 ‘자유’, ‘평등’, ‘동료애’를 외쳤습니다. (‘동료애’ 대신에 ‘박애’라고 하는 것은 오역이라고 합니다.). 자유로운 연구와 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추구하는 한국의  이공계는 선진화를 향한 개혁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료애’를 한 번 더 새겨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공계의 개혁을 위해서는 교수 대 학생의 대립구도는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학생의 입장은 교수진이 정부와 사회에 대변해 줄 수 있으며, 교수의 연구와 비전은 학생들이 반드시 함께 해 주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과학기술계라는 공동체에 몸을 담고 있으며, 공동체로서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과학기술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생 3권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는 교수진의 공감이 필수적이며, 이는 또한 과학계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합니다. 한국의 대학원이 20대의 젊음을 투자하여 배고픔과 설움 없이 학문을 하는 즐거움을 배우는 멋진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이러한 계층을 탈피한 학문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가는 ESC에서 대학원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이 매우 뜻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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