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장내미생물을 활용해 건강하게 살 방법은?

2017년 08월 08일 12:00

불에 익히면 음식의 화학적 구조가 달라진다. 전에 없던 독소가 생기기도 하고, 있던 독소가 없어지기도 한다. 이를 먹는 우리의 소화 효소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인간의 해독 체계와 효소 화학이 대형 유인원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극히 적다.
- 리처드 랭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0년대 흑백TV 시절 지상파에서 방영한 ‘미드’ 가운데 ‘타잔’이 지금도 기억난다. 타잔은 침팬지를 데리고 다녔는데 당시 어린이였던 필자는 이 녀석이 늘 부러웠다. 타잔에게 바나나를 얻어먹는 장면이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는 바나나가 엄청나게 비싼 과일이어서(지금 돈으로 개당 만원도 넘었을 것이다) 어린이날이나 맛볼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침팬지의 식단이 그리 부러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야생 침팬지의 경우 바나나처럼 먹기 쉽고 영양밀도도 높은 과일로 배를 채우는 경우는 드물고 그나마 과일이 얼마 없는 계절에는 낮 대부분을 잎을 씹으며 보내야 한다. 침팬지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통이 훨씬 큰 이유도 이처럼 영양밀도가 낮은 음식을 잔뜩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2009년 펴낸 책 ‘요리 본능’에서 침팬지가 즐겨 먹는 열매나 씨앗, 잎을 먹어본 경험을 들려준다. 예를 들어 침팬지가 너무나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는 자두만 한 크기의 우간다녹심목 열매를 한 입 깨문 순간 “한 개도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그 맛이 맵고 고약했다”고 쓰고 있다. 랭엄은 이들 야생 식물에 들어있는 ‘풍미가 매우 강하고 향이 독한’ 화합물 중 다수가 “인간에게는 유독하지만 침팬지에게는 그 독성이 훨씬 약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랭엄이 독소로 설명하는 식물화학물질(phytochemical)은 그러나 소량 섭취할 경우 건강에 이로운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오늘날 영양학자들은 육류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의 비율을 높인 식단을 짜라고 강조한다. 식물화학물질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건 이것들이 단순히 몸 안에서 소화돼 칼로리를 내는 영양분이 아님을 뜻한다. 즉 우리 몸의 입장에서는 낯선 분자들인데 이를 ‘생체이물(xenobiotic)’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포도에 들어있는 포도당과 과당은 영양분이지만 폴리페놀의 한 종류인 레스베라트롤은 생체이물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성분이 아닌 모든 화합물은 생체이물이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에 비해 섭취하는 생체이물의 종류나 양이 훨씬 적을 텐데 사자나 그 먹이인 얼룩말이나 몸을 이루는 성분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 역시 채식주의자들보다 생체이물을 덜 섭취할까. 이건 좀 애매한데 대부분 고기를 익혀 먹기 때문에 그 과정에 생체이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특히 구울 때).


그런데 음식에 들어있거나 조리과정에서 생기는 화합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생체이물의 전부는 아니다. 식용색소를 비롯한 각종 식품첨가물, 농약, 플라스틱 원료 등 원래 자연에는 없던 많은 화합물들이 음식에 섞여 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플 때 먹는 약도 분류하자면 생체이물이다. 결국 우리 소화계는 영양분을 소화해 흡수하고 배출하는 것뿐 아니라 이런 생체이물도 적절하게 대사해 처리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아직 진화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다양한 생체이물을 처리해야 하는 오늘날 인류로서는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생체이물을 섭취하고 있다(왼쪽 위에서부터 음식 화합물, 산업화합물과 오염물질, 의약품). 인체에는 생체이물을 대사해 배출하는 시스템이 있다. 최근 장내미생물의 생체이물 대사가 주목받고 있는데 그 결과가 다양한 방식으로 인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오른쪽 위에서부터 질병 위험성, 생체적합성, 독성, 약물효율). - 사이언스 제공
우리는 매일 다양한 생체이물을 섭취하고 있다(왼쪽 위에서부터 음식 화합물, 산업화합물과 오염물질, 의약품). 인체에는 생체이물을 대사해 배출하는 시스템이 있다. 최근 장내미생물의 생체이물 대사가 주목받고 있는데 그 결과가 다양한 방식으로 인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오른쪽 위에서부터 질병 위험성, 생체적합성, 독성, 약물효율). - 사이언스 제공

항생제 처방을 자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학술지 ‘사이언스’ 6월 23일자에는 우리가 섭취한 생체이물을 처리(대사)하는데 장내미생물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리뷰논문이 실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장내미생물이 인체라는 생태계의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는데 생체이물 대사도 예외는 아니라는 말이다.


