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미코 김사랑의 ‘묵언수행’이 어색한 이유는?

2017.07.05 17:02

그녀는 마치 아이에게 하듯이 자신을 향해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자, 이제 그걸 여기다 붙여. 너무 많이 붙이지 말고, ... 여기, 작은 구멍 바로 옆에. 이런, 봐, 떨어졌잖아. 물기가 부족했어, 그렇지? 뭐, 고칠 수 있어, 그렇지? 물로 조금만 적셔주면... 됐다. 그렇지?”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죠운: 저는 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음성을 듣는답니다. 그 음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죠.
로벨르: 네 상상에서 오는 거겠지.
죠운: 물론이죠.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게 오는 것이죠.
로벨르: 그래 하느님께서 너더러 오를레앙의 포위를 깨라고 말씀하신단 말이지?
죠운: 그리고 랭 대사원에서 왕세자 님의 대관식을 거행하라고도 말씀하세요.
로벨르: (숨이 가빠지며) 대관식이라니, 이런!
죠운: 또 영국군을 프랑스에서 몰아내라고도 하세요.
로벨르: (빈정대며) 그 밖에 또 다른 말씀은?
죠운: 지금 당장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나으리.
- 조지 버나드 쇼, ‘세인트 죠운’

 


‘언제 적 김사랑이야...’


며칠 전 TV 채널을 돌리다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탤런트 김사랑 씨를 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살만 약간 빠졌을 뿐 여전히 젊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필자가 젊었을 때 본 것 같은데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2000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올해 우리나이로 마흔이다! 연예인들은 관리를 엄청나게 한다지만 그래도 그사이 너무 안 늙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프로그램은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집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촬영 동안 정말 집에 출연자 혼자 있는 건지 주변에 스텝들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좀 보다보니 어느 순간 게스트들이 이상한 점을 발견해 얘기하며 박장대소를 한다. 즉 김사랑 씨가 일어나 몸을 풀고 아침을 준비하고 먹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고 ‘묵언수행(黙言修行)’을 하는 중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화면에는 친절하게 오디오를 끈 상태가 아니라는 설명까지 올라왔다. 정적 속에 옷을 골라 입고 외출해서 운전하면서도 계속 말이 없는 모습이 나오자 지켜보던 김사랑 씨도 “몰랐는데 제가 말이 좀 없기는 하네요”라며 약간 당황한 눈치다.


나중에 이 프로그램을 (사실은 김사랑 씨의 놀라운 젊음을) 떠올리다 문득 김사랑 씨의 침묵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혼자 있을 때 말을 거의 안 하지 않는가. 사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는 건 마치 연극에서 배우가 관객을 위해 독백을 하는 것처럼 시청자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예능감이 별로 없는 김사랑 씨는 진짜 평소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고 이게 특이해 오히려 주목을 받은 거라는 말이다. 만일 모든 출연자가 시청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이런 프로그램은 재미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혼잣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출연자들을 보면서도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왜일까. 사실 연극에서 독백을 하는 배우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전철에서 혼자 떠드는 사람을 보면 신경이 쓰이면서 거리를 유지하려는 건 또 왜일까.

 

심리학계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소련의 천재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 아동 혼잣말의 역할 규명 등 발달심리학 분야에 큰 기여를 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심리학계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소련의 천재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 아동 혼잣말의 역할 규명 등 발달심리학 분야에 큰 기여를 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러시아 천재 심리학자의 통찰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냐?”는 반응처럼 우리는 대체로 누가 혼잣말을 하는 모습을 좋지 않게 보는 것 같지만 사실 혼잣말은 아동의 발달에 필수적인 요소다. 즉 말을 배우고 나서 열 살 무렵까지 아이들은 혼잣말을 많이 하는데 (전체 말 가운데 20~60%) 이게 다 이유가 있다. 이런 현상은 1920년대 스위스의 유명한 심리학자 장 피아제가 처음 발견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직 헤아리지 못하는 미성숙함에서 비롯한 자아중심적인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930년대 소련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아이의 혼잣말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했다. 비고츠키는 아이가 혼잣말을 통해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고 이 과정에서 인지능력이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즉 아이는 혼잣말을 통해 해야 할 행동을 스스로 안내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과제가 어려울수록 혼잣말의 빈도도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혼잣말이 줄어들고 마침내 열 살 무렵을 전후해 거의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아이가 혼잣말을 한다고 주의를 주거나 혼을 내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비고츠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소련의 심리학계는 반감을 드러냈다. 이런 관점은 스탈린의 전체주의를 위협하는 반동적인 사상이라며 공산당이 공개비판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1934년 비고츠키가 결핵으로 불과 38세에 사망하면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2년 뒤 그의 출판물은 금서로 지정됐다.


1953년 스탈린이 죽고 권력을 잡은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공포통치’를 비판하며 지적 자유를 옹호했고 덕분에 비고츠키의 책과 논문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됐다. 1962년 그의 에세이집 ‘사고와 언어’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아동의 혼잣말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즉 비고츠키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의 사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직 언어를 추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혼잣말은 그만큼 중요하다.


