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영화] 야구는 거들 뿐 ‘스카우트’

2017년 07월 29일 10:00

# 영화 ‘스카우트’


감독: 김현석
출연: 임창정, 엄지원, 박철민, 백일섭, 김희원
장르: 코미디, 멜로/로맨스, 드라마
상영시간: 1시간 39분
개봉: 2007년 11월 4일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주)두루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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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영화 ‘스카우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초고교급 투수 선동열을 찾아서
 

(주)두루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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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에서 활약하는 초고교급 투수인 ‘선동열’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카우트해 오라는 상부의 명령에 졸지에 광주로 출장을 떠나게 된 ‘호창’(임창정 분). 대학교 야구팀 스카우터였던 호창은 대학생들의 시위가 잦던 당시 서울의 매캐한 최루탄 연기를 피해 요양할 요량으로, 휴가를 써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상사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생전 가 본 적도 없는 광주에 홀로 내려가야만 했던 것이다.


연고도 없는 광주에서 호창은 다짜고짜 선동열의 학교로 찾아가보지만 그가 애타게 찾는 동열이는 없다. 오히려 경쟁 대학의 스카우터이자 호창의 선수 시절 라이벌이던 ‘병환’(김희원 분)이 먼저 도착해 있다. 아마도 병환의 편인 듯한 야구부 감독은 선동열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고, 호창의 ‘선동열 스카우트 작전’은 점점 꼬이게 된다.


무력하게 시간만 보내던 중, 호창은 옛 연인 ‘세영’(엄지원 분)이 광주에 내려와 있다는 걸 알고 세영을 찾아간다. 사람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세영은 호창의 방문이 달갑지 않고, 세영을 흠모하는 지역 조직폭력배 두목 ‘곤태’(박철민 분)는 호창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다. 시간에 쫓기고, 의지할 곳 없는 호창은 선동열 스카우트 작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 야구는 거들 뿐
  

(주)두루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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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의 연출자 김현석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두 번째 시나리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야구 심판과 톱스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또한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 ‘YMCA 야구단’은 조선 최초의 야구단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역시 야구가 영화의 주된 소재다. 게다가 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야기를 다룬 야구 영화인 ‘슈퍼스타 감사용’에는 카메오 출연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런 김현석 감독이 2007년 ‘스카우트’를 들고 돌아왔으니, 다들 ‘또 야구 영화냐’며 놀랄 법도 했다. 심지어 광주 출신에다 야구광이었던 감독이, 광주의 자랑이었던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는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하니, 누구라도 그렇게 반응했을 터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걸, 야구와 선동열이라는 소재는 거의 맥거핀(Macguffin, 극중 중요한 것처럼 꾸미지만, 알고 보면 별다른 구실을 하지 않는 미끼)에 가깝고 사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주인공들의 이어지지 못한 사랑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중심이다(사실 그래서 영화 홍보의 실패 사례로 꼽히는 이 영화도 저런 포스터가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현석 감독은 ‘광식이 동생 광태’, ‘시라노 연애조작단’, ‘쎄시봉’ 등을 통해 (특히 첫)사랑에 실패한 ‘찌질한’ 남성들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야구보다 더 소중하게 그려온 장본인이다. 또한 ‘YMCA 야구단’에서는 실존하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에 그럴 듯한 픽션을 가미한 이야기를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스카우트’ 속에서도 감독은 5.18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와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연결해, 같은 5.18을 소재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와는 또 다른 결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다음 주 개봉하는 기대작 ‘택시 운전사’는 ‘화려한 휴가’에 더 가까울 것 같다.

 


# 코미디와 로맨스 속 폭력과 상처

 

(주)두루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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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와 진압군의 투입 과정은 한편으로 소동극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야구 소재의 코미디 영화로 생각한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영화는 앞서 ‘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간의 이야기’라는 자막을 넣긴 한다).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폭력의 공포 속에 몰아넣는지, 또 그런 시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받는지를 보여준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그들은 기록될 만한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기억할 만하니까.


특히 호창이 선수로 뛰던 대학 시절, 학교의 지시를 받고 용역깡패처럼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과거의 잘못을 뒤늦게 깨우치고, 그로 인해 트라우마를 느꼈던 연인 세영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커다란 호소력을 지닌다.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속죄와 용서”를 주제로 내세웠다고 언급했듯이, 영화는 국가 폭력의 가해자가 희생당한 시민들에게 이제는 용서를 구할 때가 됐다는 제스처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나온 지 10년, 5.18이 발생한 지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18의 주범으로 지목된 그 사람은 여전히 떳떳함을 과시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주)두루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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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야구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곳곳에 녹아 있다. 프로야구가 창단되기 전, 이슈의 중심이던 고교 야구와 우수한 고교 선수들을 영입하려는 대학들의 스카우트 경쟁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특히나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투수로 평가 받는 거물투수 선동열이라는 실제 인물을 통해 이야기의 개연성을 높인다. 호창에게서 야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는 광주의 소년 이종범, 당시 대학 야구계의 슈퍼스타였던 최동원, 광주상고의 이순철 등 야구 ‘레전설’의 이름을 은근슬쩍 호명하기도 한다. 야구까지 이어진 연고전(또는 고연전)의 유구한 역사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YMCA 야구단’에서 송강호의 배역 이름이기도 했던 이호창을 ‘스카우트’의 주인공에게도 그대로 붙이고, 야구단의 신여성 ‘정림’에 이어 운동권 여성 ‘세영’의 진취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등 전작에서의 모티프를 가져오거나 변주해 감독 자신만의 인장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그 출발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의 주요 공격 목표 중 한 곳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YMCA 회관이라는 것을 안 이후였을 거라 생각된다.

 


# 배우 임창정의 고군분투
 

(주)두루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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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했으니, 이제 주연을 맡은 배우 임창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엄지원과 박철민이 연기한 세영과 곤태가 영화에서 보조적인, 또는 기능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는 동안 임창정은 나홀로 종횡무진한다. 배우 권해효의 말을 빌리면 “데뷔 이후 한 번의 외도도 없이 오로지 ‘양아치’ 역할만 해온 임창정 연기의 정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영화에서 임창정이 연기하는 호창은 ‘양아치’라기 보단 다소 모자라고 눈치 없는 남성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어쨌거나 다양한 상황에 처하는 인물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해내는 건 배우로서 임창정의 능력이다. 갖가지 코믹한 상황부터 옛 사랑의 감정을 잊지 못한 남자의 마음, 누군가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도 깨닫지 못한 미안함과 그를 달래보려는 고군분투의 상황까지. 영화의 웃음과 짠한 감정을 전하는 건 대부분 임창정의 몫이다.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하기에는 이야기 연결의 느슨함과 코미디 영화의 각종 클리셰가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중요한 것은 다양한 단서들을 조합해 후반부에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려는 전략에 임창정의 연기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시위 주동 여부를 묻는 취조실에서 옛 연인 세영을 모른 체하고 지나가면서도 못내 마음에 걸려하는 그 장면, 잊고 지내던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세영에게 용서를 구하는 그 장면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제는 그를 노래 잘하는 가수로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임창정은 배우로서도 꽤나 훌륭하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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