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악취? 식물에겐 ‘아로마 테라피’ 된다

2017.08.18 07:00

날씨가 습할 때면 집안이나 거리 구석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곤 한다. 기온과 습도가 높아져 왕성하게 번식한 세균이 내뿜는 휘발성 물질 때문이다. 인간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세균, 고초균(Bacillus subtilis) 역시 악취를 내뿜는 대표적인 세균이다. 된장을 만들 때 쓰는 고초균은 콩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구린 냄새를 가진 휘발성 물질을 내뿜는다. 그러나 이 구린 냄새 속에는 식물의 면역력을 높이는 ‘부탄디올’이 들어 있다.

 

고초균 - 위키피디아 제공
고초균 - 위키피디아 제공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팀은 부탄디올이 식물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오이나 고추처럼 국내에서 흔히 키우는 작물에 부탄디올을 뿌리면 진딧물 같은 해충을 내쫓고, 세균성‧바이러스성 질병에 견디는 힘 등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탄디올은 살충제나 살균제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해충이나 세균이 싫어하는 물질을 식물이 만들어야 한다는 ‘신호물질’로 작용한다. 식물이 외부에서 뿌린 부탄디올을 감지하면 해충이 싫어하는 물질을 생성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오이에 부탄디올을 뿌리면 자스몬산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자스몬산은 곤충을 막는 방제 체계를 만들도록 식물 전체에 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이다. 자스몬산을 만든 식물은 곤충이 싫어하는 물질을 뿜어내 곤충을 쫓아낸다.

 

부탄디올은 병에 견디는 힘인 면역력을 키우는 역할도 한다. 고추에 뿌리면 고춧잎이 오그라드는 모자이크병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다. 이 병은 모자이크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식물 병이다. 마땅한 항바이러스제가 없어 일단 발병하면 주변 식물에 옮기지 않도록 뽑아 태우는 것만이 방법이다. 류 센터장은 “부탄디올이 식물에 면역력 증가 기작을 발동시켜 바이러스에도 잘 버틸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부탄디올이 식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2003년 류 센터장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으나 그동안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거의 없다가 최근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등 해외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류 센터장은 관련 연구를 돕기 위해 연구 방법을 공개하는 학술지인 네이처 프로토콜 7월호에 휘발성 물질을 포집하고 측정하는 방법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사람이 아로마 세러피를 이용하듯 식물에 부탄디올을 사용할 방법을 추가로 연구 중이다. 류 센터장은 “전기 모기향이나 석고 방향제처럼 지속적으로 밭에 부탄디올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탄디올은 석유화학 물질을 대신할 재료로도 각광받고 있다. 2, 3일이면 3t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생산 속도가 빠르고, 폴리에틸렌과 기본 분자식이 유사해 바이오 플라스틱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또 수분을 붙잡아 두는 능력이 뛰어나 일부 화장품에 피부 보습제로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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