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크무비] 투기와 투자의 경계에서 길 잃은 가상화폐

2017년 07월 22일 19:00

얼마 전이다. 수년간 변동이 거의 없던 국내 모 가격비교 서비스 업체의 주가가 급등하자 업계 관계자들이 원인을 파악하려는 동분서주한 일이 있었다. 주류 언론 매체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찾은 나름 타당한 급등 원인 중 하나는 해당 업체가 일부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비트코인 테마주’로 분류됐다는 사실이었다.

 

가상화폐의 대표자격이지만 단기적인 광풍의 대상이 되고 있는 비트코인
가상화폐의 대표자격이지만 단기적인 광풍의 대상이 되고 있는 비트코인

‘가격비교 서비스가 비트코인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비트코인 관련 뉴스를 찾아보면 금방 풀리게 된다. ‘비트코인 폭등에 그래픽카드 품귀…판매량 3배↑’, ‘비트코인·이더리움 가격↑채굴 시 사용되는 그래픽카드도 품귀현상’ 등의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픽 카드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컴퓨터 부품 분야의 가격비교에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해당 업체가 덩달아 주목을 받은 것이다.


이 웃지 못할 상황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른바 ‘가상화폐 광풍’이 만들어낸 전세계적인 이상 현상의 한 단면이다. 2014년 이후 200달러와 1000달러 사이에서 비교적 안정화됐던 1비트코인의 가격이, 지난해 말부터 가파른 상승세와 단기적 폭락을 반복하며 최근엔 3000달러선까지 올라갔다 다시 2000달러 선으로 폭락한 것이 그 광풍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지난 1년간 비트코인의 가격 변화 - 코인데스크 제공
지난 1년간 비트코인의 가격 변화 - 코인데스크 제공

무엇보다 투자되는 장비와 전기료 등 비용 대비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가상화폐 채굴 관련 업종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덩달아 가상화폐 거래소들도 전무후무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각 국의 중앙은행과 관계 부처, 가상화폐 거래소 그리고 헤커들 간에 피아를 구분하기 힘든 난투극도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연일 그 내용들이 미디어에 대서특필되면서, 광풍은 가상화폐를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그 광풍이 튤립으로 시작하여 후추와 차를 거쳐 닷컴주식과 서브프라임모기지까지 이어지는 ‘묻지마 투기’의 또 다른 형태라고 단정짓기는 쉽지 않다. 가상화폐들이 일반적인 화폐의 세 가지 기능(교환 매개, 가치 척도, 가치 저장)은 물론 차별화되는 몇 가지 특성(익명성, 즉시성, 보안성 그리고 채굴량의 한도가 있다는 면에서 희소성)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굴된 비트코인의 총가치를 시간에 따라 보여주는 그래프 - 현 비트코인의 총 가치는 약 40조원 수준 - Block Chain 제공
채굴된 비트코인의 총가치를 시간에 따라 보여주는 그래프 - 현 비트코인의 총 가치는 약 40조원 수준 - Block Chain 제공

집단적 취향에 기반한 무형의 가치나 무리한 전망의에 기반한 사람들의 군중심리가 근원이었던 과거의 투기 사례들과는 달리, IT산업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필수적인 결과물 중 하나로 가상화폐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각국의 정부가 가상화폐의 규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하튼 현재 시점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엄청난 부침을 보이고 있는 가상화폐에 대하여, 조급하게 단정하기 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각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판단하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애초에 화폐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사람들 사이의 암묵적 합의에 기반한 것이므로,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시스템에 따라 그런 합의라는 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이 되는 전혀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가진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는 영화
시간이 돈이 되는 전혀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가진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는 영화 '인 타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와는 많이 다르지만, 할리우드 SF영화 중에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화폐 시스템을 가진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선한 화폐 시스템을 선보인 작품은 SF의 고전으로 추앙받는 ‘가타카’(1997년)로 유명한 앤드류 니콜 감독의 2011년 작 ‘인 타임’(저스팀 팀버레이크,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이다. 


이 영화 속의 세상에선 모든 사람들이 만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고 1년이라는 시간을 부여 받고, 남은 시간은 팔뚝에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버스도 타고 음식도 사고 월세도 내는데, 별도의 화폐가 아닌 그 남은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지만, 가지고 있는 시간을 다 쓰게 되면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을 하게 된다.


그런 다소 황당한 설정 위에 영화는 계층에 따라 보유한 시간에 극명한 차이를 가진 양극화된 사회적 모순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합의가 되면 무상으로 양도할 수 있기에 엄청난 시간을 가진 부모에게 받은 시간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하루 벌어 하루의 삶을 연명하는 이들이 분리되어 공존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갈등이 폭발하는 것이다.

 

영화
영화 '인 타임'에서 화폐가치를 가지는 개개인의 생명 시간이 팔뚝에 표시되는 모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물론 근본적으로 화폐의 세 가지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가치의 저장 기능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화폐로 쓰인다는 것 자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설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시간은 곧 돈’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경제학의 원리를 화폐에까지 적용하고 이를 생물학적인 시계로도 동시에 작용하도록 했다는 측면에서 영화 ‘인 타임’은 매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 모순된 세상만큼은 아니지만, 한 쪽에선 몇 천원 단위의 최저임금의 인상율을 두고 노동자와 자영업자 간에 갈등이 부각되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가상화폐 한 단위가 하루에 백 만원 내외로 등락하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는 현실도 충분히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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