장내미생물 입장에서도 오늘날 인류가 섭취하는 다양한 생체이물 가운데 다수는 낯선 분자들이다. 실제 우리 몸 안에서는 소화에서처럼 생체이물을 대사하는데도 인체의 시스템과 장내미생물의 시스템이 이중으로 작동하고 있다. 두 시스템의 작용이 서로를 보완하며 인체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엇박자를 내며 우리 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 장에는 박테리아가 수백 종 살고 있는데 그 게놈을 다 합치면 인간의 게놈과 비슷한 크기가 될 것이다. 반면 유전자 개수는 수백 배에 이를 텐데, 인간 게놈은 대부분이 정크DNA인 반면 박테리아 게놈은 거의 유전자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운데 기능이 겹치는 게 많겠지만 생체이물을 대사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 개수와 동원되는 화학반응의 종류는 인체 시스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장내미생물이 생체이물을 대사하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식물화학물질 가운데 그 자체로는 별 효과가 없지만 장내미생물의 대사과정을 통해 변형된 화합물이 생리작용을 보이는 예가 꽤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견과류나 베리류에 들어있는 폴리페놀인 엘라그산(ellagic acid)은 장내미생물에 의해 우리 몸이 흡수할 수 있는 유로리틴(urolithin)으로 바뀌어야 항노화 등 유익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 2013년 스페인의 연구자들은 장내미생물 가운데에 클로스트리디움 렙텀(Clostridium leptum)과 클로스트리디움 코코이데스(C. coccoides)가 엘라그산 대사에 주로 관여한다고 밝혔다. 즉 장속에 이들 박테리아가 없는 사람은 엘라그산을 많이 섭취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사이언스’ 8월 4일자에는 식물화학물질인 플라보노이드를 장내미생물이 대사할 때 나오는 분해산물인 데스아미노타이로신(desaminotyrosine, 이하 DAT)이 선천면역계를 활성화시켜 독감을 가볍게 앓고 지나가게 해준다는 동물실험결과가 실렸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자들은 항생제를 복용한(장내미생물이 타격을 입은) 생쥐나 무균(장내미생물이 없는) 생쥐의 경우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예후가 좋지 않다는 관찰을 토대로 독감을 이기는데 장내미생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클로스트리디움 오르비신덴스(C. orbiscindens)라는 박테리아가 먹이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를 대사해 DAT를 만들고 체내에 흡수된 DAT가 1형 인터페론 시스템을 활성화해 바이러스로 인한 생체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독감에 걸렸을 때 적절한 면역반응을 일으키려면 장에 특정 박테리아가 존재해야 하고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런 현상은 독감뿐 아니라 다른 바이러스성 질환에서도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감기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관행(박테리아의 2차 감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은 항생제 내성이나 장내미생물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감기를 더 심하게 앓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클로스트리디움 오르비신덴스는 메트로니다졸과 반코마이신 같은 항생제에 특히 취약하다. 박테리아 감염 질환으로 불가피하게 이런 항생제를 쓴 경우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면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아직은 포함된 장내유익균 종류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필자가 먹는 프로바이오틱스에는 클로스트리디움 오르비신덴스가 없다.

 

지난 2008년 중국에서는 멜라민이 들어있는 분유를 먹은 수많은 아기들이 신장결석이 생겨 고통을 당했다. 5년 뒤 메커니즘이 밝혀졌는데 특정 장내미생물이 멜라민을 대사해 시아누르산으로 바꾸고 신장에서 멜라민(파란색)과 시아누르산(빨간색)이 만나 불용성 결정이 생겼다. -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 2008년 중국에서는 멜라민이 들어있는 분유를 먹은 수많은 아기들이 신장결석이 생겨 고통을 당했다. 5년 뒤 메커니즘이 밝혀졌는데 특정 장내미생물이 멜라민을 대사해 시아누르산으로 바꾸고 신장에서 멜라민(파란색)과 시아누르산(빨간색)이 만나 불용성 결정이 생겼다. - 위키피디아 제공

멜라민 분유 파동의 배후에는…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2008년 중국에서는 소위 ‘멜라민 분유’를 먹은 아기 30만 명이 신장결석이 생겨 고생하고 이 가운데 적어도 여섯 명이 죽는 비극이 일어났다. 업자들이 분유의 단백질 함량을 속이기 위해 비싼 우유 단백질 대신 값싼 멜라민을 넣은 결과였다. 멜라민(melamine)은 식기 등에 널리 쓰이는 멜라민수지, 즉 플라스틱을 만드는 원료다. 식품 속 단백질 함량은 질소의 함량을 분석해 계산하는데 멜라민은 질소 비율이 높은 분자이기 때문에 이런 짓을 했다(1%만 넣어도 단백질 함량이 4% 올라간다).


