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크무비] ‘옥자’, 극장 시대 종말을 알리는 전령사?

2017년 06월 24일 10:00

6월 19일자 주요 일간지에는 이달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될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의 극장 동시 개봉을 알리는 광고가 실렸다. 특이하게도 이 광고에는 ‘넷후릭스 오리지날 영화’, ‘뉴-요크로 납치된’ 등 80년대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카피들과 함께 대한극장, 서울극장, 만경관, 영화의 전당 등 단설 개봉관들의 이름이 광고 아래 부분에 나열되어 있었다.

 

지난 6월 19일 신문에 실린
지난 6월 19일 신문에 실린 '옥자'의 80년대식 광고 - NEW 제공

생각해 보면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화 광고나 전단의 하단에는 항상 서울 시내 주요 개봉관을 시작으로 지방의 개봉관들까지 빼곡히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98년 CGV 강변11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고, 온라인을 통한 영화 예매가 일상화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이 시점에 이런 광고가 만들어진 사연은 이미 많은 미디어들에서 다루어졌다. 간단히 말해 넷플릭스가 국내 극장에서 ‘옥자’를 스트리밍 서비스와 동시에 개봉하려 하자 멀티플렉스들은 반발을 하고 거부한 반면 단설 극장들은 호응을 했고, 그 단설 개봉관들을 알리기 위해 광고를 만들면서 아예 80년대 영화 광고를 패러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전세계 1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연 1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넷플릭스는 2011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을 본격화했다. 콘텐츠 자체를 차별화하여 고객을 끌어들이고 붙잡아두려는 이 전략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의 첫번째 오리지날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의 첫번째 오리지날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둔 '하우스 오브 카드' - 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국내에선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 반이 지났지만, 가입자 수는 고작 10만명 안팎에 불과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국내 방송사 프로그램의 수급이 어려워, 가입자를 유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봉감독의 신작에 과감하게 투자하여 좋은 평가를 받자, 한국에서만큼은 극장 개봉을 통해 이슈화하면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극장과 다른 매체 사이 콘텐츠 공개 시점에 차이를 두는 이른바 ‘홀드백’ 기간이 전혀 없이 넷플릭스와 동시에 개봉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넷플릭스 가입자가 많이 없어 극장 흥행이 가능할 수는 있겠으나, 향후 스트리밍 사업자가 제작하는 영화들의 극장 개봉이 늘어나면 그 배급 채널 중 하나로 극장의 위상이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칸 영화제에 참석한 '옥자'의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들 - Andreas Rentz/Getty Images Europe 제공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굳이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고 집에서 수준 높은 영화를 보는데 익숙해지면서, 극장업 자체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칸 영화제 기간 동안 프랑스 영화 업계가 ‘옥자’의 경쟁부문 진출에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칼라 TV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 50년대 후반부터,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 영화ㆍ극장 업계가 70㎜ 대형 상영관, 3D 영화, 시네마스코프 등 새로운 포멧을 개발하면서 대응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극장의 고사가 아니라 제2의 전성기다. ‘옥자’를 둘러싸고 멀티플렉스 업계가 보이는 대응이 지나치다는 시각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초의 사이버펑크 TV시리즈라는 찬사를 받은
최초의 사이버펑크 TV시리즈라는 찬사를 받은 '컴퓨터 인간 맥스'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뉴스위크 표지 - 뉴스위크 제공

참고로 8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었던 ‘컴퓨터 인간 맥스’(Max Headroom)라는 영국에서 제작된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자극적인 콘텐츠로 점철된 TV를 과두정치 체계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미래 사회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재판과 처형 과정을 모두 TV로 중계하고, 투표는 후보별로 지정된 채널의 시청률로 결정하며, 시민들의 활동을 TV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정부가 감시한다.


이 드라마에서 유독 자주 등장했던 장면이 하나 있는데, 거의 폐허가 된 옛 극장 안에 노숙인들이 모여 작은 TV를 보는데 중독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TV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 극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를 그대로 드러냈던 것. 물론 세상은 그런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TV가 모바일 디바이스와 스트리밍 서비스 그리고는 VR로 대체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넷플릭스등의 업체가 제작한 영화가 극장과 스트리밍으로 동시에 개봉되는 일은 이제 일상화될 것
넷플릭스등의 업체가 제작한 영화가 극장과 스트리밍으로 동시에 개봉되는 일은 이제 일상화될 것

그런 의미에서 현재 극장업계가 보여주는 ‘옥자’에 대한 대응은 산업의 변혁기에 자주 볼 수 있는 기존 사업자들의 불안을 표상하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극장은 만족도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모두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이고, 적어도 ‘옥자’로 대변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그런 상황을 깨뜨릴 가능성도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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