사실 어른들도 큰 어려움에 처하거나 갑작스런 일을 당하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오곤 한다. 김사랑 씨도 요리를 하다다 실수로 준비해 둔 다시마 육수를 쏟았을 때 혼잣말을 ‘몇 마디’ 했다. 글 앞에 인용한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도 스토너의 아내가 찰흙으로 뭔가를 만들다가 잘 안 되자 마치 아이처럼 혼잣말을 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아이의 언어회로가 발달하면서 굳이 자기가 하는 말을 귀로 듣지 않아도 됨에 따라 점차 혼잣말을 하지 않게 된다. 즉 말이 내면화되는데 이를 ‘내적 언어(inner speech)’라고 부른다. 내적 언어는 남에게는 들리지 않는 혼잣말인 셈이다.

 


남에게는 들리지 않는 혼잣말


심리학자들은 피험자들에게 삐삐 (지금은 휴대전화) 신호를 받는 순간 뭘 하고 있었느냐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깨어있는 시간의 20~25%를 내적 언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우리는 언어적 사고를 하는 동물이라는 말이다.


내적 언어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단일 화자가 말하는 방식과 둘이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머릿속에서 대화를 나눈다니 좀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 머릿속에서 묻고 답하는 경우는 흔하다. 대표적인 예가 경기 중의 운동선수가 머릿속에서 감독(‘공을 끝까지 봐야지’)과 선수(‘그래, 할 수 있어’)로 내적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다독거리는 것이다. 과학자들 역시 실험이 잘 안 될 때 ‘문제가 뭐야?’ ‘시약이 오염된 걸지도 몰라’ 같은 내면의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한다.


심리학자이자 소설가인 찰스 퍼나이휴 영국 더럼대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내면의 목소리(The Voice Within)’에서 “내면 언어(발화, 發話)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 외면 발화 그 이상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퍼나이휴는 “우리가 대화를 내면화할 때 타인을 내면화하는 것”이라며 “우리 뇌는 목소리로 가득차 있다”고 쓰고 있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나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즉 창조적인 행위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기를 바라는 것도 내면의 대화가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주변에서 누가 말을 걸거나 라디오 출연자들끼리의 대화, 심지어 노래 가사도 이런 작업에 방해가 된다. 필자도 글을 쓸 때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아예 오디오를 끈다.


과학자들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장치를 써서 내적 언어 활동을 할 때 정말 언어 관련 뇌회로가 작동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말을 생성하는데 관여하는 좌측 하전두회(브로니카 영역이 있다)가 활성화되는 반면 소리를 지각하는 상측두회(베르니케 영역이 있다)의 활성은 낮았다. 즉 머릿속에서 내가 하는 말이므로 들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혼잣말과 마찬가지로 내적 언어도 과제 해결 같은 창조적인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데 스스로에게 말을 함으로써 문제를 명료화하고 또 대화 형식을 취함으로써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작가처럼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내적 언어 회로가 발달해있다고 한다.

 

영국의 소설가 버니지아 울프는 1941년 59세로 자살하기 직전 환청에 시달렸다고 한다. 많은 작가들이 환청을 경험하고 이를 창작에 활용한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영국의 소설가 버니지아 울프는 1941년 59세로 자살하기 직전 환청에 시달렸다고 한다. 많은 작가들이 환청을 경험하고 이를 창작에 활용한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회로 고장 나면 환청으로


프랑스와 영국(잉글랜드) 사이의 100년 전쟁이 탄생시킨 영웅 잔 다르크는 프랑스 한 소작농의 딸로 신앙이 독실해 열세 살 때 처음 천사의 계시를 들었다. 열여섯에 천사들에게 왕세자 샤를을 도와 잉글랜드와 한 편인 부르고뉴 일파를 몰아내고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를 듣고 이듬해 전장에 뛰어든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잔 다르크를 주인공으로 희곡 ‘세인트 죠운’을 썼는데(죠운(Joan)은 잔(Jeanne)의 영어식 이름이다) 앞에 인용한 부분은 프랑스 진영에서 잔 다르크의 소문을 듣고 그녀를 불러 조사하는 장면이다.


반신반의했지만 워낙 상황이 안 좋았던 프랑스 진영은 잔 다르크에게 군사를 내주었고 기적처럼 오를레앙 전투에서 승리하며 샤를 왕세자가 샤를 7세로 왕 즉위식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반격에 잔 다르크는 체포됐고 재판 끝에 마녀로 몰려 열아홉 살에 화형됐다.


퍼나이휴 교수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잔 다르크의 계시는 내적 언어 회로에 문제가 생겨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타인(천사)의 목소리로 듣는 ‘환청’이라고 설명한다. 즉 환청을 듣는 사람의 뇌를 조사해보면 소리를 생성하는 하전두회와 함께 소리를 지각하는 상측두회(베르니케 영역이 있다)의 활성도 높아 내면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이다.


실제 조현병(정신분열증)과 해리성정체감장애인 사람의 4분의 3과 외상후증후군인 사람의 절반, 양극성장애인 사람의 상당수가 환청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 5~15%도 환청을 들은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흥미롭게도 전문작가들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환청을 체험한다고 답했고 환청이 창작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답한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자신은 이런 목소리를 받아쓰는 사람일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천재와 광기’라는 책 제목도 있듯이 뇌가 지나치게 유연하면 자칫 이상이 올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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