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우유는 누가 다 먹을까

2013.08.12 18:00

  최근 우유 값 인상을 둘러싼 해프닝은 그렇잖아도 더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부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목장에서 사 들이는 원유 가격이 올라(리터당 106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우유업계는 소비자가격을 250원이나 올렸다. 그런데 한 대형마트가 가격 인상을 따르지 않자 가격을 올렸던 다른 업체들도 곧바로 가격을 원상복귀하면서 우유업계가 가격 인상을 없었던 일로 하면서 한 발 뺀 것이다. 우려했던 대형마트 유제품 판매대에 우유가 없어지는 사태를 면하기는 한 것이다.

 

  생산업체들은 정부보다 대형마트들이 갑(甲)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상징적인 사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 눈치를 보는 대형마트(최근 이런 저런 약점을 잡힌)의 을(乙) 전략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원유가 인상으로 적자에 시달린다는 업계의 입장도 계속 묵살할 수 없기 때문에 인상폭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우유 소비량은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연간 1인당 27리터. 많아 보이지만 1년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100밀리리터도 안 된다. 거의 매일 우유 한 잔을 마시는 필자는 평균의 두 배는 마시는 셈이다.

 

●젖당불내증이라도 한 잔은 문제없어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완전식품이라는 우유를 마시면서도 ‘과연 이게 몸에 좋은 걸까?’라는 의문이 가끔 떠오른다. 예전 한 일본인 의사가 우유가 몸에 해롭다는 주장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이가 아직 나지 않아 고형 음식을 먹을 수 없는 포유류 새끼를 위해 진화한 젖을 다 큰 성체가 먹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쉽게 말하면 송아지도 아닌데 왜 소 젖을 먹느냐는 얘기다.

 

  그 의사의 참신한 발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필자는 한동안 우유를 안 마셨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식으로 따지면 밥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즉 인류가 쌀이나 밀 같은 곡식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건 불과 1만 년도 안 되므로 어른이 젖을 먹는 거나 밥을 먹는 거나 어차피 진화적으로는 몸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업의 발명으로 곡물을 먹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건강을 망쳤다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튼 진화적으로 적합한 고기를 즐기지 않는 필자로서는 어차피 진화적으로 부적응 상태이므로 다시 우유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어찌보면 그 일본 의사의 주장대로 정말 어른들은 우유를 먹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우유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유에 들어있는 젖당(lactose)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젖에는 젖당의 형태로 탄수화물이 들어있는데, 사람젖에는 젖당 함량이 9% 정도, 소젖에는 5% 정도다.

 

  젖당은 단당류인 포도당 한 분자와 갈락토오스 한 분자가 결합된 이당류다. 우리가 매일 먹는 설탕 역시 이당류로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뤄져 있다. 참고로 맥주나 식혜에 들어있는 맥아당은 포도당 두 분자가 결합한 이당류다. 그런데 설탕이나 맥아당과는 달리 젖당은 동물, 그 중 포유류의 젖에만 들어있다. 젖샘에서 젖당이 만들어지는데, 먼저 포도당이 갈락토오스로 바뀐 뒤 이게 다른 포도당과 결합해 젖당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젖당은 그 자체로는 소화관에서 흡수가 되지 않고 다시 포도당과 갈락토오스로 분해돼야 한다. 십이지장에서 분비되는 소화액에 들어있는 젖당분해효소(lactase)가 이 일을 한다.

 

  그런데 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 때에는 젖당분해효소의 유전자가 활발하게 작동하지만 점차 발현양이 떨어지다가 7~8세가 되면 발현이 거의 멈춘다. 이는 다른 포유류도 마찬가지로 젖당분해효소 발현 패턴은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자연선택의 놀라운 힘을 잘 보여주는 예로 꼽힌다.

 

  아무튼 어른은 구조적으로 젖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게 디자인돼 있고 이를 무시하고 우유를 마시면 젖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라는 증상을 보인다. 즉 우유를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부글부글 끓고 복통과 설사 때로는 구토를 하기도 한다. 반복되면 염증성장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이 흡수를 못하면 그냥 통과해 변에 섞여 빠져나갈 텐데 왜 이럴까 싶지만 이유는 젖당을 분해하는 장내미생물 때문이다. 이 녀석들은 젖당을 소화하며 수소와 이산화탄소, 메탄을 다량 내놓는다.

