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19] 맛집: 비결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는 곳

2017년 08월 26일 18:00

점심때만 영업하는 ‘ㅁㄹ손칼국수’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었다. 정오를 기준으로 일찍 가거나 늦게 가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기에 그 시간을 택했다. 다행히 단 하나 남은 테이블을 주인 할머니께서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수육+문어숙회(大) 한 접시와 칼국수 세 그릇, 소주 한 병을 주문하니 밑반찬 두 가지가 먼저 테이블에 놓였다. 작고 오목한 사기 접시에 담긴 푸릇한 마늘종, 겉절이처럼 칼질한 배추김치가 그것이었다. 함께 녹차 잔만한 간장종지 두 개에 초고추장과 간장이 각각 놓였다. 큰 주전자 속에서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오랜만에 마셔보는 냉보리차는 시원하고 구수했다. 입을 헹구자 저절로 마늘종에 젓가락이 갔다. 초고추장을 찍어 입에 넣으니 단단한 섬유질에서 배어나온 풋풋하고 매콤한 향이 입안에 번졌다. 새콤한 초고추장은 직접 만든 게 틀림없었다, 달지 않았으므로! 포기김치가 아닌, 막 썰어 발효시킨 배추김치에는 모양이 제각각인 깍두기가 섞여 있었다. 생새우와 새우젓만으로 담갔는지 무척 시원했다.

 

GIB 제공
GIB 제공

두 번째 소주잔이 채워지자 따끈한 소고기 수육과 문어숙회가 먼저 나왔다. 양지 살코기로만 삶은 수육은 두툼한 두부처럼 크게 썰려 있어서 한입에 먹기엔 부담스러웠고, 문어숙회 역시 얇게 저민 지름이 안경알만 했다. 공통점은 부드러움. 수육은 젓가락만 대어도 결 따라 찢어졌고 문어숙회는 날고기인 양 야들야들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담백함. 둘 다 잡내가 전혀 없었다. 수육과 문어숙회를 절반쯤 비웠을 때, 오목한 일본식 사기그릇에 담겨 나온 칼국수 또한 일품이었다. 굵은 면발과 소고기 고명을 얹은 양념장이 전부인 칼국수의 육수는 고깃국과 문어 데친 국물을 섞은 듯 꽤 진하고도 개운했다. 당일 만든 반죽을 밀어 칼로 썬 면발은 굵기가 제각기여서 그야말로 ‘칼’국수였다. (기계로 뽑은 칼국수와 비교하려고 흔히 쓰는 ‘손칼국수’는 마치 ‘역전 앞’이나 ‘서해 바다’처럼 동어반복이다.)


입맛이란 주관적이기에 맛있는 음식의 절대성은 없다.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먹어본 북한 음식은 하나같이 슴슴했고, 자극적이지 않은 그 맛은 나의 외가가 있는 충북의 시골 음식 맛과 유사했다. 호남과 충남 서해 지역 음식 맛은 양념을 많이 써서 진한 반면, 영남 지역 음식 맛은 간결한 만큼 간도 셌고 비교적 매웠다. 그러니 지역마다 인기 있는 맛집은 지역민에게 익숙한 입맛이 척도가 될 테다. 그럼에도 내가 가본 맛집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음식 맛을 내는 비결은 서로 달라도 말이다. 식사 때에는 방문객이 줄을 서는 것부터 시작해, 내가 본 그 공통점은 이렇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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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맛집의 분위기는 간판에서부터 느껴진다. 맛집은 그 유명세가 보통 이삼십 년쯤 되었기에 상호를 써놓은 간판은 구식일뿐더러 낡았다. 간판 형식도 요란하거나 크지 않다. 애써 존재를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호 또한 멋 부리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지역명을 접두어로 삼거나 대표 음식을 상호로 삼는 경우가 많다.


둘째, 차림표가 간단하다. 인기 있는 한두 가지 대표 음식이 그리워 입맛을 다시며 손님이 몰리기에 주인장이 준비할 음식 가짓수가 많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은 각각의 메뉴판을 테이블에 내놓지 않고 벽면 한쪽에 메뉴를 몇 줄 써놓은 게 전부다.


셋째, 준비한 만큼만 손님을 받는다. 맛집은 식재료 구입부터 엄선하기 마련이다. 일관된 맛을 내려면 식재료의 품질이 한결같아야 할 것이고 조리 방법도 그럴 것이기에 식재료의 양도 늘 정해져 있을 것이다. 손님 수도 들쑥날쑥하지 않을 테니 하루에 준비할 양을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일 준비한 재료를 당일 소진하니 음식은 당연히 신선할 것이다. 식재료 품절과 함께 영업 종료하니 주인장은 일에 덜 지칠 것이다.


넷째, 당당하지만 거만하지 않다. 그것은 손님에게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자존감이다. 재료비 대비 이윤을 고려해 최선을 다해 만들었을 테니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손님들이 맛있어 할 때 기쁘고 보람 있을 것이다. 손님 덕에 생활하는 것이니 고마움도 느낄 것이다. 그런 곳일수록 언론사의 맛집 취재 요청에도 불편해 하거나 거절한다고 한다. 돈벌이만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맛집은 그 위치가 외진 곳이어도 맛 자체에 이끌려 손님들은 기꺼이 찾아간다. 비유하자면 맛집은 벌 나비가 아니라 꽃이다. 멀리서도 손님이 맛집의 향기를 맡고 찾아오니 말이다. 그때, 손님의 입맛은 살맛 난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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