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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5] 펜션: 단합의 집

2017년 05월 13일 18:00

회사 구성원의 단합을 위해 교외나 더 먼 지역에서 업무와 무관하게 정서적으로 어울리는 것을 야유회 내지 워크숍이라고 한다. 야유회는 산, 들, 강, 바다 등의 야외에서 단체가 오락적으로 노는 일이고, 우리말로 ‘공동 연수’라고 부르는 워크숍은 구성원의 교육과 훈련이 목적이기에 개념적으로는 야유회와는 다르다. 그러나 연수를 위해 꼼꼼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는 한 이 둘은 현실적으로는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가족이나 지인끼리 자유롭게 여행할 때는 여기저기 다니며 여행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숙소는 그야말로 잠자리여서 보통은 호텔이나 모텔을 찾는다. 반면에 단합 활동이 목적인 야유회나 워크숍은 단체의 어울림에 집중해야 하기에 여러 즐길 거리를 갖춘 숙소에서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거나 레포츠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콘도미니엄이나 펜션을 찾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중 펜션은 콘도미니엄보다 전원적이고 소규모로 운영할 수 있어서 약 20년 전부터 국내에도 곳곳에 많이 생겨나 있다.


펜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전통적 숙소인 호텔과, 민박의 가정적 분위기를 갖춘 새로운 숙박 시설로 서양에서부터 생겨난 펜션(pension)은 원래는 연금(年金)의 뜻이다. 유럽에서 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여생을 민박 사업으로 보내는 데서 그 뜻이 변용되어 굳어졌다. 그러기에 펜션은 여행자 그룹을 위해 오래전부터 유럽에 있었던 민박이 변형된, 편의시설을 갖춘 청결한 숙소이며 대부분 한 가족이 경영한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이미 전체 숙박 시설의 3할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지난달 말에 나도 출판사 직원들과 함께 1박 2일로 강원도 평창에 있는 펜션에 다녀왔다. 해발 700m 높이에 자리 잡은 펜션에 도착하니 새로 부임한 사장이 왜 그 펜션을 직접 골라 예약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장의 활달한 성격을 잘 반영해주는 펜션이었다. 최근에 두 회사가 한 사무실로 합쳐 새로운 시스템에서 직장생활을 함께 하게 되었으니 구성원 아홉 명의 첫 워크숍의 목적은 단연 정서적 교감으로써의 ‘단합’이었다. 그 점에서 그 펜션의 환경과 시설은 안성맞춤이었다.


하오 4시경, 체크인을 한 우리는 아래편 마당에 나와 족구를 했다. 세대 간 아이스크림 내기였다. 이후 우리는 1시간 거리의 산길로 산책을 나섰다. S자로 거듭 휘어져 이어진 완만한 길을 따라 천천히 함께 걸었다. 남부는 물론 수도권에서는 벚꽃이 진 지 보름 이상 지났었지만, 해발 700m 높이의 산길에는 벚꽃뿐만 아니라 개나리며 진달래, 살구꽃들이 연둣빛 신록 사이사이에 일제히 피어 있었다. 길가마다 쑥과 민들레가 지천인 길을 거슬러 우리는 펜션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직원들끼리는 석양 아래 짙어가는 숲길을 나란히 걸으며 새하얀 조팝나무 같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7시경, 우리는 펜션 별채 식당에서 소고기 등심 구이로 술자리 겸 저녁식사를 했다. 맥주로 갈증을 풀고 사장이 가져온 양주를 주고받으며 쾌적한 봄밤 풍경 속에서 화담(和談)을 나눴다. 이후 숙소에 들어와서는 농담을 안주 삼아 다양한 맥주를 주고받았다. 자정이 지나자 잠자리에 들려고 하나둘 3개의 방으로 분산돼 들어가고 친구인 사장과 나는 마당에 거닐었다. 그리고 보았다. 하늘에 빼곡히 차린 별들의 잔치를! 거대한 우주에 흐르는 은하수가 맨눈에 보였다. 둘은 잠시 말없이 밤하늘에 눈을 씻었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이튿날 새벽 5시 반. 공기 좋은 산속의 장점은 숙취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샤워하는 사이 설거지를 마친 사장과 함께 나는 잠든 직원들이 깰까봐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전날의 산책로를 다녀왔다. 8시에 별채 식당에 차려진 조찬은 내가 바깥에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아침밥이었다. 시래기 밥에 북엇국, 고등어구이, 계란말이, 총각김치 등이 다 맛있었지만 그중 주인장이 산에서 직접 채취한 ‘엄나무 순 무침’은 평생 잊을 수 없을 듯하다. 곧이어 떡메 치기가 시작됐다. 한 솥의 찹쌀밥이 떡판에 투하되자 간단한 교육을 받은 우리는 돌아가며 떡메를 쳤다. 전통 방식의 인절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처음 알게 되었고, 배가 불렀음에도 방금 만들어진 쑥떡이 너무 맛있어서 내 입은 여러 번 거절하지 못했다.


사장과 함께 직원들이 1시간 반가량 산길을 따라 사륜 오토바이(ATV)까지 타고 나서야 우리는 체크아웃을 했다. 펜션에 머문 시간은 20시간 정도였지만 그사이 우리는 갖가지 경험을 했다. 만약 2박을 했다면 아마도 승마와 패러글라이딩까지 즐겼을 것이다. 또 눈 내린 겨울이었다면 시베리아 허스키들이 끄는 눈썰매도 타보았으리라. 그런 점에서 우리가 찾아간 펜션은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곳에 여행도 가고 야유회나 워크숍도 다녀온다. 하지만 한번 다녀간 펜션을 거듭 찾는 경우는 드물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에 이끌려 재방문하는 곳이 있다면 방문자에게도 주인장에게도 흐뭇한 재회일 테다. 우리가 떠나는 차창 밖에서 모자를 벗어 흔들어 보이던 펜션 주인장의 목련 같은 웃음이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평생 단 한 번인 만남은 흔하다. 훗날 꼭 다시 가고 싶은 펜션이 내겐 두 곳이 있다. 그중 한 곳은 벌써 추억이 된 이 글 속의 감자꽃 같은 펜션이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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