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장애를 어떻게 볼까

2017년 06월 30일 17:00

IT 기술과 관련된 많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항상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은 기술이 직접적으로 사람과 맞물려 어려움을 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IT의 목표가 정보에 대한 차별과 격차를 줄이는 데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장애 문제를 풀어내거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은 박수 받아 마땅합니다.


장애가 없는 입장에서 돌아보면 세상은 꽤 많이 바뀐 듯 합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도 꽤 달라졌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많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장을 역차별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전히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회 곳곳에서 차별도 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해외, 특히 미국에서 바라보는 장애는 확실히 조금 더 다른 단계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당연한 배려라는 것이 기술 곳곳에 녹아 있는데, 그 소소한 부분들을 뜯어보면 단순히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다양한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식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지요.


올 1월 라스베이거스 CES의 키노트장은 한 시간 전부터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자리를 찾아서 헤매다가 행사장 맨 앞에 있는 장애인 전용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이 공간은 장애인들을 위해 별도의 스크린과 수화통역사가 있었습니다. 발표 내용은 텍스트로 화면에 뜨고, 두 명의 수화 통역사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발표를 쉴 새 없이 손으로 전달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미국에서 열리는 큼직한 컨퍼런스 치고 수화 통역사가 없는 경우는 별로 없지요.

 

하이얀 장(왼쪽)은 엠마 로튼(중간)의 파킨슨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했다. - 최호섭 제공
하이얀 장(왼쪽)은 엠마 로튼(중간)의 파킨슨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했다. - 최호섭 제공

지난 5월 초에 시애틀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 컨퍼런스 빌드의 한 장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엠마 로튼이라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파킨슨병에 걸리면서 수전증으로 손을 떨게 됐습니다. 연필로 직선을 긋지 못하고, 자기 이름을 종이에 쓸 수도 없을 정도로 근육이 심하게 떨리는 증상이 있었지요. 마이크로소프트 케임브릿지 연구소의 연구원 하이얀 장은 이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해결책은 작은 모터에서 시작됐습니다. 하이얀 장은 엠마 로튼의 손목에 센서를 달아 손이 어떻게 떨리는지 추적했고, 그 데이터를 애저 클라우드의 머신러닝 시스템에 올렸습니다. 결국 하이얀 장은 근육이 떨리는 패턴과 반대 방향으로 모터의 힘을 주는 것으로 손 떨림을 멈추는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빌드 키노트에서 엠마 로튼이 예쁜 필체로 자기 이름을 쓰는 장면은 큰 감동을 주었고, 이들이 무대에 직접 오르자 잠깐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박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엠마가 쓴 글씨, 왼쪽은 교정 전, 오른쪽은 교정 후에 쓴 글씨다. - 최호섭 제공
엠마가 쓴 글씨, 왼쪽은 교정 전, 오른쪽은 교정 후에 쓴 글씨다. - 최호섭 제공

결국 우리가 익숙한 센서와 모터에 인공지능을 붙이는 데에서 기술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사실 주제와 주제를 잇는 브릿지 같은 내용이었지만 그 짧은 소개는 이 회사가, 또 그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술을 만지는지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시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3D 사운드스케이프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클라우드 포 글로벌 굿(Cloud for Global Good)’과 ‘접근성을 위한 AI’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만든 것인데, 길거리에 블루투스 센서를 달아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 센서 정보를 분석해 걸음의 정확도를 높이는 겁니다.

 

그 결과물은 시각장애인에게 소리로 전달됩니다. 헤드폰을 쓰고 걸으면 무선랜과 블루투스 비콘을 통해 보행자의 위치를 확인해 앞에 안전한 길이 있는지 알려주고, 벽에 너무 가까이 붙거나 차도쪽으로 나가면 이를 경고해 줍니다. 대중교통 안내도 해 줍니다. 안내견과 이 헤드폰을 함께 쓰고 길을 걸으면 훨씬 안전해지는 것이지요.

 

’보는 AI(Seeing AI)’도 흥미로운 기술이죠. 지난해 빌드2016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지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용 안경을 발표했습니다. 이 안경은 주변 환경을 이미지로 읽어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지 서비스(Cognitive service)라고 부르는 비전 컴퓨팅 기술에 기반해 주변의 사람, 표지판, 길거리, 책 등을 읽어줍니다. 단순히 ‘앞에 무엇이 있다’를 넘어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새가 날아간다’처럼 상황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보는 AI' 기술. 안경에 달린 카메라와 머신러닝 기술이 결합해 주변의 환경을 읽어준다. - 최호섭 제공

이 컴퓨터 비전 기술은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구글도 이번 구글I/O를 통해 인지 컴퓨팅 기술을 극단적으로 활용한 ‘구글 렌즈’를 발표했지요. 이를 시각 장애인을 위한 기술로 가다듬으면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 저렴한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거창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기술을 어떻게 해석할 지에 대한 이야기지요.


지난해 애플이 새로 맥을 발표하던 순간도 떠오릅니다. 애플은 신제품을 발표하기에 앞서 몸의 불편과 창의력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편집 디자이너 새디 폴슨이 키보드와 마우스가 아닌, 또 다른 입력장치를 통해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 가르시아는 아이폰이 사진 속의 내용을 읽어주는 것을 듣고 정확히 가족 사진을 찍습니다. 본인은 볼 수 없지만 그가 찍은 사진은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현장에서 새디 폴슨과 잠깐 마주쳤는데, 기업이 내놓은 메시지 하나로 사람들이 달라 보이는 것에 말 못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제 편견이 아직도 제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부끄러웠고, 보이는 것만으로 너무 많은 것을 판단하고 한정지어버리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당사자들은 더 심하게 느끼고 있겠지요. 그리고 제 3자의 한정된 시각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얼마 전 복잡한 장비를 달고 스스로 계단을 오를 수 있는 휠체어에 대한 유튜브 영상이 페이스북에 돌았습니다. 이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가족이 휠체어를 타는 지인에게 알려줬더니, ‘대중화되기 어려운 보완 장치들이 등장하는 건 결국 리프트나 경사로처럼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장애를 각자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은 또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공감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분명 기술은 사람들을 더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이야기가 좀 많은 듯 하지만 사티아 나델라 CEO가 빌드에서 했던 이야기는 새겨 들을만 합니다.


“기술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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