 

  그렇다면 마트에 잔뜩 있는 그 많은 우유는 도대체 누가 먹는 걸까.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90%가 젖당불내증이다. 필자도 말 그대로 ‘십중팔구’ 젖당불내증일 텐데 매일 우유 한 잔을 마셔도 별 탈이 없다.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에서 우유 한 잔 정도로는 젖당불내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우유 200밀리리터에 젖당이 10그램도 채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인 99%가 젖당 소화시켜

 

젖당분해효소지속성을 지닌 사람의 비율 분포를 나타낸 지도. 유럽과 서아프리카, 중동, 서인도 지역에서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서아프리카는 다른 지역과는 독립적으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지속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이 2006년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10%대로 낮은 편이지만 과거 북방계 유목민을 통해 변이 유전자가 전달됐음을 시사하는 데이터가 아닐까 - 네이처 제공
젖당분해효소지속성을 지닌 사람의 비율 분포를 나타낸 지도. 유럽과 서아프리카, 중동, 서인도 지역에서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서아프리카는 다른 지역과는 독립적으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지속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이 2006년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10%대로 낮은 편이지만 과거 북방계 유목민을 통해 변이 유전자가 전달됐음을 시사하는 데이터가 아닐까 - 네이처 제공

 

 

 젖당불내증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우리로서는 실제 그렇다) 만약 우유가 주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루에 우유를 1리터씩 마셔야 한다면, 즉 젖당 50그램이 몸에 들어온다면 젖당불내증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한 사람이 매일 이정도로 우유를 마시는 나라가 꽤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1년에 361리터, 네덜란드 사람은 320리터, 프랑스인은 260리터, 미국인도 254리터나 된다. 우리나라와는 단위가 다르다.

 

  보다시피 주로 유럽과 북미 사람들이 엄청나게 우유를 마셔댄다. 이들이 이럴 수 있는 건 젖당분해효소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 나이가 들어도 계속 효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부분에서 염기 하나가 시토신(C)에서 티민(T)으로 바뀐 결과다. 사실 젖당분해효소 유전자 변이는 환경(구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이 인류의 유전자를 바꿔놓은 가장 유명한 예인데, 대다수가 이런 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유럽과 북미(백인) 사람들은 그 과정이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학술지 ‘네이처’ 8월 1일자에는 ‘우유 혁명(The milk revolution)’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젖당분해효소지속성(lactase persistence) 획득 과정을 재구성한 심층뉴스가 실렸는데 남의 얘기이지만 꽤 재미있다.

 

  글에 따르면 1만 1000년~1만 년 전 중동지역에서 농업이 시작되면서 가축화도 함께 진행했고 이때 소나 양 같은 동물에서 젖을 얻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모두 젖당불내증이었으므로 젖 자체는 많이 먹지 못했고 주로 치즈나 요거트, 버터를 만들어먹었다는 것.

 

  농업기술을 가진 신석기인들은 점차 세력을 넓혀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는데 약 7500년 전 오늘날 헝가리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유전자 변이로 젖당분해효소지속성을 가진 인류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천 년 만에 이 변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이 지역의 주류가 된 것이다.

 

  우유를 많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자연선택에서 이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놀라운 일로, 실제로 인간게놈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어떤 유전자의 변이도 이렇게 강력한 선택압을 보인 예가 없다고 한다.

 

  계산결과 젖당분해효소지속성을 획득하면 생식력(자손의 수)이 최대 19%까지 더 늘어난다고 한다. 19%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1000명 가운데 10명(1%)이 지속성 변이일 경우 10세대 뒤에는 1000명 가운데 54명, 20세대 뒤에는 244명, 30세대 뒤에는 650명이 변이형이다(상황을 단순화해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다). 실제 유럽에서 젖당분해효소지속성인 사람들의 비율을 보면 네덜란드가 99%, 스위스가 90%, 러시아가 84%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10%대, 중국은 5%, 북미원주민은 0%다.

 

  현재 지구 전체로 보면 셋 중 한 사람이 젖당분해효소지속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글을 보면 젖당불내증일 경우 우유 반 파인트(pint, 1파인트는 0.57리터), 즉 300밀리리터 정도를 마시면 설사를 비롯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왠지 이 정도는 좀 애매할 것 같고 한 500밀리리터 정도는 마셔야 확실할 것 같다. 우유 먹고 배탈이 난 기억이 없는 필자는 10% 확률의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기에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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