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성과 아닌 예산 확보 위한 경쟁, 이젠 멈춰야”

2017.06.08 19:00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이 8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412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서 ‘미래를 향한 출연연의 역할 및 시스템 혁신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STEPI 제공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이 8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412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서 ‘미래를 향한 출연연의 역할 및 시스템 혁신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STEPI 제공

“지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연구 성과를 위한 경쟁보다는 예산 확보를 위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사람보다 연구 과제를 많이 따오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출연연을 살리는 것을 국가 연구개발(R&D)을 살리는 것으로 여기고 이제는 이런 악순환을 멈춰야 합니다.”
  
8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412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서 ‘미래를 향한 출연연의 역할 및 시스템 혁신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의 문제점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PBS는 연구자 인건비 중 일부만 정부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연구자가 직접 외부기관으로부터 연구 과제를 수주해 충당해야 하는 제도다. 이 연구위원은 “경쟁을 통해 연구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 했던 PBS의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연구비 확보 경쟁 부추기는 PBS, 기관별 성격에 맞게 개선해야

  
이민형 연구위원은 “국가 연구개발(R&D)의 낮은 투자 효율성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R&D 투자 규모는 점진적으로 확대된 반면, 연구 성과는 10년 동안 정체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PBS가 연구자간의 경쟁뿐만 아니라 연구기관 간의 경쟁, 관할 정부 부처별 예산 확보 경쟁을 부추기면서 정작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협력 연구를 하지 못하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라며 “부처마다 R&D 사업기획을 관리하기 위한 전문기구가 무분별하게 늘었고, 부처 간 사업이 중복되는 문제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석한 송철화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 명예회장은 “지금 출연연은 연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짜여진 틀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며 “스스로 알을 깨기 위해 아무리 의지를 갖고 노력해도 지금은 손발이 묶여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송 회장은 출연연의 자율성을 해치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PBS와 현행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꼽았다(☞관련 기사: [점검! 文정부 과기정책①] 출연연, 드디어 ‘기타공공기관’서 제외되나).
 
이 연구위원은 “연구비 확보 경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PBS의 기본 방식만 유지하고 개인별 중심에서 집단 중심으로, 재정확보능력 평가에서 연구 성과 평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바이오 분야는 서로 너무 다른 분야”라며 “각 기관별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제도와 기준을 세분화 해 개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기획본부장도 “PBS를 전면 폐지하는 것보다는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현재 25개 출연연 연구자들 인건비에서 정부 출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평균 53% 수준인데, 새 정부에서는 이를 8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본부장은 “기초 연구를 하는 곳의 경우에는 정부가 인건비의 100%까지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각 기관의 성격에 맞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8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412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서 토론자들이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 STEPI 제공
8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412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서 토론자들이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 STEPI 제공

● 출연연의 분명한 역할과 임무 재정립 필요

 

토론자들은 출연연의 분명한 역할과 임무를 재정립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출연연이 성과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조직 개편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민형 연구위원은 “출연연의 자율성과 유연성, 개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구체적인 임무 분야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강소형 전문연구기관화’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승남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출연연이 만들어졌고, 한 가지 기준으로 25개 출연연의 임무와 역할을 구분짓긴 어렵다”며 “조직 개편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억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사업본부장도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출연연의 역할로 중소기업 지원, 기술사업화가 거론되고 있지만, 출연연이 개발한 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건 대기업 또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이런 엇박자의 원인은 출연연의 고유 임무가 약해졌기 때문”이라며 “출연연 스스로도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