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18] 국수집: 입맛이 자리 잡는 곳

2017년 08월 19일 17:30

비 오는 날은 점심식사 시간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날씨 탓에 직원들의 입맛이 국수집으로 향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인근 다른 직장인들도 그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자칫 늑장을 부리다가는 그 몇 배의 시간을 국수집 문 앞에서 대기해야 하거나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무더운 날도 마찬가지다. 냉면집은 물론이고 매콤짭짤한 양념 셔벗(sherbet)이 덮인 물회에 말아 먹는 소면은 금세 배 속을 냉장고로 만들어버리기에 한낮의 근로자 입맛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신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도토리묵을 길게 칼질해 육수에 띄우고는 한가운데에 누룽지처럼 구수한 메밀국수를 똬리 틀어놓은 막국수는 또 어떤가. 민통선 장단 콩을 곱게 갈아 냉장시킨 걸쭉한 콩 국물로 그릇의 절반을 채워 칼국수 면을 백사장으로 만든 콩국수는 고소한 영양식이니 두 말할 필요 없다.

 

국수집 - 윤병무 제공
국수집 - 윤병무 제공

동북아시아인들만큼 국수를 좋아하는 인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민족을 비롯한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은 면(麵)을 좋아한다. 물론 국수의 대표적인 재료인 밀은 중국을 통해 들어와 일본 열도로 건너갔다. 그 역사의 원천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기원전 7000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되던 야생종 밀이 기원전 1~2세기경에 서아시아로 연결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그 밀로 처음에는 수제비 형태로 만들어 먹다가 가늘고 긴 형태의 면발로 만들어 먹었던 것은 후한시대부터란다. 국수 만드는 방법이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중국 송나라 때, 즉 삼국시대이거나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데 발견된 기록은 없단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에 사원에서 제례를 지낼 때 면을 제사상에 올리고 판매도 했다고 고려사(高麗史)에 쓰여 있다는 것이다.


제사상에 올렸으니 면은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조리가 어려운 게 아니라 밀이라는 곡물이 귀했기에 당시의 국수는 제례나 귀족들의 잔칫날에나 내놓는 음식이었던 거다. 그런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국수는 소박한 결혼식에서 하객에게 내놓는 한 끼니다. 그릇 중앙에 한 덩이 소면 상투를 내려놓고 짭조름하고 따끈한 멸치국물을 부은 다음, 가늘게 채 썰어 볶은 호박과 당근, 유부 서너 개와 계란채 두세 줄, 마지막으로 어긋어긋 썬 대파 한 숟가락과 마른 김 부스러기를 조금 집어 얹으면 완성되는 잔치국수가 그것이다. 수십 인분을 준비해야 하는 국수로는 잔치국수야말로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국어사전에는 한글로만 표기된 ‘국수’의 한자어는 掬水인데, 이는 끓는 물에 삶은 면을 찬물에 헹궈 건져 올리는 방식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니, 국수는 헹굼 과정이 없는 칼국수보다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콩국수, 냉면, 막국수처럼 면을 삶은 후에 육수나 양념장을 첨가하는 게 본래의 방식이다.


국수집 얘기를 하자니 국수 자체의 얘기가 길어졌다. 국수마다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나의 경우는 매콤한 비빔류보다는 내용물에서 국물이 절반인 물국수를 더 좋아한다. 무더운 날에는 냉면이나 막국수나 콩국수에 마음이 가지만, 작년 봄 여행길에 하동 섬진강변에서 먹었던 재첩국수를 나는 잊지 못한다. 섬진강이 바로 옆에 흐르는 간이식당 마당의 나무 그늘 아래 들마루에 앉아 나무젓가락으로 흡입했던 재첩국수는 과장하자면 국수 반, 재첩 반이었다. 가격은 6000원. 재첩을 우려낸 뽀얀 국물을 뒤덮고 있는, 잘게 썬 부추 위에 섬처럼 봉긋 솟은 소면에 얹어진 한 줌의 재첩 조갯살은 찔레꽃처럼 하얬다. 그날, 재첩국수 그릇을 비우자 내 마음은 보얘졌다. 섬진강변을 여행하는 길손들이여, 그 길에 재첩국수를 먹어보지 못했다면 절반만 다녀온 걸로 여기시라.

 

재첩국수 - 윤병무 제공
재첩국수 - 윤병무 제공

이처럼 입맛을 일깨우고 마음에 자리 잡는 국수집은 낯선 길가에 있다. 5년 전 가을, 내가 거주하는 도시 변두리의 시골 동네를 지날 때였다. 50미터쯤 거리에 허름한 가옥이 있었고 그 집 앞에 어린아이 키만 한 입간판이 서 있었다. 그곳에 붉은색 손글씨로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국수.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지인과 나는 그 집 앞으로 걸어갔다. 작은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기웃거린 내가 말했다. “이 집, 뭔가 있어. 포스(force)가 느껴져. 들어가 봅시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껏 먹어본 최고의 잔치국수였다. 가격은 3000원. 호박과 당근만 조금 넣고 부친 막전도 한 장에 3000원. 상주 막걸리 한 주전자도 3000 원. 그날 우리는 1만 2000원으로 국수와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었다. 배추김치는 너무 맛있어서 그것만 놓고도 막걸리 한 주전자는 더 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그 국수집은 택시를 타고서라도 종종 찾아가는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한 깊은 맛과 세월을 품은 분위기와 호주머니의 만족감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국수집의 포스는, 다소 투박하지만 경솔하지 않은 주인장 부부의 정직성에서 나온 것일 테다. 맛과 가격에 대한 손님의 기대에 정성과 합리적 이윤 윤리로 응답하는 주인장의 경영 태도가 그것이다. 그것을 알거나 느끼거나 즐기는 손님은 나뿐만이 아니다. 그 외진 곳까지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로 테이블은 늘 절반은 차 있다. 그곳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주인장이, 자신이 손님이라면 찾아가고 싶은 국수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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