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비밀의 숲 탐험기

2017.08.20 20:30

한라산을 찾는 탐방객은 연간 125만 명에 이른다(2015년 기준). 하지만 일부 탐방로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비밀의 숲’이다. 지난 6월 22일, 기자는 그 비밀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각도가 40°는 돼 보이는 가파른 오름에는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조릿대가 빼곡했다. 한라산 학술조사팀을 이끈 임재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재해연구센터 책임 연구원의 인도를 따라 길 아닌 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자, 성널오름 정상의 습지대가 나타났다.


“인위적인 오염이 덜 된 곳에서 깊은 퇴적층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겁니다.”


임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덕분에 기자는 얼마인지도 모르는 긴 시간 동안 조사팀을 제외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밀의 숲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람의 발이 처음 닿는 것인지도 모르는 땅을 밟는 기분이 묘했다. 자기 땅을 침범한 사람들을 경계하듯 이름 모를 새소리만 울릴 뿐 사방이 고요했다.


조사팀이 오염되지 않은 퇴적층을 찾아 비밀의 숲에 들어간 이유는 제주도와 한라산의 과거를 밝히기 위해서다. 퇴적층이 옛 기후(고기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조사팀은 작년부터 2년째 한라산에서 지질조사를 하면서 한라산 형성 과정과 과거 기후의 특징을 조사하고 있다.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손으로 퍼 올린 땅속 타임캡슐


정상부 습지에 도착하자마자 임 책임연구원은 짊어지고 온 주머니를 열고 긴 막대로 땅 이곳저곳을 찌르고 다녔다. 시추할 곳을 찾는 것이었다. 방해하는 암석 없이 퇴적물이 잘 쌓여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적절한 곳을 찾자 두 사람이 한 조로 땅에 50cm가 조금 넘는 길이의 파이프를 박아 넣었다. 원통을 반으로 자른 듯한 모양의 파이프를 넣고 한 바퀴 돌린 뒤 빼내자 짙은 갈색의 퇴적층이 마치 과일 속살처럼 파이프와 함께 빠져나왔다.


임 책임연구원은 퇴적층을 5cm 간격으로 잘라서 준비해 둔 봉투에 나눠 담았다. 이렇게 나눠담은 시료를 분석하면 5cm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의 고기후를 분석할 수 있다. 5cm가 얼마 동안 쌓인 퇴적물의 두께인지는 탄소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을 이용해서 확인한다. 임 책임연구원은 “오늘 찾은 퇴적층은 층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지만 나이테처럼 뚜렷한 퇴적층도 있다”며 “그런 퇴적층은 mm, μm 단위까지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기후를 연구하는 원리는 이렇다. 습지를 덮은 물이 적을 때는 풀과 나무가 자라는 면적이 넓어진다. 반면 물이 많을 때는 땅이 물에 잠기면서 식물이 자라는 면적이 줄어든다. 특히 같은 식물이라도 풀과 나무는 탄소 동위원소 구성 비율이 다른데, 퇴적층에 남아 있는 유기물에서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분석하면 당시에 고인 물과 풀, 나무의 경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그로부터 당시 기후가 건조했는지 습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퇴적층에서 얻은 샘플을 세밀하게 나눠 담고 있다. -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퇴적층에서 얻은 샘플을 세밀하게 나눠 담고 있다. -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이날 목표는 3m 깊이까지 퇴적층을 파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50cm 파이프에 50cm를 이어붙이고 땅을 파는 작업을 두 번 더하자 갑자기 돌부리가 나타났다. 돌부리를 뚫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을 다시 팠지만 마찬가지였다. 1.5m 깊이에 전체적으로 암석층이 형성돼 있었다. 결국 표면에서부터 50cm 깊이의 샘플을 1cm 단위로 세밀하게 나눠 담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추 작업을 마무리했다.


임 책임연구원은 현재 한라산 곳곳에서 모은 퇴적물 시료를 분석하는 중이다. 그는 “데이터를 통해 점점 추워지거나 점점 더워지는 과거의 기후변화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며 “그 정보를 토대로 미래 제주도 기후가 어떻게 변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라산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지질연구 어벤져스


이날 동행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팀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고기후 전문가인 임재수 책임연구원과 산사태 전문가인 이춘오 선임연구원, 암석 전문가 홍세선 책임연구원, 지리정보시스템(GIS) 전문가 이진영 책임연구원, 그리고 정책 전문가인 이옥선 선임연구원이 팀을 이뤘다. 이들은 조사 목적과 지역에 따라 팀을 다시 두 개로 나눠 백록담(분화구 경사면 조사)과 사라오름, 성널오름(퇴적층, 암석 조사)을 조사했다.


