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막장 드라마?!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2017년 08월 05일 15:30

[테마가 있는 영화] # 영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감독: 사라 폴리
출연: 사라 폴리, 마이클 폴리, 해리 걸킨
장르: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1시간 48분
개봉: 2014년 3월 13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주)영화사 조제 제공
(주)영화사 조제 제공

(*아래에는 영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출생의 비밀


때는 바야흐로 1978년. 배우였던 다이앤은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 ‘토론토’라는 제목의 연극에 캐스팅되어 몬트리올로 떠난다. 몬트리올에서 자신의 연극을 우연히 보러 왔던 영화 제작자 해리와 사랑에 빠져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같은 시기, 다이앤의 남편 마이클은 아내가 몬트리올로 떠난 후 권태롭던 부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로맨틱한 러브레터를 보내고, 아내가 머무는 몬트리올로 간다. 두 사람은 단 이틀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뜨겁게 사랑을 나눈다. 마치 신혼으로 돌아간 것처럼.


수 년이 흘러 다이앤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이 흐른 후 다이앤이 사랑했던 남자 해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온다. 그녀는 다이앤의 딸, 사라 폴리. 몬트리올에서 몇 달을 지냈던 엄마의 과거가 궁금해서 찾아간 사라는 해리에게서 사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가 사라의 친부(親父)라는 것. 사라의 식구들끼리 식탁에서 사라가 아빠(마이클)의 친딸이 아닌 것 같다고 농담처럼 하던 말은 뜻밖에도 진실이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 해리가 사라의 친아빠일 확률이 99.997%였다.


이 (막장)드라마 같은 진실은 결국 사라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에게 퍼지기에 이르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두 아빠’가 각자의 시선으로 글을 쓰고 출판을 하려 하자 깊이 고민하던 사라는 본인이 직접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늘 그리워했던 엄마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 ‘1979년생 사라 폴리’

 

(주)영화사 조제 제공
(주)영화사 조제 제공

TV 연속극에서나 볼 법한 이 흥미로운 ‘출생의 비밀’의 당사자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감독인 사라 폴리 그 자신이다. 그녀는 ‘새벽의 저주’, ‘미스터 노바디’ 등에 출연한 배우이면서, ‘어웨이 프롬 허’, ‘우리는 사랑일까’를 만든 재능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주로 극영화에 출연하고 직접 만들던 그녀가 자신의 가족사, 특히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소재로 삼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필자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13년 5월 무렵,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여배우, 카메라를 든 뮤즈’ 섹션으로 초청되었을 때였다. 당시 필자는 그가 출연한 영화도, 연출한 영화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이 영화와 감독 사라 폴리에 대한 사전 정보는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웠다. 당시에 내가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극장을 꽉 메운 사람들 틈에서 울고 웃으며 본 기억만큼은 분명하다. 2014년 정식으로 개봉한 뒤 가족을 데리고 지금은 사라진 광화문의 작은 영화관 ‘스폰지하우스’로 한 번 더 보러 갔었고,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한 번 더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대차게 깨버리면서, 관객들을 단숨에 매료시키는 이 영화의 매력은 제목처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있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난 장본인인 ‘1979년생 사라 폴리’는 어린 나이에 엄마의 암투병과 죽음, 실의에 빠진 아빠 마이클의 모습을 목격한다. 엄마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던 오빠 존과 마크는 사라가 마이클의 친딸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농담처럼 말했고, 사라는 자라서 자신의 친아빠가 정말 다른 사람인지, 돌아가신 엄마의 과거는 어땠는지 수소문하며 다닌다.


