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곳 11] 맥줏집: 단골이 될 만한 맥줏집은 왜 드문가

2017.06.24 18:00

엊그제가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 하지(夏至)였고 벌써부터 곳곳에 폭염주의보까지 발령했으니, 바야흐로 맥주의 계절이다. 맥주는 알코올 함량이 가장 적은 술이자 냉장시켜 마시는 술이기에 시원하게 들이켜 갈증을 풀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탄산까지 들어 있으니 청량감까지 있어서 마시는 동안 식도마저 짜릿하다. 오죽하면, “맥주의 첫 한 모금”이라는 책제목까지 붙여졌을까. 그러한 맥주는 필스너, 바이젠, 둔켈, 에일 등, 재료와 제조법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지만 최적의 맛을 내는 온도는 대동소이하다. 에일 맥주는 7~8도에서 제 맛을 내지만 일반 맥주는 여름에는 3~4도, 겨울에는 5~6도가 적정하다. 그러니 날씨가 무덥다고 맥주를 빙수처럼 너무 차갑게 내놓은 맥줏집에 갔다면 잠시 그대로 두었다가 마셔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GIB 제공
GIB 제공

특히, 멸균된 병맥주와 달리 생맥주는 효모가 살아 있기에 똑같은 제품이라도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맥줏집마다 그 맛과 품질은 큰 차이를 보인다. 즉, 맛도 맛이거니와 생맥주 관리의 잘잘못에 따라 맥줏집을 다녀간 이튿날 아침 화장실에서 신체 반응이 상반되니 말이다. 또한 업소 운영을 잘하는 맥줏집은 병맥주든 생맥주든 손님에게 각각의 전용 잔을 제공한다. 제품마다 다른 전용 잔의 디자인은 단순히 모양만 멋지게 한 게 아니다. 잔의 입구가 좁거나 넓은 이유는 그 맥주의 성격을 반영해 제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도 병맥주든 캔맥주든 잔 없이 마시는 일은 없다. 잔을 채운 그 투명한 황금빛은 어디서든 아름답다. 특히 요즘처럼 낮이 길어진 초저녁,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마치 창공의 석양 노을을 마시는 것 같다.


늦은 밤, 집에서 생김에 간장만 놓고 마시는 맥주 맛도 좋지만 그만큼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흔히 단골 맥줏집도 있기 마련이다. 그 단골 여부는 내 경우엔 안주의 종류와 맛과 가격도 고려하지만 생맥주의 종류와 품질이야말로 중요한 잣대가 되며, 인테리어나 음악 선곡 등의 분위기도 그 결정에 영향을 준다. 주인장이나 종업원의 접객 태도도 빠질 수 없다. 이 네 가지, 즉 맛과 가격과 분위기와 서비스의 총점이 단골집으로 삼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물론 그 평가와 배점 기준은 손님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작년 여름,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맥줏집은 부부 단둘이 경영한다. 처음엔 ‘○○키친’이라고 한글로 써놓은 간판을 잘못 읽어 치킨집으로 오해했음에도 한적한 단독주택가에 위치한 데다 외관이 고즈넉하고 아담해 한눈에 들어왔다. 더구나 그 맥줏집은 국산 생맥주 중에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제품의 홍보용 네온사인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누굴 만날 일도 없었지만 이튿날 나는 그 맥줏집에 혼자 찾아갔다. 입구 안쪽 바닥에 이전 업소 상호가 흐릿하게 쓰여 있는 것으로 봐서 직전에 폐업한 찻집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재활용한 듯했다. 댓 평쯤 되는 공간에 여섯 테이블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었다. 생맥주 맛도 좋았고 안주도 저렴했고 식기도 청결했다. 착하디 착해 보이는 남편 사장님은 주방 일을 도맡아 했고 마음씨 좋은 동네 아낙 같은 아내 사장님은 친절한 표정으로 홀을 책임졌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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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종종 그곳에서 간단한 안주를 놓고 생맥주 서너 잔을 마신다. 음향 시설은 그리 좋지 않지만 초기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간혹 산울림이나 딥 퍼플 등 (나로서는) 술맛 나는 음악을 신청해서 듣곤 했다. 다행히 날이 갈수록 그 맥줏집의 빈 테이블은 손님들로 채워졌고 최근에는 갈 때마다 붐볐다. 그러자 소음이 문제였다. 어느 맥줏집이든 크든 작든 소음은 있기 마련이지만, 옆자리와 뒷자리에서 목청 좋은 손님들이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그러니 그럴 때는 차라리 음악 볼륨을 높여 실내를 음악소리로 장악하는 게 낫다. 음악소리가 커지면 소통하기 위해 테이블마다 손님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지만 큰 음악소리가 테이블 사이마다 음악 장막을 펼쳐놓아 주변 테이블에서 노크도 없이 넘어오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차단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든 맥줏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동네에는 그만한 맥줏집이 없다. 대부분의 맥줏집들이 프랜차이즈 치킨점이거니와 독립적인 맥줏집 세 곳이 있지만 그중 두 곳은 안주와 생맥주가 내 취향이 아니고, 몇 해 전에는 가끔 방문했던 다른 한 곳은 손님은 거의 없었지만 생맥주 관리든 일부 안주든 분위기든 접객이든 그런 대로 괜찮았는데 최근에 문을 닫았다. 그 집은 나지막한 동산 공원 앞 어두운 길가에 자리했는데 최근 밤길을 산책하다 바라보니 소등해 있었다. 그곳도 부부 단둘이 경영하는 맥줏집이었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그 주인장 두 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10년 전, 내 직장 근처의 단골 맥줏집 주인장이었던 세 자매처럼, 문 앞에 “2주 동안 스페인 여행 다녀와서 뵙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이라도 붙어 있으면 좋으련만…….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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