사건이 터지고 5년이 지난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 병진의학’에는 멜라민 분유가 신장결석을 일으키는 과정에 장내미생물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클렙시엘라(Klebsiella)속 장내미생물이 생체이물인 멜라민을 대사해 암모니아와 시아누르산(cyanuric acid)으로 분해하는데, 소화관에서 흡수돼 혈관을 타고 신장에 도달한 시아누르산이 역시 그렇게 온 멜라민과 복합체를 형성해 불용성 결정, 즉 결석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멜라민 분유를 먹은 아기들 가운데 장에 클렙시엘라가 없는 경우는 신장결석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장내미생물이 생체이물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은 산업화합물처럼 자연계에 없던 생체이물의 경우 단순히 동물실험으로 인체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한편 아플 때 먹는 약 가운데 장내미생물 생체이물 대사의 영향을 받는 게 이미 50가지가 넘게 알려져 있다. 같은 약물임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약효가 뛰어나고 다른 사람에게는 오히려 부작용만 큰 것 역시 개인에 따른 장내미생물 조성의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장내미생물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약물의 가장 유명한 예는 항암제인 이리노테칸(Irinotecan)이다. 이 약물은 전이성 결장암을 비롯해 토포이소머라아제Ⅰ(topoisomerase Ⅰ)을 과잉으로 만드는 암세포에 치명적이다. 항암제가 달라붙은 토포이소머라아제Ⅰ는 구조가 바뀌어 DNA에 손상을 일으켜 결국 세포를 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리노테칸 자체는 약효가 없다. 정맥주사로 체내에 들어온 뒤 혈액 내 효소의 생체이물 대사작용으로 SN-38이라는 분자로 바뀐 뒤 암세포를 공격한다. 한편 혈관을 순환하는 SN-38은 간에서 역시 효소의 생체이물 대사작용으로 활성이 없는 SN-38G라는 물질로 바뀐 뒤 쓸개즙에 섞여 장으로 보내져 배출된다.


그런데 대장에서 장내미생물이 SN-38G를 생체이물로 인식해 이를 대사하는 과정에서 도로 SN-38로 만든다. SN-38은 세포분열이 왕성한 장의 상피세포를 공격해 죽게 하고 그 결과 심각한 설사와 같은 항암제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처럼 이리노테칸에 대한 인체 생체이물 대사 시스템과 장내미생물 시스템이 엇박자를 내기 때문에 적절한 투여량을 결정하기가 어렵다. 결국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약물과 함께 항생제를 투여하기도 하지만(장내미생물의 대사를 억제하기 위해) 이 경우 안 그래도 면역력이 약한 암환자가 유해균 침입에 더 약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지난 2010년 ‘사이언스’에는 SN-38G를 SN-38로 바꾸는 장내미생물 효소의 작용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물질을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암에 걸린 생쥐에게 이리노테칸과 억제제를 같이 투여할 경우 항암제 부작용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억제제가 임상에 적용돼 현재 쓰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가 약물로 인해 겪는 부작용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이런 대사과정의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를 정리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예다.


이처럼 생체이물의 대사에 장내미생물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고 우리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둘 알려지고 있음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도 장내미생물의 어떤 종이 어떤 효소를 이용해 생체이물 대사를 하는지 알아내는 게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놈이나 유전자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기능을 추정하는 빅데이터 분석법이 여기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수백 년 전부터 심장질환 치료제로 쓰인 디기탈리스 추출물의 경우 유효성분이 디곡신(digoxin)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디곡신은 환자에 따라 약효가 들쑥날쑥했다. 원인을 알아보니 효과를 못 본 사람들의 분변에서 디곡신 대신 다이하이드로디곡신 농도가 높았다. 이런 사람의 장에 있는 에게르텔라 렌타(Eggerthella lenta)라는 박테리아가 디곡신을 환원시켜 활성이 없는 다이하이드로디곡신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약효를 본 사람들의 장에도 에게르텔라 렌타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사이언스’에는 이 혼란을 해결한 논문이 실렸다. 즉 에게르텔라 렌타의 특정 균주(DSM2243이라고 명명)만이 위의 대사반응을 촉매하는 효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장속에 에게르텔라 렌타가 있더라도 이 효소가 없는 다른 균주일 경우 혈액 내 디곡신 농도가 유지됐다.


리뷰 논문 말미에서 저자들은 “장내미생물과 유전자를 범주화하는 방식으로 한계가 있다”며 “종이 아니라 균주의 차원에서 생체이물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를 찾고 그 반응의 분자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장내미생물의 생체이물 대사가 우리 건강에 상당히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직은 내 건강관리로 이어질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아쉽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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