웃긴 비유지만, 이들을 보며 영화 ‘어벤져스’가 떠올랐다. 각자 전문분야가 다른 팀원들이 역할을 나눠 조사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들은 사용하는 장비도 제각각이었다. 임재수 책임연구원은 시추 파이프가 담긴 1m가 넘는 긴 주머니를 어깨에 짊어지고 사뿐사뿐 길을 안내하는 리더다. 가냘픈 체구에서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캡틴 아메리카’를 닮았다.

 

대자율 측정 장치(작은 사진)를 대고 바위의 대자율을 측정중인 홍세선 연구원. 사라오름에서 측정한 화산암의 대자율은 1.98 정도로, 자성을 띠게 해 주는 광물이 거의 없음을 나타낸다. -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대자율 측정 장치(작은 사진)를 대고 바위의 대자율을 측정중인 홍세선 연구원. 사라오름에서 측정한 화산암의 대자율은 1.98 정도로, 자성을 띠게 해 주는 광물이 거의 없음을 나타낸다. -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홍세선 책임연구원은 ‘토르’처럼 망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돌을 깬다. 깨진 돌은 연구원으로 가져가서 특징을 분석한다. 또 작은 장치를 손에 쥐고 주위에 널린 돌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마치 청진기로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것처럼 그 위에 대고 찍혀 나오는 수치를 기록한다. 자기장이 주어졌을 때 물질이 자성을 띠는 정도인 대자율(자화율)을 측정하는 것이다. 돌의 기원과 생성 환경에 따라 자성이 다르기 때문에, 오름이 분출한 용암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다.


이진영 책임연구원은 매의 눈을 가진 ‘호크아이’를 닮았다. 지질도와 손목에 찬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보면서 정확한 좌표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의 역할은 모든 조사 활동이 이뤄진 위치를 GPS 정보로 정확히 기록해서 20~30년 뒤 후배 과학자들이 그간의 변화를 추적 연구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한라산의 지형 등을 연구한 이전 자료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변화를 연구하기 어렵다”며 “앞으로의 연구를 위해 위치에 기반을 둔 정량적인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단단한 체구에 특별한 장비 없이 맨손으로 가파른 백록담 경사면의 사면 안정성을 조사한 이춘오 선임연구원은 ‘헐크’를, 이들의 조사를 정책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는 이옥선 선임연구원은 지략이 뛰어난 ‘블랙위도우’를 닮았다.


이들은 길 아닌 길을 지금껏 10번 이상 오르내리며 한라산의 지형과 기후변화 연구를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앞으로도 2년 동안 이런 극한 산행을 이어가야 한다. 기자는 등산스틱이 부러질 정도로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임 책임연구원은 멋쩍게 웃으며 “후배들이 안 오겠죠? 이런 일이 하기 싫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거듭 “아 재밌다. 그래도 재밌지 않나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랬다. 잠시 동행한 것뿐이지만,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한라산의 속살을 맛본다는 것도, 미래 세대를 위해 한라산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다는 것도 특별한 느낌이었다. 지질학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어쩌면 미래 지질학자는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로봇과 드론이 사람을 대신해서 조사를 할지도 모르니까.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제주=최영준 기자 제공

“우리는 아직 한라산을 모른다”


“현재 한라산 백록담이 형성된 시기와 과정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입니다.”


안웅산 제주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생물자원연구과 학예연구사의 말은 다소 의외였다. 국가에서 지정한 천연보호구역이면서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인 한라산 백록담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니 말이다.


안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잠시 한라산 백록담 형성에 대한 연구가 있었을 뿐 이후로는 한라산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 당시 연구도 일본 학자들 중심으로 이뤄졌고, 결과도 불명확했다. 백록담뿐만이 아니다.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내에 있는 40여 개의 오름을 비롯해 제주도의 오름 386개 대부분이 정확한 형성 시기와 과정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한라산 아래에 아직도 마그마 방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된 바 없다. 동식물이나 고기후도 연구된 적이 없다.


작년 연구에서 조사팀은 항공기에 레이저 레이더(라이다, LiDAR) 장비를 싣고 1m 간격으로 등고선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한라산의 지형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분석 결과 한라산의 최대 고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1950m가 아닌 1947m였다.


또 백록담 퇴적층을 36m 깊이까지 시추한 결과 30m 깊이에 묻힌 퇴적물을 이용해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백록담의 형성 시기는 최소 1만9000년 이전인 것으로 추정됐다. 한라산연구부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팀은 현재 백록담을 만든 용암이 분출되기 전에 있었던 토양층을 발견하고 그 샘플을 채취해 분석하는 중이다. 분석 결과가 나오면 백록담 형성 시기와 형성 과정을 명확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