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새 정부, 사회가 과학을 잘 수용하도록 정책 펴주길”

2017년 05월 10일 22:17

과학기술인 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점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ESC는 소수자들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정책, 과학의 결과를 사회 안에 효율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새 정부에 주문했다. 또 공적 영역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과학자들의 전문성을 반영하고, 실제 의미 있는 과학기술 발전이 이뤄지도록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주길 기대했다. 아래는 ESC의 글 전문이다.

 

[전문] ESC가 새 정부에 바란다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새 정부는 전임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나게 되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지난 정권이 저지른 잘못을 청산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기 시작하는 정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ESC(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의 네트워크입니다. 과학은 더 이상 단순한 경제 발전의 도구가 아니라 현대사회가 작동하는 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기초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에게 아직 과학은 삶과 유리된 특수한 지식 체계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에 ESC는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방식과 자유로운 문화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노력하고, 과학이 특정 집단이나 권력의 소유가 아니라 시민의 공공재가 될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서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추구하고자 합니다.


이번 선거 기간에 대통령께서 내놓은 과학기술 공약의 슬로건은 “과학기술의 혁신과 발전, 사람에게 투자해 이루겠습니다”였습니다. 지난 대선의 모토였던 “사람이 먼저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슬로건은 ESC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 과학기술인의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와 직접 맞닿아 있어서 크게 환영하는 바입니다.

 

ESC가 꿈꾸는 근본적인 변화는 기존의 과학자들보다 소수자들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대통령께서는 후보자 시절에 ESC가 드린 질문에 대해서, 근로계약과 4대 보험에서 소외된 학생연구원과 비정규직 연구자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 연구자들이 대표적인 소수자라는 인식을 보여주셨습니다. 과학기술인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소수자들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정책이 구체적으로 입안되고 실행되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과학의 소중한 가치인 다양성과 공정성이 실현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점은 과학의 결과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핵발전, 미세먼지, 식품의 안전성, 가습기 살균제 사건, 4대강 사업, 천안함과 세월호 진상 규명 등은 과학적 검토를 기반으로 해서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조차도 과학이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그 책임은 과학의 결과를 편의에 따라 이용하려 하는 권력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지 못한 과학계와 전문가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에도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과학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더 전문적이고 책임 있는 분석과 판단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제를 다루게 된다면 공적 영역의 의사 결정 과정이 더욱 합리적이고 신뢰할만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과학의 결과를 사회 안에 효율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ESC가 새로운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과학기술에 관한 공약 중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은 아마도 4차 산업혁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과학기술자들도 많습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환상과 막연한 기대만으로 뜬구름 잡는 식의 구호만을 걸어놓고 그저 정치적으로만 이용했던 과거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향후 파급력이 클 것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기술과 그 효과를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는 정책을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실체와는 유리된 과장된 수사와 겉보기를 위한 결과로 포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초가 되는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러한 일을 직접 담당하게 될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현장의 연구자들과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기업입니다. 새 정부는 개개의 주체가 갖기 어려운 장기적인 안목을 유지하고, 인프라의 확충과 정책적 뒷받침 등에 힘쓰며, 지나친 개입 대신 조정자의 역할을 잘해주기 바랍니다.


21세기도 이미 6분의 1이 지났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지만 인간이 그것을 감당할 만큼 현명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인간이 함께 발전하는 일은 이 시대의 세계사적인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시대적인 과제를 고민하기는커녕 구시대적인 유착과 비리와 부패로 많은 것을 낭비하고 오히려 시대를 역행했습니다. 이제 새 정부가 우리 사회와 과학이 함께 발전하는 데에 초석을 놓기 바랍니다.


변지민 기자

h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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