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운동의 본거지, 미국 메이커 스페이스를 가다

2017.08.22 18:05

※ 편집자 주 

기자는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7일까지 플로우교육이 주관하는 ‘실리콘밸리 미래인재캠프’에 동행해 24명의 청소년들과 같은 일정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 일대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스스로 만들고 도전하고 즐기는 미래 인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메이커 문화다. 메이커 문화의 산실이자 온상이라 할 미국 내 메이커 공간의 속살을 소개한다.  

 

‘차고 문화가 있는 곳’

 

미국이 ‘메이커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차고 문화’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공동 주택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미국 사람들은 차고나 창고가 딸린 주택에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 차고에서 여러 가지 공구를 활용해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고쳐보고, 분해해보고, 만들어보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대부분 주거지 근처에 사진과 같은 차고나 창고와 같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전문가들은 주로 이곳에서 메이커 문화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 GIB 제공
미국은 대부분 주거지에 사진과 같은 차고나 창고와 같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전문가들은 주로 이곳에서 메이커 문화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 GIB 제공

● 메이커 운동이 시작된 곳에 가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세계적인 ICT 기업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메이커 무브먼트(활동)’를 소개하는 숱한 영상 속 배경도 대부분 이곳 샌프란시스코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테크숍을 찾았다. - 염지현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테크숍을 찾았다. - 염지현 제공

맨 먼저 ‘테크숍(TechShop)’ 샌프란시스코 지점을 찾았다. 테크숍은 창업자 짐 뉴튼이 2006년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조금 남쪽에 위치한 멘로파크에 처음 열었다. 현재는 테크숍이 태동한 캘리포니아주에 3곳을 포함, 전체 8개의 주(뉴욕 지점 오픈 준비 중) 1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테크숍은  하루 30달러, 또는 한달 125달러만 내면 각종 제조 기구와 도구는 물론, 3D 프린터, 재봉틀, 각종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고, 넓은 작업 공간을 활용하며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사실 공간 규모나 사용료, 갖추고 있는 장비의 수준을 놓고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여느 메이커 스페이스와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메이커 스페이스에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 걸까?

 

1)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방학 기간을 이용해 메이커 스페이스를 이용하고 있는 미국 청소년들 모습. 사진에 보이는 친구들은 레이저 커팅기를 이용한 벽걸이 시계 만들기가 한 - 염지현 제공
방학 기간을 이용해 메이커 스페이스를 이용하고 있는 미국 청소년들 모습. 사진에 보이는 친구들은 레이저 커팅기를 이용한 벽걸이 시계 만들기에 한창이다. - 염지현 제공


기자가 테크숍을 찾았을 때는 방학 시즌이어서 그런지 테크숍에서 청소년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배우고 있는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아두이노나 3D 프린팅에 관한 것이었다. 프로그램이 특별하진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 청소년은 물론, 나이 지긋하게 드신 동네 어르신들도 함께 같은 시설을 이용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한국에서 온 24명의 청소년들에게 거의 1시간 가까이 테크숍을 소개해준 테크숍 스탭 키이스(Keith). 그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을 프로메이커라고 소개하며, 메이커 운동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 염지현 제공
한국에서 온 24명의 청소년들에게 거의 1시간 가까이 테크숍을 소개해준 테크숍 스탭 키이스(Keith). 그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을 프로메이커라고 소개하며, 메이커 운동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 염지현 제공


각자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청소년들이 메이커 활동을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혼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기구가 있을 때 스스럼없이 다가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 공간 안에서는 나이는 결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상주하고 있는 스탭들도 젊은 사람도 있었지만, 기자와 한국 청소년을 맞이한 키이스(Keith)도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프로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스탭이었다.  

 

2) 밤 12시까지 열려있어


테크숍의 운영시간은 지점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공휴일을 제외하고 대부분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메이커 스페이스가 대부분 오후 5-6시 경 문을 닫는 것과 비교했을 때 가장 부러운 점이다.

 

테크숍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자정까지 운영하고 있다. - 염지현 제공
테크숍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자정까지 운영하고 있다. - 염지현 제공

왜냐하면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후 5-6시에 문을 닫는 메이커 스페이스는 평범한 학생이나 직장인이 평일에 자주 방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마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 원하는 시간에 영화관을 방문하는 것처럼, 만들고 싶은 제품이 있을 때 원하는 시간에 테크숍을 방문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3)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나


테크숍에 처음 방문한 사람은 30~40분 동안 직원과 함께 테크숍 투어를 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간단한 안전교육과 함께 누구든지 테크숍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이번주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던 두 중년의 남성은 티셔츠에 그림을 인쇄하는 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 염지현 제공
이번주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던 두 중년의 남성은 티셔츠에 그림을 인쇄하는 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 염지현 제공

공간에 모인 사람들끼리는 간단한 안부는 물론, 자신의 창업 아이디어나 제품 제작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하며 자신이 경험한 실패의 순간을 나눠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주저없이 질문하는 모습이었다. 그 질문을 들은 사람은 질문한 사람이 누구든 기꺼이 대화에 응했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듯 보였다.


