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16] 야영지: 일상에서 가장 먼 곳

2017년 08월 05일 17:30

여름휴가철이다. 여름휴가는 자의든 타의든 한여름에 잡히기 마련이니 보통은 중복(中伏) 즈음에 몰린다. 양력으로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가 그때다. 일반 휴가와는 다르니 더위를 피한다는 뜻인 피서(避暑) 휴가라는 말이 더 적절할 테다. 그 즈음은 해마다 인천공항 이용자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때이기도 하다. 해외가 아니더라도 이때가 되면 강원도 산속이든 제주도 바닷가든 곳곳의 강과 계곡이든 많은 이들은 피서지를 찾아 가족과 함께 지인과 함께 어울려 떠날 여행 가방을 꾸린다. 일상에서 멀어진다면 그곳이 어디든 설레는 마음까지 가방에 넣어 사람들은 주거지가 아닌 곳으로 떠난다.

 

GIB 제공
GIB 제공

피서 여행지의 숙소는 호텔, 콘도미니엄, 펜션, 민박도 있지만 2004년에 시행된 주 5일 근무제 이후부터는 ‘캠핑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아예 야영지에 터를 잡아놓고 텐트나 캠핑카(camping car)에서 기숙하며 휴가 내내 피서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야영(野營)이야말로 가장 자연 친화적이고 원시적인 숙소인 셈이다. 진화해온 인류가 견고한 집을 짓고 살기 전에는 동굴이든 움막이든 자연에 밀착해 그대로의 환경을 이용했으니 말이다. 다만 오늘날의 야영은 야영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업 생산물로 만든 캠핑 전용 장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는 크다. 오늘의 야영은 생존이 아닌 여가활동이라는 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천성이 게으른 나는 야영을 즐기지도 않거니와 야영의 기술적인 지식과 경험도 없다. 모르니 즐기지 못할 테지만, 기질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질이란 타고난 성정과 체질의 다른 말이기에 다분히 유전성을 반영하겠다. 생각해보면, 야영을 즐기는 사람은 신체적으로 활동력이 왕성한 유전인자를 타고나지 않았을까. 또, 야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먼 조상은 초원을 오르내리거나 횡단하며 살아간 유목민이 아니었을까. 양들의 먹이를 찾다가 초목을 만나면 한동안 머무를 천막집을 짓고 야영하다가 기후가 바뀌면 다시 이동하는 유목민의 습성이 핏속에 흐르고 있지 않을까. 유목민의 소중한 재산이자 가장 유용했던 말[馬]도 그들은 애지중지하였을 테니 그 후손들 역시 다분히 자동차에 애착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의 다수는 자동차에도 관심과 욕심을 나타내는 것 같으니 말이다.


반면 그다지 야영을 즐기지 않는(못하는) 나의 먼 조상은 대대로 정착 생활을 해온 농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후손인 나는 한때 6년간 반경 1km 안에서 주로 생활했어도 답답해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또한 16년 동안이나 보유하고 있어서 곧 폐차할 날이 멀지 않은 낡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만 그사이 자녀가 모두 성장해서 이제는 자동차가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 역시 이동과 활동의 편의에 필요한 말[馬]보다는 농사에 소[牛]가 필요하듯 대형마트에 쌀을 사러 갈 때나 시동을 켜는 일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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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오래전 경험의 기억을 떠올리면 청춘 때 타의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야영했던 날들의 신선한 느낌은 내 피부에 남아 있다. 다해야 대여섯 번에 불과하지만, 그중 두 번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 소나기를 새벽까지 마른 이마로 받아내었고, 다른 날의 두 번은 실제로 내리는 장대비에 방수도 잘 안 되는 낡은 텐트 속에서 생쥐 꼴이 되었다가 강물이 차올라 황급히 철수해야 했던 일이다. 곤한 잠에 들었을 때 빗물은 바닥에 고여 금세 어깨까지 적셨다. 아찔한 순간을 넘기고 다행히 우리 일행은 인근의 시골 성당 마룻바닥에서 하룻밤을 신세졌다. 물기 없는 마룻바닥의 편안함에 젖은 몸을 뉘고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의 자장가를 들으며.


야영의 절반은 텐트를 치고 걷는 일이 아닐까. 아무리 사소한 건축일지라도 텐트를 치려면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요즘은 곳곳에 오토캠핑장들이 있어 아파트처럼 행렬을 맞춰 텐트를 칠 수 있게 돼 있지만, 바닷가 솔숲이나 허가된 강과 계곡에서는 물놀이 근접성과 안전을 고려해 적당한 자리를 잘 잡는 일이 중요하다.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들은 먼저 당도한 야영객들이 선점하고 있기에 다음 자리라도 잡으면 등이 배기지 않도록 땅을 고르고 나서 텐트를 친다. 편의성을 높인 원터치 텐트도 있다지만 비 덮개며 차양, 의자며 식기도구, 불판까지 제자리를 잡으려면 은근히 시간을 잡아먹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서 고생하는 그 시간이 야영의 즐거움이다. 즐거움을 준비하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이으면, 야영 활동은 어릴 적 누구나 즐겼던 소꿉놀이의 연장이다. 어릴 때야 가짜 살림인 소꿉뿐이라서 모래를 모아 밥을 짓고 붉은 벽돌을 빻아 고춧가루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실제 장비로 자기만의 천막집을 만들고 어항이나 견지낚시로 민물고기를 잡아 오거나,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삼겹살이나 장어, 조개 등을 구입해 와서 취사를 할 수 있으니 그 차원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그러고 싶은 행위의 욕구와 즐거움은 유사하다. 그러기에 여름뿐만 아니라 한겨울에도 야영지를 찾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은 현대 도시생활의 바깥에 있다. 그곳이 야영지이고 야영만의 재미가 그곳에 있을 테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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