사라는 자신이 몰랐던 엄마의 과거를 조금씩 알게 되고, 친아빠인 해리와 맺는 새로운 관계에 들뜨면서도, 진실을 받고 충격을 받을 가족들, 특히 아빠 마이클의 반응을 걱정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말처럼 “지루한 남의 가족사 알게 뭐야?” 싶겠지만,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마 어느 누구라도 결국은 이야기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무엇보다 생생하게 만드는 것은 이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는 점과, 그 장본인이 직접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독특한 화법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영화사 조제 제공
(주)영화사 조제 제공

하지만 감독인 사라 폴리는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보다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우선 ‘그 사건’의 당사자인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라 폴리는 자신의 이부남매들인 존, 수지, 마크, 조애나는 물론, 사건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해리와 그 주변 사람들, 엄마 다이앤과 몬트리올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다이앤의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아빠 마이클을 전부 찾아가 그들이 알고 있는 ‘다이앤 폴리’라는 사람의 A부터 Z까지 끄집어내 인터뷰한다. 마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메들리처럼. 특히 마이클에게는 그가 직접 써내려간 회고담을 녹음하게끔 한다.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인터뷰에 의존하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사라 폴리는 더 나아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지우고자 애쓰는 카메라의 존재를 끊임없이 드러낸다. 인터뷰 장면만 넣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과 재연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도 영화 속에 들어간다. 또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영상을 촬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여러 차례 등장시킨다. 다이앤의 딸이자,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심지어는 사라 폴리가 인터뷰이와 이 영화의 주제와 형식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친부인 해리는 당사자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그 주변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방식은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조애나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과 말을 빌려 한 사람의 존재를 복구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본 대로, 느낀 대로, 기억하는 대로 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영화 속에서 사라와 해리의 친자 확인 검사 결과에 대해 마이클은 99%로, 해리는 99.97%로, 담당 의사는 99.9997%로 기억하고 있다. 정답은 99.997%. 같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조차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기억이나 말이 모두 다르다.

 


#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러다

 

(주)영화사 조제 제공
(주)영화사 조제 제공

어떤 작품이 작품에 대한 감독의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창작자의 그러한 고민의 지난한 과정까지 담아낸 작품이다. 그러한 고민의 과정 또한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이야기가 가진 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감독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내게 된 그 조심스러움, 언제나 그리워하지만 누구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엄마라는 존재,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엄마가 세상에 남긴 흔적들, 그리고 그 덕분에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된 자기 자신을 대면한다(사라 폴리는 노산이었던(그리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던) 엄마의 낙태 결심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감독과 주변인들의 이야기와 고민이 집약된 덕분에,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 나를 낳았다’는 간단한 사실보다 훨씬 더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활기 넘치고 웃음 많던 사람이었지만 이혼과 양육권 분쟁으로 세상의 멸시를 받았던 고통을 숨기며 살아온 엄마이자, 에너지 넘치는 배우였고, 무엇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던 다이앤은 더 이상 말이 없지만, 그 주변 사람들은 모두 ‘스토리텔러(Storyteller)’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 각자의 기억과 이야기는 불완전해서 퍼즐 조각처럼 끼워맞춰도 온전한 그림으로 탄생하지 않지만, 대신 얽히고설킨 수많은 가지들을 뻗어나간다. 영화에 이야기를 보탠 사람들이 만든 거대한 숲을 보면서 누군가는 감동을 받고, 누군가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발견하며, 필자 같은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떤 가족이나 나름의 역사가 있으니까”


‘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혼돈이라 할 수 있다. 어두운 포효, 맹목, 산산조각난 유리 잔해, 쪼개진 나무조각, 회오리바람에 휩싸인 집, 빙산에 충돌한 배, 아니면 급류에 휩쓸린 배처럼 그 안의 사람들은 멈출 힘이 없다. 시간이 지나야 이야기의 형체를 갖추게 된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때에서야.’


영화의 오프닝에 인용되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소설 ‘알리아스 그레이스’의 문구처럼, 우리 모두는 시간이 지나면 인생에서 겪은 사건, 경험들을 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행복한 이야기든, 고통스럽고 슬픈 이야기든. 영화의 감독 사라 폴리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위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넷플릭스의 ‘알리아스 그레이스’(2017. 11. 02)의 각본가이자 프로듀서로 돌아올 예정이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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