● 과학 박물관 안에서도 돋보이던 메이커 스페이스

 

테크숍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의 과학관으로 잘 알려진 ‘익스플로라토리움’을 찾았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관심 분야인 ‘수학 전시관’을 중점적으로 둘러봤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과학관에선 볼 수 없는,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을 발견했다. 바로 과학관 전시물을 만드는 곳, ‘메이커 스페이스’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과학관으로 잘 알려진 ‘익스플로라토리움’ 안에는 관람객이 지나다니며 모두 볼 수 있는 전시관 한 켠에, 과학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체험 기구나 교구, 전시물을 직접 만드는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이 있다. - 염지현 제공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과학관으로 잘 알려진 ‘익스플로라토리움’ 안에는 관람객이 지나다니며 모두 볼 수 있는 전시관 한 켠에, 과학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체험 기구나 교구, 전시물을 직접 만드는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이 있다. - 염지현 제공

이곳은 과학관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위 사진처럼 뻥 뚫린 공간으로 과학관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관계자 말에 따르면 과학관 전시관 내에 새로운 체험 기구나 전시물을 설치할 때,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 설치한 다음, 관람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한다고 했다. 주로 청소년 관람객이 많은데, 학생들이 메이커(기구 제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받아들이는지, 어느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는지, 어려운 과학 또는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전시물이 만들어지는 메이커스페이스라는 안내문이 인상적이다. - 염지현 제공
전시물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라는 안내문이 인상적이었다. - 염지현 제공

이 공간 앞에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전시물이 만들어 지는 곳’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내부를 들여다 보니 흔히 보던 메이커 스페이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관람객이 방문을 하는 시간에도 메이커들은 다음에 선보일 새 기구를 만들고 있었다. 

 

● 대학 내 공간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대학 내 메이커 스페이스를 찾았다. UC버클리대 안에 마련된 메이커 스페이스다. 등록 안 된 외부인에게 열린 공간은 아니었지만, 운좋게 ‘실리콘밸리 미래인재캠프’를 통해 만난 UC버클리대 기계공학과 임다현 박사과정 학생과 함께 방문할 수 있었다.

 

UC버클리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임다현 학생. 자신이 교내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직접 만든 로봇 손과 안전모를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 염지현 제공
UC버클리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임다현 학생. 자신이 교내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직접 만든 로봇 손과 친구가 만든 안전모를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 염지현 제공

“미국에 와서 제일 좋았던 점은 ‘만들고 싶은 무언가’가 떠올랐을 때 어디로 달려가면 되는지 제가 알고 있다는 거였어요. 요즘 한국 대학에도 메이커 스페이스가 잘 갖춰져 있다고는 하는데, 여긴 조금 더 개방적이에요.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전공이 다른 같은 학교 학생은 물론 근처의 초등학교를 다니는 초등학생, 주변에 살고 있는 아마추어, 프로 메이커들도 자주 와요. 저 역시 종종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만드는 작품과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일도 많아요.
이 작품은 제가 3D 프린터로 인쇄해서 만든 로봇 팔이에요. 또 이 작품은 친구가 만든 안전모인데, 안전모에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를 달았어요. 무거운 물건이나 부피가 큰 위험한 건설 장비를 운반할 때 다른 사람이 근처에 있거나, 위험이 감지될 때 알람이 울려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둘러본 메이커 스페이스는 대부분 곳곳에 메이커들의 손 떼가 묻어있었다. - 염지현 제공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둘러본 메이커 스페이스는 대부분 곳곳에 메이커들의 손 떼가 묻어있었다. - 염지현 제공

메이커의 본거지인 이곳에서 만난 어떤 메이커가 말하길 “‘진짜’ 메이커 스페이스는 적당히 더러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작품(또는 제품)을 만들다 보면 사용했던 온갖 기구가 주변에 널브러져있고, 곳곳에 순간순간 떠오른 아이디어가 적힌 메모가 널려있고 책상 주변에는 만들었다 실패한 시제품들이 줄지어 있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한편, 우리나라 메이커 스페이스는 대부분 지나치게 깨끗한 곳이 많다. 취재 차 들른 몇몇 군데의 공간에서는 고가의 장비가 고장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관리자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메이커를 키워내고 싶다면,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오래 불이 켜진 공간’이 필요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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