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규제’를 규제해야 과학이 산다

2017년 08월 07일 03:10

전승민 기자 - 동아사이언스 제공
전승민 기자 - 동아사이언스 제공

생명과학계에서는 최근 ‘연구 규제 철폐’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발단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 팀이 발표한 연구 성과 때문이다. 이 연구팀은 인간 배아(8주 이전의 수정란)에서 ‘비후성 심근증’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3일 밝혔다. 이 병은 유전자 이상으로 심장의 좌심실 벽이 비이상적으로 두꺼워져 호흡 곤란과 같은 심부전 증상을 나타내고 심한 경우 돌연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병은 유전병이지만 자녀에게 병을 물려주지 않는 길이 열린 것이다. 1만 가지 이상의 유전질환에 적용할 수도 있어 세계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김 단장은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연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이번 연구의 주요 실험을 미국과 공동으로 해야 했다. 미국 연구진이 인간배아에서 DNA(유전자의 본체)를 추출해주면, 김 단장 팀이 DNA를 교정하는 방식이었다. 굳이 양국 협업으로 연구를 한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국내법으로는 인간배아나 정자, 난자, 태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DNA는 사람의 몸에서 뽑아낸 부산물이어서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성과는 한국의 ‘단독 업적’이 아니라 미국과의 ‘공동 업적’이 됐다.


김 단장 팀을 포함해 학계에서 개정을 요구하는 법 조항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중 제47조다. 이 법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전자 치료 연구를 하기 위해선 ①유전질환,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그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이거나,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여야 하며 ②반드시 이 두 조항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여기에 ③배아, 난자, 정자 및 태아에 대하여 유전자 치료를 시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있다. 국내 연구진은 “3번 항도 문제지만 여기에 1, 2번 항까지 모두 적용받으면 사실상 할 수 있는 연구가 거의 남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유전자 치료에 우리가 민감해진 배경에는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이 있다. 당시 황 전 교수 팀은 인간의 난자를 그대로 실험에 사용하는 등 무리한 방식으로 적잖은 지탄을 받았고, 이 영향으로 관련 법이 엄격해졌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경쟁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중국은 일체의 규제가 없고, 영국과 미국은 연구 목적에 한해선 인간배아 교정을 허용하고 있다.

 

김 단장 팀의 연구 성과가 세상에 알려진 그날 오후, 과학기술한림원은 김 단장을 비롯한 국내 생명과학 전문가들을 초청해 원탁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47조 제정을 주도했던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도 참석해 ‘법률이 더 유연할 필요가 있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되는 데 3년이 걸렸고 과학의 발전 속도에 비해 국회가 너무 느리다”면서 “법에서는 개괄적인 내용만을 지정하고 시행령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법을 만든 사람조차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유능한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불필요하게 제한받는 일은 없는지, 정부가 생명과학계를 비롯한 모든 연구 현장을 차근차근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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